"증거 인멸·도주 우려"…'SM 시세조종' 카카오 김범수 구속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SM엔터테인먼트 시세조종 의혹을 받는 김범수 카카오 경영쇄신위원장이 지난 22일 오후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치고 이동하고 있다. 뉴스1
‘SM엔터테인먼트 시세 조종’ 혐의를 받는 김범수 카카오 경영쇄신위원장(58)이 23일 구속됐다. 창업자이자 주식 자산만 4조 3000억원에 달하는 김 위원장이 구속되면서 카카오의 사법 리스크가 최고조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대표적인 정보기술(IT) 플랫폼인 이른바 ‘네카라쿠배(네이버·카카오·라인플러스·쿠팡·배달의민족)’ 중 창업주가 구속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남부지법 한정석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전날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받는 김 위원장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했다. 이날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열린 영장실질심사는 구속영장 발부 여부를 놓고 재판부의 심리가 길어지면서 23일 오전 1시께 결과가 나왔다. 한 부장판사는 “증거인멸 및 도망할 염려가 있다”며 구속영장 발부 사유를 밝혔다.전날 오후 1시 43분께 서울남부지법에 도착한 김 위원장은 남색 정장 차림으로 검찰 호송 차량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했다. ‘시세조종 혐의를 인정하냐’고 묻는 취재진 질문에는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오후 6시께 법원 밖으로 나온 김 위원장은 검찰 호송차를 타고 서울 남부구치소로 이동해 영장심사 결과를 기다렸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2월 SM엔터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경쟁사인 하이브의 공개매수를 방해하기 위해 SM엔터 주가를 하이브의 공개매수가인 12만원보다 높게 설정·고정할 목적으로 시세조종을 벌인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카카오가 지난해 2월 약 2400억원을 동원해 553회에 걸쳐 SM엔터 주식을 고가에 장내 매수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과정에서 금융당국에 주식 대량 보유 보고의무(5%룰)를 이행하지 않은 혐의도 제기됐다.

영장실질심사가 열린 법정에서는 김 위원장의 구속 여부를 놓고 검찰과 변호인 양측이 치열한 법리 공방을 펼친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 측은 200쪽 분량의 프레젠테이션(PPT) 발표 등을 통해 신병 확보의 필요성을 소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김 위원장의 승인 없이 카카오 그룹 차원의 주식 매입이 불가능한 점, 김 위원장이 SM엔터 주식 장내 매수와 관련해 최종 의사결정을 했다는 취지의 이준호 카카오엔터 투자전략부문장의 진술 등을 근거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김 위원장 측은 과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삼성바이오로직스 관련 의혹 사건을 맡아 이 회장의 구속영장 기각 결정을 받아냈던 한승 전 전주지법원장 등 대규모 전관 변호인단을 구성해 검찰 측 주장에 적극 반박한 것으로 파악됐다. 변호인 측은 김 위원장이 대기업 총수인 만큼 도주의 우려가 적고, 이준호 부문장 진술의 신빙성 등을 근거로 영장 기각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허문찬 기자
카카오 측은 이번 구속영장 발부에 충격에 휩싸인 분위기다. 카카오 관계자는 “대기업 창업주인 만큼 도주의 우려가 없는데도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는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카카오와 공모해 SM주식의 시세를 조종했다는 혐의를 받는 사모펀드 운용사 원아시아파트너스 대표가 22일 보석으로 풀려난 것과도 모순된다”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 측은 관련 혐의를 전면 부인한 바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8일 카카오 판교아지트에서 임시 그룹협의회를 열고 “현재 받고 있는 혐의는 사실이 아니다”며 “어떤 불법 행위를 지시하거나 용인하지 않은 만큼 결국 사실이 밝혀지리라 믿는다”고 전했다. 또 김 위원장 변호인 측은 입장문을 내고 “김 위원장은 작년 SM 지분 매수에 있어 어떠한 불법적 행위도 지시·용인한 바가 없다”고 강조했다.한 부장판사가 대기업 총수를 구속한 건 이번이 두 번째다. 그는 2017년 2월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한 청탁 및 뇌물 혐의로 수사를 받아온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당시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한 바 있다. 당시 한 부장판사는 7시간 30분 가량의 ‘마라톤 심리’를 끝내고 10시간 30분 동안 기록을 검토한 끝에 구속영장을 발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