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렌더로 섞은 연극과 전시"…'없는 시간' 기획 김신록·손현선

세종문화회관 '싱크 넥스트' 참여작…"관객과 함께 예술의 시간 탐구"
2021년 이후 세 번째 협업 작품…"서로 닮은 예술 세계에 이끌려"
"고압의 블렌더 안에서 연극이라는 허구의 시간과 전시라는 실재의 시간이 겹치고 섞이는 작품이라고 보면 됩니다. "
다음 달 2∼4일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공연되는 '없는 시간'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선형적인 이해 속에서 탈락하고 숨어버린 조각들을 미술작품과 텍스트, 소리, 말, 몸으로 표현하는 작품이다.

올해로 3회째를 맞는 세종문화회관의 기획공연 프로그램 '싱크 넥스트' 참여작 중 하나다.

이번 작품을 함께 기획한 배우 김신록과 시각 예술가 손현선은 23일 세종문화회관 사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허구(연극)와 실재(전시)가 중첩된 경험을 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설명을 들을수록 작품의 콘셉트가 더 난해하게 느껴졌다.

'없는 시간'이라는 공연 제목마저 심상치 않게 다가왔다.

이에 대해 김신록은 "공연 제목인 '없는 시간'은 선형적인 시간의 틀 안에서 탈락해버린 시간을 탐구하는 과정을 의미한다"면서 "예를 들어 테이블 위에 있는 컵과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난 컵 사이에 존재하는 컵의 시간이 바로 '없는 시간'이다"고 설명했다.
이들이 이처럼 탈락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없는 시간'에 주목하는 이유는 뭘까.

보이지 않지만, 몸으로 감지되는 추상적 감각의 다양한 상태를 탐구하면 예술의 근원에 좀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다는 신념 때문이다.

손현선은 "작품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따로 없다. 주제가 중요하지는 않다"면서 "공연이라는 시간과 전시의 시간이 어떻게 융합될 수 있는지를 살피고, 이를 관객과 무대가 함께 경험하는 것이 이번 공연의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두 기획자의 의도를 충실히 반영할 수 있도록 이번 공연은 갖가지 실험적인 무대 장치와 함께 진행된다.

공연 시작 30분 전에 관객이 입장할 수 있도록 해 전시 작품을 직접 만져보고 각 작품에 부여된 텍스트도 읽어볼 수 있도록 했다.

또 공연 중간에 객석의 좌석을 없애고 객석과 무대를 구분하지 않은 상태로 공연을 진행할 계획이다.

김신록은 "마치 맛있는 요리를 먹으면 더 구체적으로 음식을 감각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라며 "무대 위에서 일어나는 시간을 함께 경험하면서 인식과 영감은 물론 신체의 확장까지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신록과 손현선은 지난 2021년에 퍼포먼스 공간 윈드밀에서 개최된 전시 '사이드-워크(side-walk)'에서 '마음하는 몸'이라는 전시를 통해 처음으로 함께 작업했다.

손현선은 몸을 주제로 한 자신의 작품에 김신록의 목소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느꼈다고 한다.

손현선은 "첫 섭외 전화에 김신록이 곧바로 수락했다"면서 "첫 통화에서 작품에 대한 진중한 조언을 할 정도로 큰 관심을 보였고, 그렇게 두 사람의 작품 협업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이 전시에서 '무엇인가로 만들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개체'인 '질료'에 관심을 두게 된 두 사람은 이듬해 3월 예술의전당 아카데미 대담 프로그램 '소소살롱'에서 '질료가 되는 기쁨'을 주제로 관객들을 만나며 협업을 확장했다.

실제로 만나 처음 협업을 한 두 사람은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연극과 전시를 접목하는 공연을 해보자고 의기투합했다.

이후 꾸준한 연구와 탐색을 거쳐 2년 만에 세종문화회관의 '싱크 넥스트 '에서 새로운 협업에 나서게 됐다.
손현선은 "2022년 협업을 통해 두 사람이 감각하고 더듬고 있는 세계가 서로 닮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면서 "막연하게 더듬고 있던 시각 예술가의 세계가 또 다른 방식으로 확대되는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김신록도 마찬가지로 손현선과의 협업을 통해 예술적 시각을 보완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더듬는 배우들은 10시간을 연습해도 손에 잡히는 실체적 감각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손현선의 작품과 작업을 지켜보면서 손에 닿는 물질적인 작업을 하는 예술가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이번 공연을 마친 뒤 각자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가 현업에 충실할 계이다.

손현선은 오는 10월 화가 한성우와 함께 2인전 전시회를 준비 중이다.

김신록도 다음 달 말부터 내년 초 방영되는 MBC 드라마 '언더커버 하이스쿨' 촬영에 돌입한다. 함께 할 때마다 도발적인 실험 무대로 관객들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던진 두 사람의 다음 협업 작품이 무엇 일지 벌써 궁금해진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