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총수에게 '도주 우려'라니…法 구속사유 '충격'

법조계 "중범죄·흉악범처럼 다뤄"
일각 "檢근거 충분하단 뜻" 해석도
김범수 카카오 경영쇄신위원장이 SM엔터테인먼트 인수 관련 시세 조종 혐의로 23일 검찰에 구속된 가운데 법원이 구속 사유로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를 밝혔다. 대기업 총수에게 ‘도주 우려’라는 꼬리표를 붙인 보기 드문 사례다.

한정석 서울남부지방법원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증거인멸과 도주의 염려가 있다”며 김 위원장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검찰은 최대 20일간의 구속기간 동안 김 위원장이 시세 조종에 직접적으로 개입했는지 등을 조사해 그를 재판에 넘길 전망이다.앞서 윤석열 정부 들어 구속된 대기업 총수와 비교해도 이번 결정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조현범 한국타이어 회장, 황재복 SPC 대표, 허영인 SPC그룹 회장 등은 모두 ‘증거인멸 우려’만을 이유로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결정의 의미를 다각도로 분석하고 있다. 영장전담 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중범죄나 흉악범, 거주가 불분명한 사람에게 주로 도주 우려를 적용한다”며 “기업 총수에게 이를 적용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라고 설명했다. 한 현직 판사는 “도주 우려가 구속 사유로 인정됐다는 것은 검찰의 수사 기록에 충분한 근거가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며 “범죄의 중대성이 클수록 도주 우려를 사유로 구속영장이 발부될 수 있다”고 말했다.

카카오 내부에서는 김 위원장에게 도망할 우려가 있다고 한 데 충격이 큰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조직 쇄신을 책임지고 있는 상황에서 도주할 리 없다”고 말했다.이번 결정이 향후 보석 신청이나 구속집행정지 가능성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한 변호사는 “도주 우려까지 인정된 만큼 보석이 허가될 여지도 줄었다”며 “긴급한 치료가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구속집행정지를 기대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1997년 영장실질심사제도가 도입되면서 헌법과 형사소송법에 따라 엄정하게 구속 사유와 필요성을 심사하는 관행이 실질적으로 정착됐다. 2007년 개정된 형사소송법에도 ‘불구속 수사 원칙’이 명시돼 있다.

형사소송법상 구속영장 발부 기준은 △일정한 주거 부재 △증거인멸 염려 △도주 염려 등이다. 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모두 추상적 기준이기 때문에 판사 재량에 따라 구속 여부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전국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률은 법원과 연도에 따라 들쭉날쭉하다. 2023년 기준으로 서울동부지법(28.1%)과 제주지법(13.3%)의 기각률은 두 배 넘게 차이 났다. 서울중앙지법 역시 2021년 30%, 2022년 19.8%, 2023년 22.5% 등으로 매년 기각률이 큰 차이를 보였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