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녹슬지 않은 탱크 최경주

최경주는 미국 진출 초기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내비게이션도 없던 시절 영어마저 짧은 그는 골프장 찾는 것부터가 큰일이었다. 한 번은 숙소에 같이 묵고 있던 미국 선수를 따라나섰는데, 20분쯤 달려 그 선수가 도착한 곳은 골프장이 아니라 슈퍼마켓이었다. 돌아갈 길도 몰라 아기 기저귀와 분유를 사 들고 나온 그 뒤를 따라 숙소로 돌아온 일도 있었다.

그렇게 해서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것만큼 어렵다는 큐스쿨을 통과해 2000년 한국인 최초로 미국프로골프( PGA)에 데뷔했다. 영어라곤 ‘생큐’나 할 줄 아는 그가 어렵게 캐디에게 말을 걸면 ‘What?, what?’ 하면서 짜증을 내거나 심지어는 ‘You idiot!(돌대가리)’라고 무시했다. 클럽을 건네받지도 않은 채 먼저 앞으로 나가는 캐디도 있었다.그런 설움 속에서 최경주는 2002년 컴팩클래식에서 우승했다. 미국 진출 후 74번째 대회 만이다. 한국인 최초는 물론 아시아를 통틀어도 일본의 아오키 이사오와 마루야마 시게키에 이어 세 번째였다. 그 뒤 최경주는 일곱 번을 더해 아시아인 최다인 PGA 8회 우승 기록을 갖고 있다. 검게 그을린 피부에 늘 공격적인 플레이를 펼치는 그에게 매스컴은 ‘코리안 탱크’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올해 54세인 최경주는 여전히 녹슬지 않은 탱크다. 지난해 50세 이상 선수들이 참가하는 PGA 챔피언스투어에서 한국인 첫 우승에 이어 올해는 54세 생일날에 ‘아일랜드 기적’ 샷으로 국내 최고령 우승 기록을 세웠다. 그러곤 어제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열린 PGA 챔피언스투어 메이저대회인 ‘더 시니어 오픈’에서 꿈에 그리던 메이저 타이틀마저 거머쥐었다.

최경주가 가장 싫어하는 말은 ‘대충대충’이다. 하루 3000~4000개씩 공을 쳐대느라 손이 펴지지 않아 오른손으로 왼손가락을 하나씩 펴야 했다. 골프 코치가 헌책방에서 사다 준 잭 니클라우스의 그림 레슨책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보며 달달 외웠다. 스포츠 스타로는 유일하게 중견 언론인 모임인 관훈클럽에 초청받았을 때 그가 한 말이다. “여러분 마음에 불타는 열정이 있나요?”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