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한파에 플랫폼 스타트업 '줄폐업'…韓 2호 유니콘마저 문닫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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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벤처시장#. 비대면 서비스 스타트업 A사는 최근 투자 유치에 실패해 계획했던 설비 투자를 포기했다. 안정적인 경영을 이어가기 위해선 설비를 당장 늘려야 했지만 자금 수혈에 제동이 걸려 사면초가에 놓였다. A사는 임시방편으로 사용자 주문량에 제한을 건 상태로 버티고 있다.
韓 최대 카풀서비스 '풀러스' 등
문 닫은 벤처 60%가 플랫폼社
투자 받으려 몸값 스스로 깎기도
VC업계까지 덮친 폐업 공포
자격 말소 이어 '개점휴업' 속출
투자사·창업자간 법적 소송전도
#. 지난해 경영난으로 기업회생을 신청한 스타트업 B사는 투자금 반환 소송에 휘말렸다. 2017년 5억원을 B사에 투자한 한 투자사가 원금에 연 15% 이자를 더해 약 12억원을 B사 대표에게 반환하라는 소송을 제기하면서다. B사는 “매각조차 어려워진 상황”이라고 했다.
○상반기에만 스타트업 68곳 폐업
벤처투자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스타트업 폐업이 급증하고 있다. 31일 벤처투자 플랫폼 더브이씨에 따르면 투자 유치 이력이 있는 스타트업 중 지난 상반기에 폐업한 회사는 68곳이다. 2022년 상반기 35곳, 2023년 상반기 54곳보다 늘었다. 벤처캐피털(VC)업계 관계자는 “경쟁력이 떨어진 회사는 물론 건실하다고 평가받던 곳까지 파산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상반기 폐업한 스타트업 가운데 누적 투자 규모가 가장 큰 곳은 한국 2호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사)이었던 옐로모바일이다. 누적 투자만 2600억원을 받았지만 무리한 사업 확장에 고전하다가 지난 4월 폐업 절차가 마무리됐다.상반기에 폐업한 68곳 중 38곳(56%)이 플랫폼 사업을 영위한 업체였다. 실시간 매칭 카풀앱인 풀러스는 한때 100만 명의 사용자를 확보하는 등 국내 최대 규모 카풀서비스를 운영한 회사다. 네이버, SK 등으로부터 누적 220억원의 투자를 받았지만 3월 문을 닫았다. 동대문 도매 중개 플랫폼 링크샵스 역시 알토스벤처스와 포레스트파트너스 등 국내외에서 이름을 알린 VC와 사모펀드(PEF) 운용사의 선택을 받았던 곳이다. 누적 165억원의 투자를 유치했지만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빠져 폐업했다.
DS자산운용이 농산물 유통 유니콘 트릿지 지분을 100% 상각 처리한 것도 트릿지의 경영 상태가 좋은 편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했다. 트릿지는 수익성 강화를 위해 지난해 말 사업 방향을 바꾸고 추가 투자 유치를 준비하고 있지만 마지막 투자 때 덩치(기업가치 3조4000억원)가 워낙 커져 이 또한 순조롭지 않은 상황이다.
스타트업들은 살아남기 위해 몸값을 낮추면서까지 투자 유치를 추진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1분기에 2년 연속 투자받은 기업 중 전년보다 기업가치가 떨어진 비중이 20.7%였다. 5곳 중 1곳은 몸값을 깎아 자금을 겨우 확보했다는 뜻이다. VC들의 상반기 초기 벤처 투자액은 5727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6.6% 줄었다.
○올해만 VC 6곳 ‘자격 말소’
스타트업의 폐업이 늘어나면서 투자사들이 받는 타격도 커지고 있다. 당장 중소형 VC 중 생존 위기에 놓인 곳이 많다. 지난 상반기에만 VC 6곳의 자격이 말소됐다. 지난해 연간 수준(4개)을 이미 넘어섰다. 업계 관계자는 “하반기에 VC의 줄폐업이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기관 출자사업이 몰려 있는 상반기에 등록이 말소된 VC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시장 상황이 좋지 않다는 뜻이다. 루트벤처스, IDG캐피탈파트너스코리아, 이랜드벤처스, 예원파트너스 등이 올해 VC 면허를 반납했다.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로 연명 중인 VC도 많다. 상반기에만 5곳의 VC가 자본잠식으로 경영건전성 미달 경고를 받았다.투자사와 창업자 간 갈등도 늘어나고 있다. 투자금 반환 소송에 휘말리거나 투자사가 파산에 반대해 정리 절차를 밟지 못하는 경우다. 투자사는 투자한 스타트업이 문을 닫으면 포트폴리오 하나가 날아가고 고스란히 확정 손실로 잡힌다. 일부 투자사는 전망이 좋은 회사의 지분을 일부 매각하면서 이른바 ‘폭탄 회사’의 지분을 함께 처리하는 등 가시적인 손실을 줄이기 위해 애쓰고 있다. 한 대형 투자사 대표는 “현재 포트폴리오 중 ‘폭탄’이 없는 VC 심사역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며 “터지는 회사들의 손실을 막느라 신규 투자에 신경 쓸 여력이 없는 VC도 많다”고 했다.
고은이/김주완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