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리드차가 대세? 2년 뒤 꺾인다"…도요타에 경고한 日전문가

토요타 EV 전쟁

나카니시 다카키 지음
정문주 옮김 / 시크릿하우스
414쪽|2만2000원
일본 시가총액 1위인 간판 기업 도요타자동차는 지난해 최고 실적을 올렸다. 2023회계년도(2023년 4월~2024년 3월) 매출액은 45조953억엔(약 400조원), 영업이익은 5조3529억엔(약 47조원)에 달했다. 글로벌 차량 판매 대수도 1109만대로 사상 최대치였다. 현시점에서 도요타는 세계 1위 완성차 업체다.

그런데 이러한 성과가 역설적으로 ‘절벽’으로 굴러떨어지는 변곡점이 될 수 있단 전망이 나왔다. 일본의 유명 자동차 애널리스트 나카니시 다카키는 신간 <토요타 EV 전쟁>을 통해 전기차(EV)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국면에서 하이브리드차를 내세워 승승장구하는 ‘전기차 지각생’ 도요타가 위기 상황에 놓였다고 진단했다.저자는 도요타가 천명한 ‘멀티 패스웨이(전방위 전동화 전략)’에 대해 “하이브리드에서 수익을 극대화하고, 밸류체인 수익을 늘리며, 원가 절감 능력을 맞춤으로써 전기차 및 모빌리티 사업으로 구조를 전환하는 과정에서 맞닥뜨릴 부정적 요인을 상쇄하겠다는 생각은 합리적”이라면서도 “지금은 채산성이 좋은 하이브리드 사업이 커질수록 수익이 짭짤하겠지만, 전기차 사업에 충분한 경쟁력을 확립하지 못했을 때는 상상을 초월하는 규제 대응 비용이 발생해 수익력 절벽에 맞닥뜨릴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도요타가 쉽게 변화하기 어려운 이유로 그간의 성공 근간이 된 ‘도요타 철학’을 든다. 도요타가 전기차 대응에 늦는 것은 “공급자의 논리보다는 소비자가 전기차를 찾기 시작하면 니즈에 맞춰 유연하게 전기차로 넘어가겠다”는 사고방식 때문이란 것이다. ‘적시 공급(JIT·Just In Time)’ 전략과 ‘도요타 생산 방식(TPS)’을 동일하게 가져간 탓에 전동화가 뒤처졌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TPS란 소비자가 원하는 바를 원하는 타이밍에 제공하되 최종 양산 시점에 승리하면 된다는 개념으로, 도요타가 능한 ‘의도적 지연’ 전략인 셈이다.

그러나 다카키는 “최우선 과제는 (전기차 분야) 반격과 만회이며 당연히 전기차 우선 정책이 현재 도요타의 경영 과제가 되어야 한다”고 단언했다. 전기차에 ‘올인’한 경쟁업체들이 치열한 패권 다툼을 벌이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전기차가 성공해야 지속가능한 멀티 패스웨이 전략도 성립할 수 있다. 고정관념을 파괴하고 완전히 새로운 도요타로 진화해야 한다”고 거듭 주문했다.
도요다 아키오 회장이 지난달 기자회견을 열어 도요타자동차의 부정행위에 대해 사과하는 모습. / 사진=연합뉴스
저자는 도요타가 하이브리드차 중심으로 판매 대수를 늘려 수익이 우상향하는 ‘중기 시나리오’의 한계 시점을 2년 뒤로 잡았다. 2026년부터는 미국·유럽 등에서 “하이브리드로는 넘을 수 없는 혹독한” 환경규제가 현실화하는데 그때까지 전기차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천문학적 규제 대응 비용이 발생해 수익성이 급락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근거다.

다카키는 테슬라·비야디(BYD)와 함께 현대차그룹을 도요타가 도전해야 할 전기차 강자로 꼽았다. 그는 현대차 아이오닉5와 도요타 bZ4X를 비교하며 “(아이오닉5는) 세계적으로 호평받고 있다. 도요타는 출시도 늦고 (현대차를) 이기지도 못한 것”이라고 직격했다. “현대차는 일본 차를 위협하거나 능가할 수 있는 존재로 부상했다. 일본만 모르는 현대의 실력”이라고도 했다.

한국 완성차 업체들 또한 새겨들을 만한 내용이 많다. 국내 시장 역시 최근 전기차 성장세가 둔화하는 반대급부로 하이브리드차 수요가 늘고 있어서다. 책은 그렇다고 해서 하이브리드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겨선 곤란하다는 조언을 건넨다. 물론 국내 업체들은 대형보다 소형 전기차를 활발하게 내놓고 가격을 보다 저렴하게 책정하는 등 ‘적시 대응’ 하고 있는데, 전기차가 “결국 가야 할 길”이란 큰 줄기를 잊어버려선 안 된다는 게 그가 강조하는 핵심이다.만약 그렇지 않다면? 저자는 닥쳐올 상황을 타이타닉에 비유한다. 조타수가 구령을 착각해 반대쪽으로 방향타를 틀었다는 설을 언급하며 그 잠깐의 시간 낭비로 인해 결국 타이타닉호는 빙산을 피하지 못했다고 짚었다. 급변하는 시장에서 안이하게 대처하다간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란 이 서늘한 경고는 비단 도요타에만 국한된 얘기는 아닐 것이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