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잃고 모든 걸 놔버린 남편이 아픔과 마주할 수 있게 해준 길, 데몰리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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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정대건의 소설처럼 영화읽기
아내를 잃고 그 남자는 모든 것을 부쉈다
영화
"뭔가를 고치려면 전부 분해해야 해"
사회적 가면을 파괴하면 비로소 보이는 개별자의 실존
‘평화롭던 일상이 망가진 사나이가 있다. 그리고 그는 모든 것을 분해하고 부수기 시작한다.’뉴욕에서 살고 있는 투자 분석가 데이비스는 어느 날 아내가 운전하고 있던 차에서 교통사고를 당한다. 에어백 덕분에 그는 큰 부상을 입지 않았지만, 아내는 이 세상을 떠났다. 어찌 된 일인지 그의 눈에선 눈물조차 흐르지 않는다.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일 것이다. 갑작스레 그렇게 큰일을 겪었으니 그것을 부정하거나 억압하는 정신적 장애가 발생할 법도 하다.사고 바로 다음 날 데이비스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출근한다. 그런 그에게 동료들은 무슨 위로의 말을 해야 할지 곤란해한다. 데이비스는 어떻게 반응해야 맞는 걸까? 데이비스는 이상 행동하기 시작한다. 데이비스가 열차를 급정거시키는 이상 행동을 했을 때에도 사람들은 최근에 아내가 죽었다는 말에 그런 미친 짓을 해도 이해한다는 반응이다. 어딘가 고장 난 듯한 데이비스에게 그의 장인은 말한다. “뭔가를 고치려면 전부 분해한 다음 중요한 게 뭔지 알아내야 돼.” 그리고 데이비스는 무엇이든 분해하기 시작한다.눈물 흘리지 않는 데이비스의 모습은 마치 엄마가 돌아가셨는데도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방인>의 뫼르소를 떠올리게 만든다. <이방인>은 카뮈의 실존주의 철학을 담은 소설로 널리 알려져 있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는 명제는 ‘인간은 이러해야 한다’는 본질 같은 것보다도 세상에 놓인 우리 개별자의 실존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영화 <데몰리션>은 데이비스의 모습과 그 주변인들의 반응을 통해 이러한 실존적 인물을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얼마나 학습된 사회적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존재들인가.데이비스는 마침내 아내와의 추억이 서려 있는 집까지도 분해하려 한다. 모든 것을 분해하고 파괴하면서 데이비스는 슬픔과 서서히 직면하게 된다. 못에 발이 찔려 아프다고 비명도 지른다. 숨이 턱 막히도록 뛰고 난 다음 우리는 쿵쿵 뛰는 심장을 통해 우리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새삼 자각한다. 모든 것이 분해되고 파괴된 풍경 앞에서 <데몰리션>은 어쩐지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정대건 소설가·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