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는 지금]샹젤리제에 흑인 여성 조각·루브르의 '올림피즘'…예술올림픽 D-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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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 간 우정 상징하는 앨리슨 사르의 조각상'근대올림픽의 아버지' 피에르 쿠베르탱(1863~1937)은 1896년 제1회 아테네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10여년 뒤 이렇게 썼다. "올림픽이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고 원래의 아름다움을 되찾을 때가 왔다. 고대 올림피아 제전의 황금기, 심지어 네로 황제가 군림한 뒤로도 예술과 문학은 스포츠와 결합해 올림픽의 위대함을 꽃피웠다.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
'파리 3대 미술관'은 저마다 올림픽 특별전 선보여
쿠베르탱의 염원이 한 세기가 지나 프랑스의 문화 중심지 파리에서 이뤄졌다. 2024 파리 올림픽과 패럴림픽은 운동 선수들만의 제전이 아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차원에서 마련한 프로그램은 물론, '파리 3대 미술관'으로 꼽히는 루브르박물관, 오르세미술관, 퐁피두센터도 특별전을 열면서 '문화 올림픽'에 뛰어들고 있다.파리의 대표적인 명소 샹젤리제 공원에 아프리카 전통 의상 차림의 여성 흑인 조각상이 들어섰다. 양손에는 올림픽 우승자에게 수여하는 올리브 나무와 올림픽 성화를 쥐고 있다. 승자만의 공간이 아니다. 행인 누구한테나 쉼터를 내어준다. 조각을 둘러싼 6개의 의자는 서로 다른 대륙과 산업, 직업, 관심사를 의미한다.
IOC가 주도하는 '올림픽 아트 비전'의 일환으로 마련된 공공 예술 '살롱'이다. 저명한 예술가를 선정해 올림픽 가치에서 영감을 받은 독창적인 예술작품을 개최 도시에 설치하는 프로그램이다. 지난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선 프랑스 예술가 자비에 베이앙이 올림픽을 상징하는 다섯 가지 색으로 칠한 군상이 들어섰다.올해 올림픽에서 선정된 작가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앨리슨 사르(68)다. 1970년대부터 아프리카 디아스포라와 흑인 여성을 주제로 조각과 혼합 매체 등을 선보여온 작가다. 미국 흑인 여성을 기리는 최초의 공공기념물 중 하나인 뉴욕의 해리엇 터브먼 기념상도 그의 손끝에서 나왔다.아프리카와 카리브해, 라틴 아메리카 민속 예술로부터 영감을 받은 그의 작품은 소외된 이들에 대한 관심을 환기한다. 그는 이번 전시를 앞두고 "파리 시민들에게 선물하는 이 작품이 문화와 국경을 넘어 우정과 상호 연결의 정신을 상징하는 통합의 장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올림픽의 의미를 돌아보는 정부 차원의 문화 행사는 '올림피즘, 세계사' 전시로 이어진다. 600여점의 아카이브 자료를 통해 올림픽 첫해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적인 순간들을 정리했다. 전시는 파리의 역사박물관인 팔레 드 라포르트 도레에서 9월 8일까지 열린다.
미국의 흑인 육상 선수 제시 오언스의 멀리뛰기 사진도 그중 하나다. 가난한 노예 집안 출신인 그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단거리 4관왕을 거머쥐었다. 당시 나치 정권이 내세우던 인종 우월주의를 단번에 무색하게 만든 순간이다.루브르박물관의 '올림피즘: 현대의 발명, 고대의 유산' 특별전은 올림픽의 뿌리를 찾아 떠나는 여정이다. 고대 그리스 올림피아 제전의 기원으로 알려진 헤라클래스 신화의 한 장면을 묘사한 도자기 등 유물을 선보인다. 제1회 근대올림픽 마라톤 대회 우승자한테 부상으로 주어진 '브레알의 은잔'도 주요 볼거리다.오르세미술관은 근대올림픽이 태동한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 작품을 중심으로 맞선다. '나비파'를 창립한 프랑스 화가 모리스 드니의 회화가 대표적이다. 나무 덤불 속에서 배드민턴을 치거나 꽃을 따고 목욕하는 여성들을 순수한 색채와 상징주의를 결합해 그렸다.루브르박물관과 오르세미술관이 각각 고대와 근대를 다뤘다면, 퐁피두센터는 현재와 미래를 보여준다. 내부의 철근 구조물이 밖으로 노출된 건물의 외벽이 대형 미디어아트 전시장으로 변신했다. 나이키와 협업한 '아트 오브 빅토리' 전시다. 에어(AIR) 시리즈의 탄생 과정을 중심으로 스포츠 분야의 기술과 디자인 혁신을 조명한다.
안시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