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승부는 커브 길에서 난다

김동호 한국신용데이터 대표
포뮬러원(F1)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미하엘 슈마허라는 이름은 한 번쯤 들어봤으리라. 1994년을 시작으로 10년 동안 월드 챔피언을 일곱 번이나 차지했으니 말이다. 요즘도 종종 그의 1995년 유러피언 그랑프리 경기를 돌려보곤 한다. 이 경기의 백미는 슈마허가 프랑스 출신 드라이버 장 알레지를 추월하는 순간이다. 슈마허는 커브 길 바깥을 돌면서, 정석대로 안쪽을 달린 알레지를 제치고 1위로 골인한다.

승부는 커브 길에서 난다. 직선주로에서는 앞선 차량이 심각한 기계 결함 등으로 중도 포기하지 않고서야 순위가 바뀌지 않는다. 커브 길 주행의 정석은 안쪽을 달리는 것이다. 따라서 앞선 드라이버는 보통 최단 거리인 안쪽을 달리며 주행거리를 줄인다. 하지만 방향 전환을 빠르게 해야 하는 까닭에 속력도 크게 떨어진다. 뒤따르는 드라이버의 유일한 추월 차선은 커브 길의 바깥쪽이다. 안쪽보다 더 긴 거리를 달리지만 속력을 덜 줄일 수 있어, 이어지는 직선 구간에서 치고 나갈 기회를 얻을 수 있다.인터넷 보급기, 스마트폰 보급기가 기업에 바로 그런 커브 길이었다. 커브가 나올 때마다 구글과 메타, 네이버와 쿠팡 같은 기업들이 자리 잡았다. 기업가치가 수십조원에서 수백조원으로 성장한 이들은 모두 커브 길에서 승부를 건, 패기 넘치던 벤처기업이었다. 물론 같은 방향으로 승부를 건 경쟁자도 수없이 많았고, 그 안에서의 자리다툼 또한 만만치 않았을 테다. 하지만 출발 타이밍과 크고 작은 커브 길에 대응하는 방식의 차이에 따라 적잖이 걸러졌을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종식 이후의 2년간도 또 다른 커브 길이 아니었을까. 각국 정부는 코로나 기간 늘어난 유동성에서 촉발된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2022년 여름부터 긴축 모드로 전환했다. 넘쳤던 유동성이 증발하며, 호황이던 증시와 모험자본 시장이 큰 타격을 받았다. 많은 기업이 사업계획을 보수적으로 재편하는 정석을 택했다. 채용 중단, 더 나아가 구조조정에 나서는 회사도 많았다. 한국신용데이터는 커브 길에서 바깥쪽을 선택했다. 지난 2년간 소상공인에게 필수적인 결제망과 POS 솔루션 역량 확보에 과감히 투자했다. 인재 영입에 박차를 가해 조직을 두 배 이상 확장했다. 모두가 투자를 줄이던 2022년과 2023년에 오히려 공격적으로 투자를 늘려 매출을 20배 이상 확대하면서도 지속 가능한 성장의 발판을 다질 수 있었다.

모두가 위기라고 말할 때야말로 역설적으로 고객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현장의 경쟁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반대로 모든 사람이 기회라고 쫓아가는 곳에는 내가 설 자리가 마땅치 않다. 위험과 기회가 공존하는 바로 그곳이 승부처다. 지금 당신은 커브 길의 어디에 서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