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뒤에도 기억될 '올림픽 혁명'…파리올림픽 개막식의 명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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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는 지금] 2024 올림픽 개막식 리뷰프랑스 파리 전체가 역사상 가장 크고, 가장 파격적인 무대가 됐다. 80명의 캉캉댄서들은 1820년대 파리 물랭루즈 카바레로 사람들을 이끌었고, 마리 앙투아네트가 투옥됐던 콩시에르주리에는 테라스 층층마다 메탈 밴드 ‘고지라’ 멤버들이 점령했다. 노트르담 대성당, 루브르박물관 등 파리의 건물 지붕 위를 성화를 든 ‘복면 신사’는 4시간 동안 쉴새없이 뛰어다녔고 파리오페라발레단 무용수들은 시청 지붕 위에서 우아한 춤을 선보였다. 프랑스 피아니스트 알렉상드르 칸토로우는 모리스 라벨의 ‘물의 유희(Jeux d’eau)’를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완주했다. 27일(현지시간) 저녁 7시 30분 프랑스 파리 센강 인근에서 열린 개막식은 파격 그 자체였다. 폭우 속에서 펼쳐진 이 개막식은 100척의 보트에 태운 선수단 6000~7000명의 입장식과 동시에 이뤄져 하나의 스펙터클 오페라가 됐다. 이번 개막식은 쇼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파리의 혁명 정신인 자유 평등 박애가 여전히 세계의 근간이 된다는 것을 문화적으로 보여줬다(뉴욕타임스)”는 것, 그리고 “새로운 세대를 올림픽에 다시 끌어들일 수 있는 담대한 아이디어(워싱턴포스트)”라는 평가를 받았다. 게임과 애니메이션 캐릭터는 물론 성소수자, 여성 혁신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프랑스의 문화 유산과 과감히 접목했기 때문이다. 토마 졸리 감독 “개회식 메시지는 사랑”
4시간 동안 전세계 사로잡은 개막식
스트리밍 시대에 맞춘 혁신적 전개
'사랑'과 자유 평등 박애, 동시대 재해석
82년생 스타 연출가 토마 졸리
관현악·록 밴드·팝 등 앙상블
사전 제작한 영상과 맞물려
폭우도 못 막은 사상 첫 수상 개막식
선수단, 센 강서 배타고 등장
노트르담·루브르 등 배경으로 복면남 성화 봉송
2024 파리 올림픽 개막식은 ‘최초의 역사’로 오래 회자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초의 야외 개막식에 대해 걱정의 시선은 개막 직전까지 많았다. 하나로 집중된 스태디움 형태가 아닌 도시 곳곳을 활용한다는 발상이 과감해도 너무 과감하다는 것. 이런 우려는 영상과 다양한 공연이 잠식시켰다. 세계적인 팝스타 레이디 가가가 펼친 카바레 공연 형식의 무대, 프랑스 혁명을 상징하는 뮤지컬 ‘레 미제라블’ 화면, 오페라 가수 마리나 비오티와 록 밴드 고지라, 파리 관현악단 합창단, 프랑스 팝스타 아야 나카무라와 군악대의 프랑스 학술원 앞 퍼포먼스까지 눈을 뗄 수 없는 공연들이 파리 건물 곳곳에서 펼쳐졌다. 이번 개회식은 프랑스의 배우 겸 스타 예술감독 토마 졸리(42)가 감독했다. 총 12개 막으로 구성했다. 3000명에 이르는 공연자들이 참여한 이번 개회식은 그 동안 셰익스피어, 세네카 등 대가들의 작품을 과감하게 재해석해온 그의 역량이 발현됐다는 평가다.야외 개막식 현장과 기존 준비한 영상들이 교차되면서 TV나 스트리밍 서비스로 중계를 본 사람들은 전체 흐름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었다. 토니 에스탕게 파리올림픽 조직위원장은 “기존 규범을 깨뜨리고 누구도 가보지 못한 영역까지 도전하는 예술가”라고 평가했다. 오페라와 연극 무대를 다수 연출해온 그는 모든 장르를 융합했다. 클래식과 EDM, 뮤지컬에서 오페라, 팝 음악에서 메탈밴드, 무용과 패션쇼까지 아우르는 그야말로 종합 예술을 선보였다. 졸리 감독은 “낭만의 도시 파리에서 열리는 올림픽 개회식에서 전하려는 메시지는 사랑”이라면서 “프랑스의 문화와 언어, 종교, 성적인 다양성을 전 세계에 알리겠다”고 말했다. 그의 메시지는 곳곳에서 드러났다. 성소수자, 역사 속에 잊혀졌던 여성들, 파리의 노동자들까지 개막식의 주인공이었다. 