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총·칼…한국이 유독 '무기종목'에 강한 이유 [2024 파리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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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파리올림픽 대한민국에 전해진 첫 번째 '금빛' 낭보 주인공은 펜싱 남자 사브르의 오상욱이었다.
세계랭킹 4위 오상욱은 28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의 그랑팔레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남자 사브르 개인전 결승에서 세계 14위 파레스 페르자니(튀니지)를 15-11로 물리치고 첫 개인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첫 출전이었던 도쿄올림픽에선 단체전 금메달을 차지했던 오상욱은 한국 펜싱 사브르 개인전 역대 최초의 기록을 세웠다.
이후 파리올림픽 한국 선수단의 두 번째 금메달은 사격에서 나왔다.19살의 명사수 오예진 선수가 10m 공기권총에서 깜짝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4위를 달리던 김예지 선수 또한 은메달을 차지하며 한국 사격이 금은을 모두 휩쓰는 저력을 보여줬다.우리나라가 올림픽 사격에서 금메달을 딴 건 2016년 리우올림픽 진종오 이후 8년만, 여자부 이 종목 금메달은 오예진이 처음이다.
금메달과 은메달을 모두 휩쓴 건 2012년 런던올림픽 50m 권총 진종오와 최영래 이후 12년 만이다.이에 앞서 금지현과 박하준은 샤토루 슈팅 센터에서 열린 사격 공기소총 10m 혼성 단체 결선에서 은메달을 차지했다.네번째 금메달리스트 영예는 올림픽 최연소 선수인 2007년생 반효진이 차지했다.
반효진은 29일(현지시각) 프랑스 샤토루 슈팅센터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사격 공기소총 10m 여자 결선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여고생 소총수로는 1992 바르셀로나 대회 금메달 여갑순(당시 서울체고 3학년), 2000 시드니 대회 은메달 강초현(당시 유성여고 3학년)에 이어 세 번째다.반효진의 금메달은 한국 올림픽 역사상 100호 금메달 달성이라는 점에서 더 의미가 깊었다.
세번째와 다섯번째 금메달은 양궁팀 남·녀 단체전에서 나왔다.
양궁 남자대표팀은 3회 연속, 여자대표팀은 10회 연속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게 됐다. 올림픽 10회 제패는 약 40년간 최정상의 자리를 어느 나라에도 내주지 않았다는 뜻이다.임시현, 남수현, 전훈영으로 이뤄진 한국 대표팀은 양궁 결승전에서 안치쉬안, 리자만, 양샤오레이로 팀을 꾸린 중국을 5-4로 물리쳤다.
김우진과 김제덕, 이우석으로 이루어진 남자대표팀은 양궁 남자 단체전 결승에서 홈팀인 프랑스를 세트스코어 5 대 1로 이기면서 우승을 차지했다.
당초 우리나라는 금메달 5개를 목표로 했었는데 일찌감치 목표치를 달성한 셈이다.
30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는 한국 올림픽 대표팀이 유독 칼, 총, 활 등 무기종목에 강한 이유와 관련해 "금메달 100개 중에서 양궁이 28개를 차지하고 있다"면서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을 통해 달성한 결과다"라고 진단했다.
박희원 CBS 기자는 "양궁 국가대표 선발 과정을 보면 양궁협회에서 매년 세 차례 선발전을 치러 남녀 각각 8명씩 뽑고 이 8명이 다시 2번의 평가전을 치러서 각각 상위 3명을 솎아낸다. 양궁 국대가 되려면 5번 시험을 쳐야 하는 것이다"라면서 "훈련 과정도 독특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국제대회를 앞두고서는 항상 야구장이나 축구장에서 적응 훈련을 하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고 AI 슈팅 로봇의 훈련을 도입한 것 또한 월드 레코드를 기록할 수 있었던 요인이 됐다고 평가받고 있다"고 전했다.
AI 슈팅 로봇은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파악해 선수들의 집중력과 평정심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줄 수 있다.
김현정 앵커는 "우리가 예로부터 고려시대, 조선시대부터 이 총, 칼, 활을 잘 다루던 민족 아니겠느냐. DNA에서부터 그런 게 있는 게 아니겠느냐 이런 분석도 있지만 정말 체계적으로 평가하고 훈련하고 이런 것들이 뒷받침됐다는 이야기다"라고 덧붙였다.손등에 벌이 앉았는데도 태연하게 10점을 쏜 김제덕의 정신력에서 볼 수 있듯 양궁 대표팀 훈련은 혹독하기로 유명하다. 과거에는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기 위해 한밤 공동묘지 왕복, 옷 속에 뱀 집어넣기, 뱀 풀어놓은 동굴에서 훈련하기 등 엽기에 가까운 담력 훈련도 자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관중들의 소음과 거센 바람 속에서도 과녁을 맞히는 특수 훈련도 포함된다.
대한양궁협회 회장사로 1985년부터 40년간 대한민국 양궁을 후원 중인 현대차그룹도 전폭적인 지원으로 한국 양궁에 힘을 실어줬다.
