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는 오렌지가 아니다. 호두나 아몬드도, 초콜릿이나 자스민도 아니다. 하지만 커핑테이블 앞에서 사람들은 심심치 않게 과일과 허브, 견과류 등의 이름을 이용해 그 맛을 표현한다.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단어들 같지만, 커피의 가치를 평가하는 이 방식은 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커피를 맛보는 일련의 과정을 일컫는 ‘커핑’의 역사는 1922년에 윌리엄 우커스에 의해 처음으로 기록됐다. 초창기의 커핑은 무역업자 간의 원활한 거래를 위한 느슨하고 원초적인 가치평가에 불과했다.
스페셜티 커피는 농장의 씨앗부터 한 잔의 커피까지 모든 제조과정이 투명해야 한다는 ‘추적 가능성’과 그 모든 과정에 전문가들이 개입해야 한다는 조건을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스페셜티 커피 산업은 커피 재배부터 가공, 운송, 로스팅과 추출까지의 모든 과정에 표준을 만들고 체계를 정립하는 데 힘을 써왔다. 커피 가치평가체계를 세우고자 하는 부단한 노력도, 산업의 정체성을 정립하려는 노력의 일환이기도 했다. 하지만 동시에 스페셜티 커피 산업은 더 많은 이들을 산업에 끌어들여야 했다. 이 노력의 과정으로 스페셜티 커피를 다루는 일선 카페들과 그곳의 바리스타들은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그들의 취향의 귀를 기울였다. 나는 이 커피에서 오렌지 맛을 느끼지만, 당신이 느끼는 어떤 맛과 향도 틀린 것은 없다고. 그리고 그 취향을 존중해 나는 또 한 잔의 커피를 만들어 갈 것이라고.
그전까지는 무심코 마시던 커피 한 잔이 이렇게나 특별할 수가 있다고 느꼈던 것은 호주 여행을 하면서부터였다. 그곳에서 바리스타들은 그가 커피에 대해 얼마나 지식이 있는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다만 이 공간에서 내가 최선을 다해 준비한 음료를 마시러 온 것에 감사하고, 그의 취향에 귀를 기울였다. 때로는 다채로운 과실향이, 때로는 묵직한 다크 초콜릿의 질감이, 때로는 고소한 견과류의 향미가 커피에서 느껴졌다. 일로 가득했던 일상에는 취향이 존재하지 않았지만, 무엇인가에 이끌려 찾은 이곳 호주의 카페에서는 모두가 내 취향에 귀를 기울였다. 호주에서도 줄곧 “팬시 어 카파”라는 말이 들려왔다. 문득 누군가에게 커피 한 잔 묻는 일이 직업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