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태, 13시간 12분 토론 '신기록'…생리현상 해결은? [정치 인사이드]

與 김용태, 13시간 12분 필리버스터 '신기록'
A4용지 35장 분량 발언 준비…논문도 활용
발언 도중 3차례 화장실 다녀올 수 있었던 이유

'구두' 신고 단상 올라…"허리 아픈게 젤 힘들었다"
발언 끝나자 "젊은 게 좋네", "24시간도 하겠다"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이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방송 4법' 중 마지막 법안인 한국교육방송공사법(EBS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하고 있다. / 사진=뉴스1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최장 기록을 갈아치웠다. 김 의원의 총 발언 시간은 13시간 12분.

김 의원은 29일 오전 8시33분께 방송4법 중 마지막 법안인 한국교육방송공사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반대 토론자로 나서 오후 9시47분께 단상에서 내려왔다.김 의원은 어떻게 한자리에서 13시간이 넘게 발언할 수 있었을까?

김 의원은 처음부터 '최장 기록'을 작정했던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김 의원실에 따르면, 김 의원은 토론에 들어가기 전 A4 용지 35장 분량의 발언을 준비했다. 이는 당이 당초 김 의원에게 '의무'로 배분한 '4시간'을 채울 수 있는 정도의 분량이었다.

그랬던 김 의원은 자신이 필리버스터를 시작하기 전날(28일) 박선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0시간가량 필리버스터 하는 것을 본 뒤 생각이 바뀌었다고 한다. 적어도 박 의원보다는 더 오랫동안 국민들에게 '방송4법'의 부당함을 알려야겠다는 것. 박 의원은 찬성 토론자로 토론에 나서 정부와 여당 의원들을 향해 날 선 발언을 한 바 있다. 그는 여당 의원석을 가리키며 "뭐 하는 거예요. 이자들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이후엔 마이크를 잠시 치우고 "이 새X들이"라고 한 것으로도 전해졌다.

김 의원은 박 의원의 발언을 들으며 "기분이 나빴다"며 "아무리 국회의원 면책특권이 있다고 하더라도, 너무 품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왕 할 거면, 박 의원보다 더 길게 해야겠다. 그래서 민주당보다 (국민의힘이) 더 젊은 정당임을 보여줘야겠다는 오기로 했다"고 말했다.

갑자기 최소 6시간 이상의 발언 내용을 추가해야 하는 의원실에서는 기존에 준비했던 4시간 분량의 발언 외에, 부랴부랴 약 5편의 논문을 추가로 준비했다.김 의원은 실제 발언에서는 미리 준비한 내용과 논문 4편을 활용해 13시간 이상을 발언했다. 의원들이 이석하면, 기존에 발언했던 내용을 반복하며 시간을 채워 나가기도 했다.

생리적 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화장실' 문제는 다행히 수월하게 해결됐다. 김 의원은 13시간 넘게 발언하는 동안 국회의장에게 양해를 구하고 세 차례 화장실에 다녀왔다.

과거엔 장시간 필리버스터 도중이라도 '이석'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 관행이었다. 이 때문에 성인용 기저귀를 착용한 채 연단에 오른 이들도 꽤 있었다.그러다 지난 2019년 12월 문희상 국회의장이 생리현상 해결을 위한 3분간 화장실 이용을 허락한 이후로는 토론자들이 연설 도중 종종 화장실에 다녀왔다. 국회법에는 의원 1명당 한 차례만 토론할 수 있다는 규정만 있을 뿐, 연단을 비우면 토론이 끝나는 건지에 대한 규정은 없어 국회의장이 이를 판단하는 것이다.

김 의원의 이 같은 '투지'는 여당 내에서 '필리버스터 무용론'과 함께 퍼지던 패배감에도 경종을 울렸다.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김 의원이 발언이 끝나갈 무렵 그를 응원하기 위해 본회의장을 일부러 찾기도 했다.

단상에서 내려온 김 의원을 맞이한 여당 의원들은 "24시간은 해도 되겠다", "역시 젊은 게 좋다~"는 등 농담을 건네며 그를 격려했다.

김 의원은 한경닷컴과 통화에서 "제가 이렇게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저는 95분 듣고 5분 말하는 스타일이다"라며 "살면서 이렇게 오랫동안 길게 이야기해본 것은 처음"이라고 밝혔다. 그는 필리버스터 발언 도중 가장 힘들었던 점으로는 '허리 통증'을 꼽았다. 그는 "제가 그렇게 오래 발언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구두를 신고 갔다"면서 "통증이 종아리부터 허리로 서서히 올라왔다. 그게 제일 힘들었다. 도망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이슬기 한경닷컴 기자 seulk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