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터 만들어 먹을 시간에 프린셉의 '달콤한 휴식'을 감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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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이용재의 맛있는 미술관요즘 어린이들도 ‘탈무드’를 읽을까? 유대인의 법령집 ‘미쉬나’에 대한 해설판 모음집인 탈무드의 축약본은 내 어린 시절 필독서였다. 요즘의 세계정세를 감안하면 읽은 이유가 무색해지는 가운데, 아직 두 꼭지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다. 하나는 ‘아이들에게 물고기 낚는 법을 가르쳐라’이고 또 다른 하나는 ‘우유에 빠진 개구리 세 마리’이다. 공교롭게도 둘 다 먹을 것 이야기이다.둘 가운데 개구리 이야기가 좀 더 흥미롭다. 개구리 세 마리가 어쩌다가 우유 통에 빠졌는데 두 마리는 포기한 나머지 익사했다. 나머지 한 마리는 계속 헤엄을 친 끝에 우유를 버터로 굳혀 발로 디뎌 빠져나와 살 수 있었다. 불굴의 의지가 교훈인 흥미로운 이야기이지만 이제 그다지 신빙성이 없게 들린다. 무엇보다 과정이 너무 지난하기 때문이다.우유에서 크림을, 크림에서 버터를 분리해내는 건 맞다. 균질화 과정 때문에 거의 맛볼 수 없지만, 표면에 몽글몽글한 크림 덩어리가 떠 있는 우유를 요즘도 찾을 수 있다. ‘군계일학’ 또는 ‘알짜’를 의미하는 ‘크림 오브 더 크롭(cream of the crop)’이 바로 이 우유 표면에 뜬 크림에서 나왔다. 말 그대로 맨 꼭대기의 가장 두드러지는 존재를 뜻한다.만약 탈무드의 개구리가 우유가 아닌 크림 통에 빠졌더라면 정말 살았을 수도 있다. 우유에서 크림을 분리하는 과정을 건너뛰면 그나마 덜 힘들기 때문이다. 헤엄을 쳐 원심력을 불어 넣으면 종내에는 유지방이 크림에서 분리될 수 있다. 우리가 먹는 버터도 같은 원리를 산업적으로 적용한 공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교반기로 우유에서 크림을, 크림에서 유지방을 분리해낸다.
발렌타인 카메론 프린셉
원심력이 원리라면 집에서도 버터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가능하다. 실제로 19세기까지 버터는 집에서 소규모로 추출해 먹었다. 그러다가 1878년 스웨덴의 엔지니어 칼 구스타프 패트릭 데 라발(1845~1913)이 발명한 원심 분리기 덕분에 대량 생산할 수 있었다. 정말 개구리가 헤엄을 치듯 젓고 젓고 또 저어주면 되는데, 솔직히 인력으로 해내기에는 지루한 노동일 수밖에 없다.그래서일까? 교반기를 다루는 여성의 표정이 밝다고는 볼 수 없다. 영국의 라파엘 전파 화가 발렌타인 카메론 프린셉(1838~1904)의 작품 ‘버터천(The Butter churn)’ 속의 여성 말이다. 산업적인 규모로 생산하기 이전 버터는 가정에서 소규모로 만들어 먹었다고 했다. 이를 위해 고안된 교반(휘저어 섞다, churn)기가 있었으니, 바로 프린셉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나무통에 긴 손잡이가 달려 있다.손잡이의 끝에는 구멍이 뚫린 원반이 달려 있어 원심력과 함께 압력을 준다. 그냥 젓는 게 아니라 누르듯이 저어주는 것이다. 유튜브에는 이런 옛날 방식으로 버터를 분리하는 영상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20리터의 우유에서 궁극적으로 버터를 분리하는 데 삼사십 분이 걸린다고 한다. 그 정도면 길지 않은 시간 같지만 해보라고 하면 사양할 것 같다. 사서 먹는 버터가 훨씬 더 맛있으니 애쓰는 의미가 없다.
그렇다, 집에서 버터를 만들어 봐야 썩 맛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 제과제빵용 믹서-나는 가지고 있다-가 있다면 손쉽고 빠르게 크림에서 버터를 분리할 수 있다. 더 단순한, 유리병과 톱니바퀴의 교반기가 달린 뚜껑으로 이루어진 기계식 버터 교반기도 쉽게 살 수 있지만 어떻게 만들어도 버터는 그다지 맛있지 않을 것이다. 발효 과정을 거치지 않은 스위트 크림(sweet cream)에 불과하기 때문이다.진짜 맛있는 버터는 크림을 유산균 발효시켜 만든다. 발효를 통해 약간의 신맛을 불어넣으므로 느끼하지 않고 맛의 표정도 다채롭다. 그런 제품이 널린 현실에서 굳이 집에서 덜 맛있는 버터를 애써 만들어 먹을 이유는 없다. 쓸데없는 노동일랑 자제하고 그 시간에 맛있는 기성품을 먹으면서 프린셉과 같은 화가의 아름다운 작품을 즐기는 게 훨씬 더 이득이다. ‘달콤한 휴식’, ‘겨울의 첫 손짓에 여름이 사라지네(1897)’, ‘신데렐라(1899)’ 등이 있다.이용재 음식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