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IPO 어려워지자…VC '보릿고개'

벤처업계, 투자금 회수에 난항
파두 사태 등으로 현미경 심사
스타트업들 '몸값 거품'도 영향
최근 수년간 벤처캐피털(VC)의 스타트업 투자가 급증했지만 기업공개(IPO) 통로가 좁아지면서 자금 회수에 난항을 겪고 있다.

31일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상반기 코스닥시장에 상장한 51곳(스팩합병 포함) 가운데 VC가 투자한 회사 수는 26개로 집계됐다. 비중은 51.0%다.
코스닥 IPO 기업 가운데 VC가 투자한 기업 비중은 2020년 63.9%에서 2021년 62.0%, 2022년 59.8%, 2023년 54.4%로 꾸준히 낮아지는 추세다. 올해는 특히 스타트업이 IPO 심사 문턱에서 제동이 걸리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 올해 27곳이 거래소 심사를 통과하지 못해 자진 철회하거나 미승인 판정을 받았다. 파두 사태와 이노그리드 사태 등 IPO 관련 논란이 잇따라 불거지면서 한국거래소 등이 현미경 심사를 벌인 결과다.

2020~2021년 역대급 유동성 장세 속에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의 기업가치가 지나치게 부풀려진 점이 영향을 끼쳤다는 말도 나온다. 당시 VC는 매출 중심의 외형 확대 가능성을 중요한 투자 기준으로 삼았다. 적자를 내더라도 외형 확장을 통해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이런 투자 기조가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투자금 회수에 걸림돌이 됐다는 평가다. 기존 투자자의 투자금 회수를 위해 시장에서 인정받아야 할 기업가치 하한선이 높아져 IPO에 나서는 스타트업의 부담이 더욱 커졌다. 지난해 초 컬리, 케이뱅크 등 대어급 IPO가 기업가치 고평가 논란 등으로 무산된 뒤 중소형 스타트업의 IPO는 더욱 어려워졌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IPO를 통한 투자금 회수가 어려워지자 세컨더리펀드 시장을 찾는 VC도 늘어나고 있다. 세컨더리펀드는 이미 스타트업 등에 투자된 벤처펀드의 지분을 사들여 수익을 창출한다. 만기를 앞둔 벤처펀드에는 투자 대상 기업의 IPO 대신 투자 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수단이다.

세컨더리펀드 시장은 점차 활발해지고 있다. 올해 상반기까지 VC가 결정한 신규 세컨더리펀드는 25건이다. 결성총액은 5526억원으로 집계됐다. 반기 만에 지난해 연간 결성 건수(26건) 및 결성총액(5549억원)과 비슷한 수준에 이르렀다. 지난해 말부터 결성총액이 1000억원이 넘는 세컨더리펀드도 잇따라 등장하며 대형화하는 추세다. 한 VC 관계자는 “IPO 시장이 꽉 막힌 가운데 세컨더리펀드가 활성화되고 있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최석철/배정철 기자 dols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