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김수녕·박성현·기보배…여자단체 10연패 명궁의 역사

한국 여자 양궁이 세워온 '명궁의 철옹성'이 프랑스 파리 센강변에서 완성됐다.

임시현(한국체대), 남수현(순천시청), 전훈영(인천시청)으로 이뤄진 여자 대표팀은 29일(한국시간) 파리의 역사적 명소 레쟁발리드에서 2024 파리 올림픽 여자 단체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988년 서울 올림픽부터 3년 전 도쿄 대회까지 한 번도 안 빼놓고 이 종목에서 우승해온 한국 여자 양궁은 이로써 '10연패'의 신화를 완성해냈다.

올림픽에서 특정 나라가 특정 종목에서 이토록 오랫동안 금메달을 독식한 건 매우 드문 일이다.

1984년부터 2021년까지 미국 남자 수영 대표팀의 남자 400m 혼계영 10연패, 1988년부터 2021년까지 중국 여자 탁구의 단식 9연패, 같은 기간 중국 여자 다이빙의 스프링보드 9연패 등이 비견되는 사례다. 김수녕, 박성현, 기보배 등 국가대표 명궁들과 한국 양궁 경기·행정인 전체의 끊임없는 노력이 36년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 원조 신궁 김수녕
한국 여자 양궁의 역사는 김수녕이라는 이름을 빼놓고는 서술이 불가능하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당시 고교 2학년생이던 김수녕은 왕희경, 윤영숙과 여자 단체전에 나서 인도네시아에 30점 차 낙승을 거두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992년 바르셀로나에서는 이은경, 조윤정과 두 번째 단체전 금메달을 합작했다.

1993년 결혼과 함께 은퇴를 선언했던 김수녕은 1999년 다시 활을 잡더니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출전했다.

자리를 비웠던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여준 김수녕은 김남순, 윤미진과 함께 우크라이나에 12점 차 승리를 거두며 자신의 3번째 단체전 금메달을 따냈다. 김수녕은 개인전까지 더해 올림픽에서 총 4개의 금메달과 은메달, 동메달 1개씩을 수확했다.

지금까지 김수녕보다 많은 금메달을 따낸 양궁 선수는 없다.

시드니를 끝으로 은퇴한 김수녕은 사우디아라비아 왕가 자제들의 양궁 교사가 돼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올 초 한국으로 돌아와 쉬고 있다.

'시위를 떠난 화살에는 미련을 두지 않는다'는 김수녕의 말은 양궁의 금과옥조로 여겨진다.
◇ 유일한 그랜드슬래머 박성현, 2010년대 간판 기보배
올림픽에서 김수녕 다음으로 많은 금메달을 따낸 한국 양궁인은 박성현과 기보배로, 3개씩을 수확했다.

올림픽, 세계선수권, 아시아선수권, 아시안게임에서 모두 개인전 우승을 경험, 유일한 '양궁 그랜드슬래머'로 남아있는 박성현은 올림픽 단체전에서 대표팀의 두 차례 우승에 이바지했다.

윤미진, 이성진과 함께 출전한 2004년 아테네 대회에서 중국을 상대로 펼친 결승전은 명승부로 회자된다.

엎치락뒤치락 접전이 펼쳐진 가운데 마지막 사수로 나선 박성현이 10점을 쏘면서 한국은 241-240, 1점 차로 우승했다.

홈 텃세가 유독 심했던 2008년 베이징 대회에서도 박성현은 주현정, 윤옥희와 흔들림 없이 우승을 이뤄냈다.

2012년 런던 대회에서는 기보배가 배턴을 이어받아 이성진, 최현주와 폭우 속 값진 금메달을 손에 쥐었다.

결승전 직전부터 비가 내려 팬들은 마음을 졸여야 했으나 선수들은 끄떡없었다.

막내였던 기보배가 마지막에 9점을 쏘면서 중국에 단 1점 앞선 한국이 태극기를 가장 높은 곳에 올렸다.

여자 대표팀은 세트제가 처음 도입된 2016년 리우 대회에서도 단체전 금메달을 수확하며 8연패를 이뤄냈다.

기보배가 그 중심에 있었다.

박성현은 전북도청 감독으로 후배를 양성하고 있다.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여자 대표팀 감독을 맡기도 했다.

지난해 6년 만에 국가대표로 뽑혀 화제를 모았던 기보배는 지난 2월 은퇴했으며 모교인 광주여대 교수로 임용됐다.

박성현과 기보배 모두 방송사 해설위원으로 파리에 와 후배들을 응원했다.
◇ '불패의 시스템' 구축한 양궁인들
신화는 2020년대에도 진행형이다.

코로나19로 1년 늦게 열린 도쿄 대회에서 안산, 강채영, 장민희가 9번째 단체전 금메달을 합작했다.

올해는 파리에서 낭보가 이어졌다.

도쿄 대회와 파리 대회 모두 올림픽에 처음 출전한 선수들이 우승을 이뤄냈다.

두 대회 연속으로 '올림픽 초짜'들이 한국 여자 대표팀의 단체전 엔트리를 채운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런데도 10연패의 신화를 완성할 수 있었던 배경엔 최강의 궁사를 선발해내는 투명한 선수 선발 시스템이 있다.

'올림픽 금메달 따기보다 한국 양궁 대표팀 선발전 통과하는 게 더 어렵다'는 말이 있다.

새내기부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까지, 계급장 다 떼고 온전히 실력만으로 총 5차에 걸친 살얼음판 승부를 펼쳐 올림픽 등 주요 국제대회에 출전한 선수를 뽑는다.

정성적 요소를 철저히 배제하고 오로지 정량적 요소로만 선수 간 우열을 가려낸다.
이 시스템 아래서 각 실업팀, 대학팀, 유소년팀 지도자들은 파벌 싸움 없이 선수 육성에만 전념한다.

대한양궁협회의 행정인들은 투명한 행정으로 경기인들을 뒷바라지한다.

선수 선발 공정성 등에 대한 시비, 경기인 간 파벌싸움, 경기인과 행정인 간 알력 등이 양궁이라고 처음부터 없었던 건 아니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잡음이 들리곤 했다고 한다.

1985년부터 회장사를 맡은 현대자동차의 물심양면 지원에 양궁인들의 노력이 더해지면서 양궁협회는 가장 모범적인 체육단체로 발돋움해나갔다. 최경환 대한양궁협회 사무처장은 "여자 단체전 10연패는 현대차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 아래 양궁 경기인, 행정인이 서로 두터운 신뢰를 쌓아왔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