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개월간 요트로 세계 일주…한국 여성 클리퍼대회 첫 완주

한국인 2명, 7만4천㎞ 전 구간 항해하고 英 귀항
"어려울까 지레 포기했던 것, 후회 없이 다 해보려 도전"
전 세계 바다를 11개월간 요트로 항해하는 '클리퍼 세계일주 요트대회'(Clipper Round the World Yacht Race) 전 구간을 한국인 두 명이 완주했다. 주인공은 문지현(44·남), 이나경(38·여) 씨다.

이씨는 한국 여성으로는 최초로 이 대회 전 구간 완주에 성공했다.

이들은 27일(현지시간) 오후 다국적 팀인 베케젤라(BEKEZELA) 팀의 일원으로 영국 잉글랜드 남부 포츠머스항에 귀항, 11개월의 대장정을 마쳤다. 지난해 9월 포츠머스에서 출항해 스페인, 우루과이, 남아프리카공화국, 호주, 베트남, 중국, 미국, 파나마, 스코틀랜드 등지의 14개 항을 거쳐 포츠머스로 돌아왔다.

이씨는 이날 입항한 뒤 "인생에서 정말 값진 경험이었기에 도전을 시작한 걸 후회하지 않는다"고 감격해했다.

문씨도 "무사히 도착하게 된 점이 그저 감사하다"고 소감을 말했다. 항해 중 어려웠던 부분을 묻자 이씨는 궂은 날씨를 뚫고 항해했을 때와 바람 한 점 없는 무풍지대에 갇혔을 때 느꼈던 압박감을 꼽았다.

좁은 공간에서 거의 1년에 걸쳐 여러 명이 팀을 이뤄 지내야 하는 환경상 팀원간 마찰을 피할 수 없다는 문제도 있었다.

이씨는 "여기서는 숨을 곳이 없기에 솔직한 나 자신이 된다"며 "좋은 점을 인정해주고 조금 못난 점이 있어도 서로 보듬어 안아주며 한 팀이 됐다"고 설명했다.
문씨도 "다들 본인의 위치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이 한데 모였기에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고 믿었다"고 말했다.

격년제인 이 대회는 세계 최초로 무동력으로 중간 기항지 없이 세계 일주에 성공한 로빈 녹스-존스턴 경이 만든 것으로 1996년 시작됐다.

길이 70피트(약 21m)의 해상 경주용 요트로 4만해리(7만4천㎞)를 8구간으로 나눠 경주한다.

항해 경험이 없는 아마추어가 참여할 수 있는 대회로는 세계에서 가장 명성 높은 대회로 꼽힌다.

아마추어 참가자들은 4주간 집중훈련을 받아야 대회에 참가할 수 있다.

전문적인 선장(skipper)이 아마추어 선원들을 이끌어 항해한다.

장기간에 걸쳐 세계를 일주하는 것이기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과거 사망자가 나온 적도 있었고 중도에 경주를 포기하는 사례도 종종 있다.

이씨는 이번 세계일주 전에는 요트 항해 경험이 없었다.

대학에선 전기전자공학을 전공했고 10여년간 금융업계에서 일한 그는 싱가포르에서 보험계리사로 일하던 중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인지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너무 어렵게만 생각해 도전하기도 전에 포기했던 걸 그대로 지나치고 살아가면 후회가 남지 않을까, 하고 싶은 건 다 해보자는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문씨는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한국요트클럽에서 활동해왔다.

이번에는 휴직하고 세계 일주에 도전했다.

문씨는 항해의 매력이 무엇인지 묻자 "직접 해봐야 알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몇 마디 말로 쉽게 표현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씨도 "바다는 아무것도 없지만 가득 차 있기도 한 곳이고, 고요하고 평화롭다가도 궂은날엔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 두려워지는 곳"이라며 "그만큼 살아 있는 데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클리퍼 대회에는 한국 팀인 '이매진 유어 코리아'(Imagine your Korea)가 2019년 출항한 바 있다.

당시 대회는 코로나19로 중단됐다가 재개돼 2022년 막을 내렸다. 경남도와 통영시는 지난해 11월 클리퍼 벤처스와 2025/2026 대회 유치를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