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우유값 그대로…'소비 절벽'에 전격 합의

값싼 수입산 우유 공세까지
"가격 올려도 得 없다" 공감대

낙농업계, 결국 한발 물러서
올 유가공품값도 유지될 듯
낙농가와 유업계로 구성된 낙농진흥회는 지난달 11일부터 10여 차례에 걸쳐 원유(原乳) 가격 조정 협상을 벌였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낙농가는 L당 26원 인상을, 유업계는 동결을 주장하며 팽팽한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정부와 유업계는 “가격 인상만 고집해서는 생존하기 어렵다”고 낙농가를 설득한 끝에 두 달 만에 원유 가격 동결로 협상을 타결 지었다.
저출산 등 여파로 국내 흰 우유 소비량은 매년 줄어드는 추세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1인당 연간 흰 우유 소비량은 2013년 27.7㎏에서 지난해 25.9㎏으로 10년 새 6.5%(1.8㎏) 감소했다. 1인당 흰 우유 소비량이 26㎏ 밑으로 떨어진 것은 26년 만이다. 김선희 매일유업 부회장은 최근 한 포럼에서 “1~2년 뒤면 흰 우유만 만드는 회사는 모두 망할 것”이라고 했다.우유 소비 감소에도 외국산 우유 수입은 늘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외국산 우유 수입량은 2020년 1만1476t에서 작년 3만7407t으로 3년 새 226% 늘었다. 올해는 상반기에만 2만6700t을 기록해 처음으로 연간 기준 5만t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대규모 젖소 목장을 운영하는 폴란드 호주 등에서 수입하는 우유는 L당 가격이 1500~1600원으로 국내산의 절반 정도다. 낙농가에서 공급하는 원유값이 상승함에 따라 국산 우유 가격이 매년 오르는 사이 값싼 외국산 우유가 시장을 파고든 것이다.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유럽연합(EU)산 우유 관세율은 매년 인하돼 2026년 0%가 된다.

국내 우유 가격은 세계적으로도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국가·도시 비교 통계 사이트인 넘베오 집계 결과 서울의 우유 1L 가격은 평균 2.08달러로 미국 뉴욕(1.44달러), 영국 런던(1.68달러), 일본 도쿄(1.54달러) 등에 비해 비싸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주요 가공식품 가격이 연쇄적으로 오르는 가운데 원유 가격까지 더 상승하면 소비자에게 막대한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게 정부와 유업계의 주장이었다”고 말했다.정부가 낙농가에 당근책을 제시한 것도 가격 동결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농식품부는 이날 발표한 ‘낙농산업 중장기 발전 대책’에서 낙농가의 생산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원유 품질에 따라 매겨지는 인센티브 기준을 완화하는 방안을 내놨다. 낙농가는 원유를 판매하면서 원유 기본 가격에 더해 원유 품질에 따라 인센티브를 받는다. 상당수 낙농가는 인센티브를 받기 위해 비싼 사료를 쓰고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품질 평가 시 위생 기준은 유지하고 단백질 지방 등 성분 기준은 낮춰 저비용 원유 생산 체계를 구축할 것”이라고 했다.

원유 가격 동결을 주장해 온 유업계는 일제히 환영의 뜻을 밝혔다. 유업계는 “원유 가격이 뛰는 만큼 제품 가격도 올려야 하는데, 고물가에 가격을 인상하면 매출이 더 떨어질 수 있다”며 우려를 표해 왔다.

원유 가격이 동결됨에 따라 흰 우유와 원유를 주재료로 쓰는 치즈, 아이스크림, 탈지분유 등의 가격은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 유업체 관계자는 “국산 원유로 만드는 유제품 가격을 인상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했다. 또 다른 유업체 관계자는 “원유값은 동결됐지만 인건비, 에너지 비용, 부자재 가격이 오르고 있어 제품 가격을 인하하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하헌형/이광식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