현대차그룹과 대한양궁협회는 지난 도쿄올림픽이 끝난 직후 파리올림픽을 준비했다. 특히 파리대회의 레젱발리드 양궁경기장과 똑같은 시설을 진천선수촌에 건설해 이를 몸에 익히며 체계적인 연습을 진행했다. 연습 도중 실제 대회를 비슷하게 재현한 환경에서 모의대회를 치르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양궁협회는 파리 현장에서도 레젱발리드 경기장에서 약 10여㎞ 떨어진 곳의 스포츠클럽을 통째로 빌려 국가대표팀만을 위한 전용 연습장을 마련했다. 휴식과 훈련을 위한 시설들이 갖춰진 곳으로, 선수들은 지난 16일 일찍 현지에 도착해 전용 연습장에서 체계적인 훈련을 했으며 시차에도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슈팅 코리아'의 저력을 보여준 한국 사격 대표팀은 3년 전 열린 2020 도쿄올림픽에서 노골드에 그치자 대표 선발 시스템을 혁신적으로 개선한 바 있다.
지난해까지 올림픽 대표선발전은 5차례 본선만 치렀다. 하지만 파리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는 5차례 본선을 치른 뒤 각 종목 상위 8명이 올림픽처럼 한 명씩 탈락하는 녹다운제로 치러지는 결선을 한 번 더해 가산점을 부여했다. 결선에서의 긴장감과 격발법을 미리 경험해 선수들이 고루 성장하자는 취지였다.
확 바뀐 대표선발전으로 신예급 선수들이 대거 발탁됐다. 여기에 대한사격연맹의 적극적인 지원이 선수들의 성장을 이끌었다.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을 위해서라면 뭐든 다 했다. 시뮬레이션 훈련장, 가상현실(VR) 세트장을 통해 파리올림픽 사격장을 선수들이 미리 경험할 수 있었다고 알려진다.
장갑석 사격대표팀 감독은 훈련 중 ‘3C 금지령’을 내리며 솔선수범을 보였다. 휴대폰(Cellular)·커피(Coffee)·담배(Cigarette)는 절대 금지다. 주당인 장 감독 역시 술을 끊었기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최태원 회장이 이끄는 SK그룹은 이번 올림픽에서 핸드볼과 펜싱 종목을 후원하고 한국 수영 간판인 황선우 선수를 비롯해 역도 박혜란 선수, 브레이킹 홍텐(김홍열) 선수를 후원하고 있다.대한민국 민족성이 집중해야 할 순간에는 무서울 정도로 집중하고 끈기를 보이는 민족이기는 하지만 이처럼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빼어난 정신력으로 세계를 압도할 경기력을 보일 수 있었다는 평가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
세계랭킹 4위 오상욱은 28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의 그랑팔레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남자 사브르 개인전 결승에서 세계 14위 파레스 페르자니(튀니지)를 15-11로 물리치고 첫 개인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첫 출전이었던 도쿄올림픽에선 단체전 금메달을 차지했던 오상욱은 한국 펜싱 사브르 개인전 역대 최초의 기록을 세웠다.
이후 파리올림픽 한국 선수단의 두 번째 금메달은 사격에서 나왔다.19살의 명사수 오예진 선수가 10m 공기권총에서 깜짝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4위를 달리던 김예지 선수 또한 은메달을 차지하며 한국 사격이 금은을 모두 휩쓰는 저력을 보여줬다.우리나라가 올림픽 사격에서 금메달을 딴 건 2016년 리우올림픽 진종오 이후 8년만, 여자부 이 종목 금메달은 오예진이 처음이다.
금메달과 은메달을 모두 휩쓴 건 2012년 런던올림픽 50m 권총 진종오와 최영래 이후 12년 만이다.이에 앞서 금지현과 박하준은 샤토루 슈팅 센터에서 열린 사격 공기소총 10m 혼성 단체 결선에서 은메달을 차지했다.네번째 금메달리스트 영예는 올림픽 최연소 선수인 2007년생 반효진이 차지했다.
반효진은 29일(현지시각) 프랑스 샤토루 슈팅센터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사격 공기소총 10m 여자 결선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여고생 소총수로는 1992 바르셀로나 대회 금메달 여갑순(당시 서울체고 3학년), 2000 시드니 대회 은메달 강초현(당시 유성여고 3학년)에 이어 세 번째다.반효진의 금메달은 한국 올림픽 역사상 100호 금메달 달성이라는 점에서 더 의미가 깊었다.
세번째와 다섯번째 금메달은 양궁팀 남·녀 단체전에서 나왔다.
양궁 남자대표팀은 3회 연속, 여자대표팀은 10회 연속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게 됐다. 올림픽 10회 제패는 약 40년간 최정상의 자리를 어느 나라에도 내주지 않았다는 뜻이다.임시현, 남수현, 전훈영으로 이뤄진 한국 대표팀은 양궁 결승전에서 안치쉬안, 리자만, 양샤오레이로 팀을 꾸린 중국을 5-4로 물리쳤다.
