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판 짜던 카카오…오너 김범수 구속에 '올스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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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위원장 주도 경영 쇄신 차질카카오 창업자인 김범수 경영쇄신위원장이 구속되며 카카오그룹은 창사 이후 가장 큰 위기를 마주했다. 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 대규모 투자와 자회사 매각 등 주요 의사결정은 물론 김 위원장 주도로 진행 중인 경영 쇄신 작업도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신사업 추진도 동력을 잃을 수 있다. 인수합병(M&A)과 기업공개(IPO)를 반복하며 빠르게 덩치를 키운 성장 전략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AI 신사업도 동력 잃을 우려
M&A·IPO 의존한 성장이 毒
"성공 방식 재검토해야" 지적도
경영 쇄신·AI 신사업 ‘올스톱’
김 위원장은 작년 12월 직원과의 간담회에서 “카카오라는 회사 이름까지 바꿀 수 있다는 각오로 임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당시 SM엔터테인먼트 인수 과정에서 불거진 주가 조작 혐의로 경영진에 대한 검찰 수사가 속도를 내면서 ‘은둔의 경영자’였던 김 위원장이 경영 일선에 나선 순간이었다. 고강도 쇄신을 알리며 올해 1월 그룹 컨트롤타워인 CA협의체를 발족했고 카카오를 포함해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카카오게임즈 등 주요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를 교체했다. 외부 준법·윤리경영 기구인 ‘준법과신뢰위원회’도 꾸렸다.하지만 22일 법원이 김 위원장의 구속영장을 발부하며 이 같은 경영 쇄신 작업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한 업계 관계자는 “카카오는 올 들어 자율 경영에서 중앙집권형 경영 체제로의 전환을 추진해왔다”며 “최종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김 위원장이 ‘영어의 몸’이 돼 전환에 제동이 걸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위원장은 특수관계인을 합쳐 카카오 지분 24.03%(지난 3월 말 기준)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AI 신사업과 관련한 의사결정도 미뤄질 수 있다. 지난해 초부터 세계가 생성형 AI를 두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지만 카카오는 상대적으로 대응에 속도가 늦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초 지난해 한국어 특화 대규모언어모델(LLM) ‘코GPT’를 선보이기로 했지만,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최근에는 자체 LLM 구축보다 외부 LLM을 활용한 AI 서비스 개발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에는 본사 AI 전담 조직과 연구·개발 자회사 카카오브레인의 일부 조직을 결합한 카나나를 설립하기도 했다. 정신아 카카오 대표는 5월 데이터센터 공개 행사에서 “올해 카카오만의 차별점이 담긴 AI 서비스를 내놓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개발에 속도를 내야 하는 때에 각종 수사 등으로 혼란을 겪으며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분석도 제기된다.카카오 법인이 시세조종 혐의로 벌금형 이상을 확정 판결받으면 카카오뱅크 대주주 지위도 빼앗길 수 있다. 인터넷전문은행법에 따라 인터넷은행 대주주는 최근 5년간 조세범처벌법,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공정거래법 위반 등으로 벌금형 이상을 받은 사실이 없어야 한다. 카카오가 시세조종 혐의로 실형을 받으면 대주주 적격성 재검토 대상에 오른다. 심사를 통과하지 못할 경우 카카오뱅크 지분 27.17% 가운데 10% 초과분인 17.17%를 6개월 안에 처분해야 한다.
‘M&A→상장’ 성장 공식 재정비해야
10여 년 동안 초고속 성장을 거듭한 카카오의 성공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정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김 위원장은 2007년 네이버(당시 NHN)를 떠나며 “CEO 100명을 키우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의 말대로 카카오는 카카오톡 성공 이후 유망 기업을 인수해 외연을 넓히는 전략을 썼다. 인수한 기업의 경영진에 자율경영권을 부여하고 필요한 자금은 IPO로 조달했다.이 같은 방식은 빠른 성장에 도움이 됐지만 카카오그룹 차원에서 일관된 전략을 펼치지 못하는 단점도 있다. 자회사의 전략적 의사결정이 카카오에서 인지하지 못한 채 이뤄지는 사례도 부지기수였다는 후문이 전해진다.잇따른 상장도 독이 됐다. 카카오가 SM엔터 인수 과정에서 무리한 이유는 상장 때문이다. 카카오엔터가 성공적으로 상장하기 위해선 유망 아티스트를 많이 보유한 SM엔터가 필요했다는 얘기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