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마고 카페에서 몰래 엿들은 헤밍웨이-피카소-피츠제럴드의 대화

[arte] 박효진의 이상한 나라의 그림책

헤밍웨이, 피카소, 피츠제럴드...
미국 문학사에 큰 영향을 미친 세 거장이
20세기 초 당시 즐겨읽은 그림책
▪ 장면: 파리 카페 레 뒤 마고(Les Deux Magot) 카페
▪ 인물: 어니스트 헤밍웨이, 파블로 피카소, F. 스콧 피츠제럴드
▪ 시간: 1925년 8월 10일 18:33분
이미지. ⓒ박효진 '길리북스' 대표 (AI로 제작했다)
§ 헤밍웨이: 이런! 매우 덥군! 그래도 파리의 여름은 멋지지. (물을 한 잔 들이켜며) 파블로, 요즘 아주 흥미로운 일이 있어! 아이들이 볼 수 있는 그림책 이야기를 쓰고 있어. 어떻게 하면 글과 그림이 조화롭게 어울릴 수 있을지 고민 중이야. 넌 멋진 화가이니까, 나에게 좋은 조언을 해주길 바라!§ 피카소: 흥미롭군, 헨리. 그림책이라... (잔을 옆으로 옮기며) 나는 항상 그림이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이야기를 보완해 주길 원해. 중요한 건, 글이 모든 걸 설명하려 하지 않고 그림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여백을 남기는 거야.

§ 피츠제럴드: 나는 예술적 감각보다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을 고민하고 있었어. 헨리, 네 문체는 아주 간결하고 강렬하지. 이런 스타일이 그림책에도 어울릴까?

§ 헤밍웨이: 맞아, 스콧. 그게 문제야. 내 글은 간결하지만, 어린 독자들에게는 충분히 설명적이어야 할 것 같아. 하지만, 파블로가 말한 대로, 그림이 많은 걸 상상할 수 있게 한다면 내 스타일대로 좀 더 간결하게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피카소: 맞아. 예를 들어,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게 그림에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어. 색상과 형태, 그리고 인물의 표정까지. 한 장면이 천 마디 말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거지.

§ 피츠제럴드: 그렇다면 캐릭터 설정도 중요하겠군. 나는 종종 세밀한 심리 묘사에 집중하곤 했는데, 어린이들에게는 더 단순하고 직관적인 캐릭터가 필요할 거야. 캐릭터들이 그들의 성격을 바로 드러내도록 말이지.

§ 헤밍웨이: 그 부분에 대해서도 동의해. 아이들에게는 복잡한 심리보다는 쉽게 공감할 수 있는 행동과 감정이 더 중요하겠지. 파블로, 너라면 캐릭터를 어떻게 그릴 거야?§ 피카소: 나는 캐릭터의 핵심 특성을 강조하겠어. 예를 들어, 용감한 캐릭터라면 눈을 크게 그리고, 지혜로운 캐릭터라면 머리를 크게 그리면서 단순하면서도 명확하게 표현하는 거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색상이 중요해. 각 캐릭터의 감정과 성격을 색으로 표현할 수 있어.

§ 피츠제럴드: 그것참 흥미롭군. 헨리, 너의 간결한 문체와 피카소의 강렬한 색채가 만난다면 정말 멋진 그림책이 될 것 같아. (목소리를 높이며)

§ 헤밍웨이: 고마워, 피츠제럴드. 그리고 파블로, 네 조언 잘 기억하도록 하겠네. 이제 글과 그림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지 더 명확해졌어. 이 책을 완성할 때까지 너희들의 의견을 계속 참고할게.§ 피카소: 언제든지 말해, 친구. 그림은 내 삶이니까. (헤밍웨이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 피츠제럴드: 나도 매우 궁금한걸. 완성되면 이 카페에서 다시 만나도록 하지.
[위에서부터] 어니스트 헤밍웨이, 파블로 피카소, F. 스콧 피츠제럴드
어니스트 밀러 헤밍웨이(Ernest Miller Hemingway, 1899~1961년),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년), F. 스콧 피츠제럴드(Francis Scott Key Fitzgerald, 1896~1940년) 이 세 사람은 로스트 제너레이션(Lost Generation)*을 대표하는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이다. 20세기 초반 파리에서 활동하면서 서로 만나 각자의 작품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끊임없는 대화들로 그 당시의 황금 같은 시간을 창조적 에너지로 채워나간다.