김우진과 김제덕, 이우석으로 이루어진 남자대표팀은 양궁 남자 단체전 결승에서 홈팀인 프랑스를 세트스코어 5 대 1로 이기면서 우승을 차지했다.
당초 우리나라는 금메달 5개를 목표로 했었는데 일찌감치 목표치를 달성한 셈이다.
30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는 한국 올림픽 대표팀이 유독 칼, 총, 활 등 무기종목에 강한 이유와 관련해 "금메달 100개 중에서 양궁이 28개를 차지하고 있다"면서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을 통해 달성한 결과다"라고 진단했다.
박희원 CBS 기자는 "양궁 국가대표 선발 과정을 보면 양궁협회에서 매년 세 차례 선발전을 치러 남녀 각각 8명씩 뽑고 이 8명이 다시 2번의 평가전을 치러서 각각 상위 3명을 솎아낸다. 양궁 국대가 되려면 5번 시험을 쳐야 하는 것이다"라면서 "훈련 과정도 독특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국제대회를 앞두고서는 항상 야구장이나 축구장에서 적응 훈련을 하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고 AI 슈팅 로봇의 훈련을 도입한 것 또한 월드 레코드를 기록할 수 있었던 요인이 됐다고 평가받고 있다"고 전했다.
AI 슈팅 로봇은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파악해 선수들의 집중력과 평정심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줄 수 있다.
김현정 앵커는 "우리가 예로부터 고려시대, 조선시대부터 이 총, 칼, 활을 잘 다루던 민족 아니겠느냐. DNA에서부터 그런 게 있는 게 아니겠느냐 이런 분석도 있지만 정말 체계적으로 평가하고 훈련하고 이런 것들이 뒷받침됐다는 이야기다"라고 덧붙였다.손등에 벌이 앉았는데도 태연하게 10점을 쏜 김제덕의 정신력에서 볼 수 있듯 양궁 대표팀 훈련은 혹독하기로 유명하다. 과거에는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기 위해 한밤 공동묘지 왕복, 옷 속에 뱀 집어넣기, 뱀 풀어놓은 동굴에서 훈련하기 등 엽기에 가까운 담력 훈련도 자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관중들의 소음과 거센 바람 속에서도 과녁을 맞히는 특수 훈련도 포함된다.
대한양궁협회 회장사로 1985년부터 40년간 대한민국 양궁을 후원 중인 현대차그룹도 전폭적인 지원으로 한국 양궁에 힘을 실어줬다.
현대차그룹과 대한양궁협회는 지난 도쿄올림픽이 끝난 직후 파리올림픽을 준비했다. 특히 파리대회의 레젱발리드 양궁경기장과 똑같은 시설을 진천선수촌에 건설해 이를 몸에 익히며 체계적인 연습을 진행했다. 연습 도중 실제 대회를 비슷하게 재현한 환경에서 모의대회를 치르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양궁협회는 파리 현장에서도 레젱발리드 경기장에서 약 10여㎞ 떨어진 곳의 스포츠클럽을 통째로 빌려 국가대표팀만을 위한 전용 연습장을 마련했다. 휴식과 훈련을 위한 시설들이 갖춰진 곳으로, 선수들은 지난 16일 일찍 현지에 도착해 전용 연습장에서 체계적인 훈련을 했으며 시차에도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슈팅 코리아'의 저력을 보여준 한국 사격 대표팀은 3년 전 열린 2020 도쿄올림픽에서 노골드에 그치자 대표 선발 시스템을 혁신적으로 개선한 바 있다.
지난해까지 올림픽 대표선발전은 5차례 본선만 치렀다. 하지만 파리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는 5차례 본선을 치른 뒤 각 종목 상위 8명이 올림픽처럼 한 명씩 탈락하는 녹다운제로 치러지는 결선을 한 번 더해 가산점을 부여했다. 결선에서의 긴장감과 격발법을 미리 경험해 선수들이 고루 성장하자는 취지였다.
확 바뀐 대표선발전으로 신예급 선수들이 대거 발탁됐다. 여기에 대한사격연맹의 적극적인 지원이 선수들의 성장을 이끌었다.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을 위해서라면 뭐든 다 했다. 시뮬레이션 훈련장, 가상현실(VR) 세트장을 통해 파리올림픽 사격장을 선수들이 미리 경험할 수 있었다고 알려진다.
장갑석 사격대표팀 감독은 훈련 중 ‘3C 금지령’을 내리며 솔선수범을 보였다. 휴대폰(Cellular)·커피(Coffee)·담배(Cigarette)는 절대 금지다. 주당인 장 감독 역시 술을 끊었기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최태원 회장이 이끄는 SK그룹은 이번 올림픽에서 핸드볼과 펜싱 종목을 후원하고 한국 수영 간판인 황선우 선수를 비롯해 역도 박혜란 선수, 브레이킹 홍텐(김홍열) 선수를 후원하고 있다.대한민국 민족성이 집중해야 할 순간에는 무서울 정도로 집중하고 끈기를 보이는 민족이기는 하지만 이처럼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빼어난 정신력으로 세계를 압도할 경기력을 보일 수 있었다는 평가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