특히 6막에서 '여성의 힘'을 이야기할 때 센강 곳곳 숨겨져 있던 구조물에서 여성들의 황금빛 동상이 차례로 떠올랐다.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 선언문 초안을 작성한 문학가이자 정치인 올랑프 드 구즈(1748~1793), 1922년 세계 여자대회를 최초로 조직한 운동선수 알리스 밀리아트(1884~1957), 프랑스 소르본대에서 공부한 최초의 흑인 여성이자 저널리스트였던 플레트 나르달(1896~1985), 탐험가이자 식물학자로 세계일주에 성공한 최초의 여성 잔느 바레(1740~1807), 글쓰기로 생계를 꾸린 최초의 여성 작가이자 철학자 크리스틴 드 피장(1364~1431) 등이다. 이들의 동상이 떠오를 때 34명의 여성 합창단이 가수 악셀 생 시렐과 함께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를 불렀다. 2막의 '하나된 파리'에서는 노트르담 대성당 보수 공사에 참여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움직임을 모 르 플라덱이 안무한 춤이 펼쳐졌다. 빅토르 르 마스네의 '동시성'이라는 이름의 곡이 배경음악으로 쓰였는데, 공사장 도구들의 소리를 사용해 작곡됐다. 이들은 조폐국 앞 금빛으로 물든 건물 앞에 물 위에서 추는 군무로 시선을 사로 잡았다.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셀린 디옹의 무대. 개막식 후반부 성화대에 불이 붙고, 금빛 열기구가 '영원의 불빛'을 주제로 하늘로 떠오르자 에디트 피아프의 '사랑의 찬가'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이때 에펠탑 테라스에 등장한 건 캐나다 출신의 세계적 디바 셀린 디옹이었다. 은빛 드레스를 입고 빗속에서 뿜어낸 그의 목소리는 희귀병을 극복하고 다시 무대에 선 스타의 이야기와 맞물려 더 감격스러운 장면으로 각인됐다. 셀린 디옹은 몇 년간 활동을 중단했을 정도로 온몸이 굳어가는 '근육 강직 질환'을 앓고 있었으나 이날만큼은 90년대 전성기로 돌아간 것 같은 모습과 목소리로 전 세계를 울렸다. “종교 왜곡 불편해…산만했다”비난도
4시간 동안 12개의 막이 이어지는 개막식 내내 날렵하게 파리의 고풍스러운 건물 위를 뛰어다니고 하늘 위를 날던 ‘수수께끼의 복면 신사’도 화제였다. 해설가들은 “괴도 루팽 아니냐”는 해설을 내놨지만, 게임업계는 그를 모험·잠입 게임인 ‘어쌔신 크리드 유니티’의 주인공 ‘아르노’로 보고 있다. 게임 속 암살자인 아르노의 행동과 복장이 닮은 데다 이 게임도 파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다. 이 게임을 만든 프랑스 기업 유비소프트는 게임 제작 당시 노트르담 대성당을 가상 그래픽으로 재현하고자 사진 촬영에만 2년의 시간을 썼다. 다만 개막식 자체가 다소 산만하고 과도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파리 현지에서 개막식을 지켜본 이들은 “영상 중계나 스트리밍으로 보는 게 나았겠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다양성을 중시하고 정치적인 메시지를 전하려는 의도가 다소 과도했다는 평가와 논쟁도 이어지고 있다. ‘축제’ 섹션에서 선보인 다빈치의 프레스코화 걸작 패러디 ‘최후의 만찬’이 그렇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날 밤 예수와 12사도를 그린 그림이 드랙퀸 예술가들이 등장하는 것으로 변형해 ‘종교적 모독이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왕비가 단두대에 올랐던, 프랑스 혁명의 상징적인 장면을 연상시키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등장에 대해서도 "괴상하다"는 혹평이 나오기도 했다. 한편 2024파리올림픽의 개최 비용은 약 88억달러(약 12조원)으로 2020 도쿄올림픽 대비 4분의 1 수준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72조원)에 비하면 6분의 1이다. 최초의 야외 개막식 역시 ‘친환경’과 ‘가성비’를 배경으로 나온 아이디어였다. 김보라/구교범/이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