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 빠진 사도광산 전시 논란…'일부 진전' vs '핵심 놓쳐'

현장 전시하고 추도식도 개최키로…'강제' 지우는 일본 묵인한 셈
일본이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기 위해 한국과 합의해서 설치한 조선인노동자 강제노역 관련 전시공간에 '강제성' 표현이 담기지 않아 논란이 일고 있다. 일본이 등재에 앞서 선제적으로 전시 시설을 조성하고 추도식도 약속한 점은 진전이지만, 그 과정에서 '핵심'을 놓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이번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등재에 있어 일본 측이 한국의 동의를 얻기 위해 약속한 조치는 크게 두가지다.

첫번째는 사도광산 인근의 전시실 마련이고, 두번째는 현지에서 매년 한반도 출신을 비롯한 모든 노동자를 위한 추도식 개최다. 2015년 하시마(端島, 일명 군함도) 탄광의 유네스코 유산 등재 당시 일본은 조선인 강제노역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희생자들을 기리는 정보센터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센터는 현장에서 먼 도쿄에 설치된 데다 내용도 충분치 않았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이번에는 일본과 협상에서 군함도 때와 같은 '약속'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구체적인 '행동'이 필요하다는 원칙을 세웠고, 등재에 앞서 일본의 전시물 설치라는 선제적 조치를 끌어냈다.

전시공간이 마련된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은 사도광산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로 2㎞ 정도 떨어진 기타자와 구역에 있다. 전시물의 내용은 도쿄 정보센터와 비교하면 차이가 있다.

도쿄의 군함도 정보센터는 세계유산 등재로부터 5년이 지난 2020년에서야 뒤늦게 마련됐으며, 조선인들이 가혹한 환경에서 일했다는 내용은 찾기 어려웠다.

되레 '차별받지 않았다'는 내용이 담겨 역사를 왜곡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다만, 한쪽 벽면에는 2015년 유네스코 등재 심사 당시 일본 정부 대표단이 한 발언("1940년대 몇 곳에서 의사에 반해 끌려와 엄혹한 환경에서 일을 하게 된 많은 한반도 출신자 등이 있었다")이 적혔다.

약속을 어겼다는 비판이 이어지는 가운데 일본 측은 지난해 조선인 등 하시마 탄광 사상자 관련 자료를 전시하는 희생자 추모 공간을 신설하고, 2015년 세계유산위 회의 당시 한일 정부 대표의 발언을 볼 수 있는 QR 코드도 두 군데 설치하는 등 추가 조치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 사도광산 전시물에는 국가총동원법·국민징용령이 한반도에서 시행됐고, '모집'·'관(官) 알선'·'징용'에 조선총독부가 관여했다는 사실, 노동자들에게 의무적으로 작업이 부여되고 위반자는 수감되거나 벌금을 부과받았다는 사실 등이 적혔다.

이와 함께 "한반도 출신 노동자는 일본 출신자와 비교해 위험한 갱내 작업에 종사한 사람 비율이 높았다"는 등 열악한 노동 환경을 보여주는 비교적 자세한 설명도 여럿 포함됐다.

매년 추도식 개최 역시 한국인 노동자만을 특정한 것은 아니지만, 일본 측이 군함도 때보다는 적극적인 추모의 태도를 보여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동안 관건이 되어온 '강제' 표현에 대해서는 전체적으로 오히려 후퇴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2015년 군함도 등재 당시 일본 대표단이 '강제'를 인정하고, 발언 내용을 정보센터에 전시한 것과는 달리, 이번 유네스코 회의에서는 일본 대표의 명시적 언급이 없었다.

가노 다케히로 일본 유네스코 대표가 "모든 관련 세계유산위원회 결정과 이와 관련된 일본의 약속을 명심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을 뿐이다.

또 지난 28일 공개된 사도광산 관련 전시물에도 해당 표현을 찾을 수 없었다.

'강제징용'이 아닌 '징용' 표현만이 발견됐을 뿐이다.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해 일본 대표의 발언을 통해 2015년의 '강제 노역' 부분도 우회적으로 확인됐다는 입장이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명심' 표현에 과거 약속을 그대로 이어가겠다는 뜻이 담겨있는 것"이라며 "강제성 문제는 우리가 챙겨놓은 것이기 때문에 다시 한번 확인(confirm)만 하면 되는 것이고 더 나은 이행 조치를 챙기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군함도 등재 이후 일본 측이 지속해서 일제 강점기 노무 동원이 강제 노동이 아니라는 주장을 펼치면서 말 바꾸기를 시도하는 상황에, 한국 정부가 결과적으로 이런 흐름을 '묵인'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나아가 일부 일본 매체를 중심으로 전시에 '강제' 표현을 빼기로 양국 정부가 '사전 합의'했다는 보도까지 나와 논란을 증폭하고 있다.

외교부는 이에 대해 "전혀 사실 무근"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일단 등재가 결정된 만큼 앞으로 전시나 추도식 등 운영 상황을 잘 관리하고, 기존의 잘못된 조치에 대한 보완을 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도광산 연구 권위자인 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대표는 29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이제는) 전시나 추도식을 운영하는 과정에 지속성을 담보하고, 2015년 때처럼 일본이 말을 바꾸지 못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군함도 정보센터도 도쿄가 아닌 현장에 관련 시설을 만들고 전시토록 하는 방향으로 개선을 요구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