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티몬·위메프는 어쩌다 이 지경이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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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마켓 신화 구영배 대표티몬, 위메프의 정산 지연 사태는 여러모로 충격적이다. 판매자(셀러)에게 대금 결제를 제때 못 했다는 부분도 이해가 잘 안 가는데, 그 금액이 수천억원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크다는 점은 더 놀랍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고 보니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것은 아니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한때 티몬과 위메프는 쿠팡과 함께 ‘소셜커머스 3인방’으로 불릴 만큼 전도유망했다. 하지만 온라인 쇼핑 시장이 쿠팡과 네이버 쇼핑으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낙오자’가 발생했고 티몬, 위메프도 그 대열로 밀렸다. 적자가 대규모로 쌓였고 이용자는 빠르게 이탈했다. 결국 버티지 못하고 2020년께 매물로 나왔다. 하지만 누구도 선뜻 인수하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시장 판도를 뒤집을 만한 마땅한 전략이 없었던 탓이다.
티몬·위메프 등 적자사 줄인수
재무구조 개선 없이 외형 확대
정산금으로 M&A 유용 의혹
고양이에게 생선 맡긴 셈
플랫폼 사업에 대한 경종 울려
안재광 유통산업부 차장
이때 큐텐이 나타났다. 당시 싱가포르 쇼핑몰이라는 것 외엔 별로 알려진 게 없었다. 2022년 티몬을, 2023년 위메프를 사들였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인터파크쇼핑, AK몰까지 추가로 인수했다. 이 과정에서 대규모 자금 동원은 없었다. 인수 대가로 물류 자회사 큐익스프레스 지분을 주거나 거의 공짜로 인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종의 무자본 인수합병(M&A)이었다. 11번가도 이런 방식으로 인수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통상 적자가 큰 회사를 인수한 이후 자본을 확충하고 내실을 다지는 과정을 거친다. 쿠팡도 일본 비전펀드의 투자금 30억달러 등을 자본으로 활용해 대규모 적자를 버텨낼 수 있었다. 큐텐은 그렇지 않았다. 인수한 기업에 자금 투입 없이 외형을 더 키우는 데 주력했다. 오히려 회사를 더 샀다. 올 들어선 미국의 유력 온라인 쇼핑몰 위시를 인수했다. 티몬, 위메프는 자본잠식 상태에 빠져 있는데 또 다른 적자 회사를 인수해 재무적 부담을 키웠다. 판매자들은 위시 인수 과정에서 자신들이 받아야 할 정산금을 회사가 유용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전조는 또 있었다. 티몬은 감사보고서를 제출 기한인 지난 4월을 훌쩍 넘겨 지금까지도 내지 않고 있다. 감사보고서 미제출은 재무 상태가 급격히 악화한 기업들에 많이 나타난다. 티몬은 2022년 1500억원 이상의 손실을 냈는데, 그해 거둔 매출(1204억원)보다 적자가 더 컸다. 이런 상황에서도 티몬은 공격적인 영업을 했다. 지난달에는 현금처럼 쓸 수 있는 문화상품권 등 각종 상품권과 포인트를 10%나 할인 판매했다. 상품권, 포인트는 결국 빚이어서 재무 부담을 더욱 가중시켰다. 단계를 하나하나 살펴보면 이렇게 무모할 수가 없다.
정산 대금도 티몬, 위메프가 업계에서 가장 늦게 주는 편이었다. 판매가 이뤄진 뒤 최대 두 달가량 지나 지급했다. 비슷한 사업 모델을 가진 네이버, G마켓, 11번가 등은 구매 확정이 이뤄진 날로부터 다음날 바로 정산된다. 이 기간이 늦어도 열흘을 넘기지 않는다. 중개업체가 남의 돈을 두 달이나 갖고 있었다는 사실은 말이 되지 않는다.여러 부실 징후에도 티몬과 위메프에 등록한 판매자는 6만 명을 넘었다. 월간 이용자는 800만 명을 웃돌았다. 대규모 적자는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쿠팡조차 2010년 창업 후 13년간 적자를 냈으니 다들 그러려니 했다. 지금도 쿠팡 이외에 이익을 내는 온라인 쇼핑몰은 드물다.
큐텐을 이끄는 구영배 대표의 ‘후광 효과’도 있었던 것 같다. 구 대표는 인터파크 재직 시절인 2000년 G마켓을 세우고, 2009년 미국 이베이에 매각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런 그가 2010년 싱가포르로 건너가 창업한 회사가 큐텐이다. 구 대표가 10여 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와 M&A에 나서자 많은 사람이 제2의 쿠팡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런 기대는 허망하게 무너져 내렸다. 사태 수습을 위해선 결국 구 대표가 나서야 하는데 자취를 감췄다.
이대로 가면 ‘G마켓의 신화’는 ‘티몬, 위메프 먹튀’란 오명으로 바뀔 것 같다. 양사는 이번 사태로 궤멸적 타격을 입었다. 신뢰를 잃어버린 플랫폼에 누가 머물러 있겠나. ‘티메프’ 사태는 그저 사람들만 모아놓으면 돈을 벌 수 있다는 플랫폼 비즈니스의 성공 방정식에 일대 경종을 울렸다. 사람들의 돈을 임의로 돌려막기로 활용하는 상도의의 타락도 여실히 드러났다. 결과적으로 거대한 다단계 사기극이 돼버렸다. 응분의 책임을 물어 믿음과 신뢰로 먹고사는 플랫폼 사업의 엄중함을 되새기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