피카소는 예술적 동료로서 헤밍웨이를 ‘헨리’라고 칭했으며 서로의 예술적 성취를 존중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헤밍웨이의 집에서는 피카소의 작품이 걸려있을 정도로 피카소의 작품을 좋아했다. 특히 헤밍웨이의 자서전이나 편지에서 피카소에 대한 감탄과 존경을 표현한 글이 많이 보인다. 헤밍웨이가 스페인에서 머무를 때는 피카소의 작업실을 방문하며 그의 작업 과정을 관찰하고 많은 영향을 받았다.

또한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의 저자 F. 스콧 피츠 제럴드도 1925년 위대한 개츠비 출간 이후 파리에서 헤밍웨이를 만나 교류하였다. 이 둘은 만남 초기에는 존경하고 친구로서 좋은 관계를 유지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긴장과 갈등이 증가했다. 두 작가를 비교하는 대중의 시각과 서로의 가치관에 대한 부정, 갈등으로 복잡하고 감정적으로 미묘한 관계를 맺기도 했지만, 이들의 관계는 미국 문학사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이 세 거장이 자주 들르던 파리의 카페 ‘레 뒤 마고(Les Deux Magot)’.
파리의 카페 '레 뒤 마고(Les Deux Magot)'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약 10년 전 파리의 카페 레 뒤 마고를 방문했을 당시의 느꼈던 감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북적거리는 파리지엔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날이 선 감성과 열띤 도시의 바이브가 나에게 그대로 전달되었다. 100년 전 그들이 서로의 작품과 스타일에 관해 토론하고 비평하던 그 자리. 같은 자리에 앉아 나는 지금의 시대상을 대변하고 있는가. 그 자리에서 한참을 고뇌했던 기억이 있다.
파리의 카페 '레 뒤 마고(Les Deux Magot)' 내부 / 사진. ⓒ박효진 '길리북스' 대표
과연 거장들은 당시 어떤 그림책을 보았을까? 그들이 카페에서 그림책에 관해 이야기한다면 어떤 대화였을까? 위의 대화는 그들의 문학, 예술적 취향과 가치관, 스타일 등을 반영하여 가공해 보았다. 실제로도 헤밍웨이는 자녀들에게 피카소의 그림을 자주 보여주며 그에 대해 이야기하였고, 그림책에 대한 애정도 깊었다고 한다. 20세기 초에 그들이 보았던 그림책들은 현재에도 숨 쉬고 있다.

100년 스테디셀러 ‘위니 더 푸(Winnie-the-Pooh by A.A. Milne, 1926년)’, 어린 시절 이 그림이 그려져 있던 공책을 졸라서 샀던 ‘피터 래빗(The Tale of Peter Rabbit by Beatrix Potter, 1902년)’, 세기의 그림책 ‘어린 왕자(The Little Prince by Antoine de Saint-Exupéry, 1943년)’, ‘호기심 많은 조지(Curious George by H.A. Rey and Margret Rey, 1941년) 등이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다.
도서 이미지출처. dndgalleries, 위키피디아, raptisrarebooks, itheacavintage 홈페이지
20세기 초 파리의 예술가들이 보았던 그림책들의 같은 페이지를 넘겨보면서 그들의 숨결을 느껴본다. 아이들에게 피터 래빗의 그림책을 보여줄 때 헤밍웨이, 피카소, 피츠제럴드의 이야기를 함께 해주는 것은 어떨까. 장차 예술의 거장이 될 아이들에게 말이다.

"파리는 오래된 도시였고 우리는 너무 젊었으며 이 세상에 그 무엇도 단순한 것은 없었다.
갑자기 생긴 돈도, 옳고 그름도, 달빛을 받으며 곁에 잠들어 있는 한 사람의 고른 숨소리마저도……"
- 파리의 축제(A moveable Feast), 어니스트 헤밍웨이
1939년의 파리 샹젤리제 거리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 로스트 제너레이션(Lost Generation): 로스트 제너레이션(Lost Generation)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주로 1920년대에 활동한 미국 작가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전쟁의 충격과 사회적 변화로 인해 환멸과 상실감을 느끼며 방황했던 젊은 세대를 의미. 이 용어는 작가이자 사회운동가인 거트루드 스타인(Gertrude Stein, 1874~1946년)이 처음 사용했고,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자신의 작품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The Sun Also Rises)’의 서문에서 이를 인용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많은 작가들이 미국을 떠나 유럽, 특히 파리로 이주하여 새로운 예술적 영감을 찾고자 했다. 파리는 예술과 문학의 중심지로서 로스트 제너레이션의 작가들이 모여들어 서로의 작품에 영향을 주고받는 장소가 되었다.

박효진 '길리북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