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방곡곡 다니면서 발레 전하는 '불혹'의 유니버설발레단에 박수

현장에서

대전=이해원 문화부 기자
지난 27일 대전 예술의전당에서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강민우(왼쪽)와 홍향기가 ‘잠자는 숲속의 미녀’ 2인무를 선보이고 있다.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지난 27일 저녁 대전 예술의전당 로비. 유니버설발레단의 전막 고전 발레 ‘잠자는 숲속의 미녀’ 공연을 앞둔 발레 팬들에게서는 기대감과 자부심이 묻어났다. 차이콥스키의 대표 발레를 감상한다는 설렘과 서울에서는 즐길 수 없는 발레 공연을 본다는 뿌듯함이었다. 로비 어디선가 “서울에서는 볼 수 없잖아”라는 말도 들려왔다.

실제로 그렇다. 국립발레단과 더불어 한국 발레의 양대 축으로 활동하는 유니버설발레단은 고전 대작인 ‘잠자는 숲속의 미녀’와 ‘백조의 호수’를 지방 무대에만 올리기로 했다. 서울 예술의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에서는 공연하지 않는다.올해는 일정 자체도 지방이 중심이다. 올해로 창단 40주년을 맞은 유니버설발레단이 연초에 정기공연 목록을 공지했을 때 예상보다 레퍼토리가 적고 그마저 3~4월은 스케줄이 아예 없어서 의아했는데 이유가 있었다. 빽빽한 지방 공연을 소화한 것이다. 지난 3월부터 ‘백조의 호수’로 용인 김천 진주 고양 등을 찾았고, 7월에는 ‘잠자는 숲속의 미녀’로 부산 경주 대전 등을 다녔다. 8월에는 보령 창원 대구에서 무대를 이어간다.

‘불혹’의 유니버설발레단은 왜 지방을 찾아 나섰을까. 유니버설발레단 관계자는 “40년을 이어올 수 있었던 건 국내 관객의 오랜 성원 덕분”이라며 “서울에 집중해온 무대를 지방으로 더 분산해 전국의 관객을 직접 만나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지방 팬들에 대한 보은이라는 말이지만 성과도 좋다. 지금까지 공연은 빈자리를 거의 찾기 어려울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초등학생부터 머리를 매끈하게 말아올린 전공 학생 그리고 나이가 지긋한 노신사에 이르기까지 관객 구성도 다양했다.공연에서는 문훈숙 단장이 직접 나섰다. 그는 무대에 올라 작품의 의미를 설명하고, 발레 마임을 보여줬다. 지난 대전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문 단장은 16세 공주 ‘오로라’로 변신해 우아하고도 재기발랄한 폴 드 브라(팔동작)를 보여줬다. 그는 농담으로 관객들의 웃음을 유도하기도 했다. “꿈꾸는 소녀를 표현하는 듯한 이런 동작이 작품에 유독 많은데요. 어떠신가요. 저도 열 살은 어려 보이지 않습니까?”

공연 자체도 훌륭했다. 무용수들의 태도나 동작 모두 정규 레퍼토리와 다름없었다. 수없이 많은 무대를 경험한 베테랑 무용수가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 분석, 교과서 또는 표본이라 불릴 만한 테크닉이 가득했다. 오로라 공주로 분한 발레리나 홍향기가 바늘에 찔려 서서히 잠들어가는 모습은 다른 고전 발레 속 비운의 여주인공 ‘지젤’이 죽어가는 장면이 연상될 정도로 가련했다. 20명의 발레리나가 선보인 칼군무 역시 러시아식 고전 발레가 주는 시각적인 편안함, 정석적인 아름다움을 골고루 보여줬다.

유니버설발레단 관계자는 “일부 도시에서는 발레를 처음 접하는 분들을 위한 챔버 공연도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챔버 공연이란 120~150분에 이르는 전막 발레의 이야기를 압축적으로 줄여 스토리에 무리가 없게끔 구성한 70여 분짜리 공연을 의미한다. 지역에 거점을 둔 발레 팬은 물론, 발레를 처음 보는 이들까지 아우르겠다는 뜻이다. 11월에는 ‘호두까기 인형’을 들고 대구 대전 성남 군포 등을 찾는다.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는 유니버설발레단의 행보에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