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싱괴물' 오상욱, 금빛 다리찢기

팀코리아 1호 금메달…'어펜저스' 막내, 전설됐다

韓 첫 사브르 개인전 제패
아시안게임·세계선수권 이어
올림픽 정복…그랜드 슬램 달성

"도쿄올림픽서 함께 우승했던
단체전 멤버들 가장 생각나"
< 금빛 찌르기 > 오상욱이 28일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페메르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결승전에서 다리를 확 찢으며 튀니지의 파레스 페르자니를 공격한 뒤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뉴스1
금메달까지 딱 1점. 14-5까지 달아나며 금메달이 곧 잡히는 듯했다. 오상욱(27·사진)은 멈추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파레스 페르자니(튀니지·세계 13위)를 공격했다. 하지만 단 1점을 남겨두고 계속 제동이 걸렸다. 15점을 완성했음을 확신한 오상욱의 포효와 달리, 매번 비디오 판독이 이뤄졌고 페르자니의 공격 주도권으로 인정됐다. 14-11까지 추격을 허용한 상황, 잠시 투구를 벗은 오상욱의 얼굴에 피로와 실망감이 스쳐 지나갔다.

오상욱은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시작 2초 만에 회심의 찌르기가 통했고 페르자니마저 고개를 끄덕이며 패배를 인정했다. 2024 파리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의 첫 금메달이자 자신의 첫 올림픽 개인전 금메달을 따낸 순간이다.

오상욱이 28일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페메르에서 열린 펜싱 경기 첫날 남자 사브르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을 석권한 오상욱은 이번 금메달로 그랜드슬램의 마지막 퍼즐을 채웠다. 한국 펜싱 역사의 첫 번째 대기록이다.

2014년 고교생 때 태극마크를 단 이후 오상욱은 오랜 기간 대표팀 막내였다. 2021년 도쿄올림픽 개인전 8강에서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탈락했지만 김준호 김정환 구본길 등과 ‘어펜저스’(어벤저스와 펜싱의 합성어)를 이뤄 단체전 금메달을 따냈다.만년 막내이던 그는 이제 한국 사브르의 대들보로 파리에 나섰다. 은퇴한 김준호 김정환의 빈자리를 메워야 하는 부담을 진 그에게 올초 손목 부상이 겹쳤다. 그래도 오상욱은 “운동으로 최대한 몸을 굴려보자는 생각으로 훈련하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했다.

펜싱 종주국 프랑스에서 오상욱은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결승전까지 질주했다. 그에게는 ‘펜싱 괴물’이라는 별명이 따라다닌다. 192㎝의 장신에도 유연함과 빠른 발을 갖춰 단점이 없다. 그의 플레이는 금메달 결정전에서 빛을 발했다. 긴 팔다리를 이용해 페르자니를 몰아붙인 오상욱은 14-5까지 차이를 벌렸다. 반격을 시도하는 페르자니에게 오상욱은 두 다리를 앞뒤로 180도 가까이 찢어 바닥에 밀착하며 공격했다. 비디오 판독 끝에 득점으로 인정되지는 않았지만 대회장 분위기를 다시 한번 그에게로 가져온 순간이었다.

금메달까지 1점을 남겨두고 추격당하던 순간에 대해 오상욱은 “온몸에 땀이 엄청나게 났다”며 “‘여기서 잡히겠어’라는 안 좋은 생각이 많이 났지만 선생님이 할 수 있다고 계속 말씀해주셨다”고 말했다. 이어 “‘잘한다, 잘한다’ 하니까 진짜 잘하는 줄 알고 그렇게 잘할 수 있었던 것 같다”며 웃음을 지었다.우승하는 순간, 오상욱은 도쿄올림픽 영광의 순간을 만들었던 어펜저스 멤버들을 떠올렸다고 한다. 그는 “한솥밥을 먹으며 내가 컸는데, 형들이 나갈 때 정말 큰 변화가 있었다”며 “멤버가 바뀌면서 많이 박살 나기도 하고, 자신감을 잃기도 했다”고 말했다.

최고의 순간을 만들어낸 오상욱은 이제 단체전 2연패에 도전한다. 그는 “단체전은 함께 뭔가를 이겨내고, 못한 부분을 다른 사람이 메워주는 그런 맛이 있는데 개인전은 홀로서기”라며 “단체전까지 금메달을 따고 편히 쉬겠다”고 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