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긴장 고조…이란 대통령 취임식 날 '하마스 수장' 피살

이란, 최고 안보회의 긴급 소집

테헤란서 급습 당한 하니예
이스라엘과 휴전협상 주도
하마스, 배후로 이스라엘 지목
하메네이 "이, 피의 대가 치러야"

이스라엘, 레바논 보복 공습
헤즈볼라 핵심 지휘관 사망

분쟁 격화 우려에 유가 급반등
< 이스라엘, 레바논 베이루트 공격 > 30일(현지시간)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부의 한 건물이 이스라엘 공습으로 파괴됐다. 이곳에는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지휘관 푸아드 슈크르가 머물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공격을 주도해온 최고위급 군 지휘관을 제거했다”고 밝혔다. /AP연합뉴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정치국 최고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가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공격을 받아 사망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 소행으로 단정하고 보복을 다짐했고, 이란 역시 최고국가안보회의(SNSC)를 긴급 소집했다. 레바논 베이루트 근교에선 이스라엘 정밀 공습으로 헤즈볼라 핵심 지휘관인 푸아드 슈크르가 숨졌다. 중동 내 군사 긴장이 높아지면서 1주일간 내림세를 보이던 국제유가는 급격히 반등했다.

○가자전 휴전 협상 대표 하니예 사망

30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에서 취임식을 마친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오른쪽 빨간 원)과 맞잡은 손을 들어 올린 이스마일 하니예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정치국 최고 지도자(왼쪽). /AP연합뉴스
31일 외신에 따르면 이란혁명수비대(IRGC)와 하마스는 성명을 통해 이날 테헤란에서 하니예가 이스라엘의 공격을 받아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성명에 따르면 하니예는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후 숙소에서 급습당해 경호원과 함께 살해됐다. 이란 정부는 “사건을 조사 중”이라며 구체적 정황을 밝히지 않았지만 더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하니예가 미사일 공습으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하니예는 이른바 ‘저항의 축’으로 불리는 레바논 헤즈볼라, 예멘 후티 반군 등의 고위 관계자와 함께 7월 30일 열린 페제시키안 대통령 취임식 참석차 이란을 방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스라엘군은 하니예 사망 관련 논평을 거부했다. 미국 백악관 대변인은 “하니예가 이란에서 살해됐다는 보도를 봤다”고 짧게 언급했다.올해 62세인 하니예는 가자지구 출신으로 2006년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하마스의 승리를 주도하는 등 2017년까지 조직을 이끌었다. 파타(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갈등을 빚고 결별한 뒤 이스라엘과 분쟁을 지속했다. 2017년 야히아 신와르에게 가자지구 지도자 자리를 넘기고 정치국장으로서 튀르키예와 카타르에서 생활해왔다. 전쟁 발발 후 이집트, 카타르, 미국이 중재한 이스라엘과 휴전 협상에 대표로 참여하던 하니예가 살해되면서 당분간 협상도 중단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니예가 암살되기 불과 몇 시간 전에는 이스라엘의 베이루트 공습으로 헤즈볼라 핵심 지휘관이 숨졌다. 헤즈볼라가 지난 27일 골란고원 축구장을 로켓으로 공격해 어린이 등 12명이 사망한 사건에 대한 보복이다. 헤즈볼라 수장 하산 나스랄라의 오른팔이자 작전 고문인 슈크르가 베이루트 근교에 은신해 있다는 첩보를 입수한 이스라엘군은 드론으로 건물을 정밀 폭격했다. 이스라엘군은 “슈크르는 미사일, 장거리 로켓, 드론 등 최첨단 무기를 담당했다”며 “그는 1985년 헤즈볼라에 합류해 수많은 테러 공격으로 무고한 시민을 희생시켰다”고 설명했다. 슈크르는 1983년 베이루트에 주둔한 미국 해병대 막사에 폭탄 테러를 자행해 미군 241명이 숨진 사건의 주동자로, 미국 정부는 그에게 현상금 500만달러를 걸었다.

○‘저항의 축’과 정면 충돌…유가 급등

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 우려 등으로 중동을 둘러싼 긴장감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암살 주체가 이스라엘이라면 이스라엘이 이란 본토를 직접 공격한 것은 지난 4월 19일 이후 102일 만이다.

이란은 이스라엘을 암살의 장본인으로 지목하고 보복을 예고했다. 이란 권력 서열 1위인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는 이날 성명을 통해 “이란 영토에서 발생한 쓰라린 사건과 관련해 그의 피 값을 치르는 것을 우리의 의무로 여겨야 한다”며 이스라엘에 대한 강력한 보복을 지시했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무장단체도 줄지어 이스라엘을 규탄하고 있다.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계열 강경파 팔레스타인인민해방전선(PFLP)은 이스라엘이 ‘레드라인’을 넘었다며 “하니예를 암살하고 이란의 주권을 공격한 일을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후티 반군도 성명을 통해 “극악무도한 테러 범죄”라며 복수를 다짐했다. 튀르키예와 러시아도 암살 사건을 규탄하는 성명을 냈다.분쟁 격화 우려가 커지면서 최근 내림세를 보이던 국제유가는 급반등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브렌트유 근월물은 지난 3거래일 동안 4.5% 하락한 뒤 이날 반등해 한때 배럴당 80달러를 넘겼다. 전날 배럴당 74.73달러에 마감한 미국 서부텍사스원유(WTI) 9월 인도분 선물도 76달러 선으로 반등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