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충실의무 확대 땐 추진 중인 상장 접겠다"

대한상의, 110개 비상장사 설문
대구에 있는 의료기기업체 A사가 기업공개(IPO)를 준비한 건 지난해부터였다. 미래 성장을 목표로 투입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정부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와 주주’로 확대하는 식으로 상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상장 준비 작업을 ‘올스톱’했다. 사업상 자회사들과 내부 거래가 많은 구조인데, 멋모르고 상장했다가 일반 주주로부터 내부거래 적절성 등에 대해 소송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A사처럼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이 회사뿐 아니라 주주로 확대되면 상장을 준비 중인 기업 셋 중 하나꼴로 상장 계획을 재검토하거나 철회하겠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상장을 추진 중인 110개 비상장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40개 업체(36.2%)가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가 확대되면 상장 계획을 재검토하거나 철회하겠다”고 답했다고 28일 발표했다. ‘예정대로 추진하겠다’는 기업은 55.2%(61개), ‘밸류업 기대감으로 더 적극 추진하겠다’는 응답은 8.6%(9개)였다.상장을 재검토 또는 철회하겠다는 기업들은 그 이유로 ‘주주대표소송 및 배임 등 이사의 책임 가중’(70.8%·복수응답)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이와 함께 △주주 간 이견 발생 시 의사결정 지연(40.4%) △경영 보수화 우려(37.3%) △지배구조 등 분쟁 가능성 확대(28.0%) △이익 상충 시 주주 이익을 위한 의사결정 확대(24.2%) △추상적 규정(16.1%) 등도 이유로 들었다.

송승혁 대한상의 금융산업팀장은 “상장을 준비하는 비상장사 중 상당수도 상장사와 똑같은 이유로 상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상장을 포기하는 기업이 늘어난다는 건 밸류업 취지에 역행할 뿐 아니라 자본시장 발전도 가로막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