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미술학자 세송이 남춘모를 통해 엮어낸 '환희의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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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한국신사 유람일기아직도 환하게 밝은 오후 7시. 지난 5월 25일 룩셈부르크의 하늘 위로 선명한 무지개가 자리하자 세송&베네띠에 갤러리 안은 삼삼오오 모여든 컬렉터들과 갤러리 VIP들로 가득했다. 안쪽 깊은 곳 비교적 작은 공간을 제외하고는 구획으로 나뉘지 않아 중앙에 서면 거의 모든 공간이 한눈에 들어오는 1,400㎡에 달하는 거대한 공간은 이번 전시를 위해 준비된 70여점의 작품 모두가 벽에 걸려 넓은 공간이 빼곡하게 채워졌다. 이 전시는 이날부터 7월 20일까지 열린 남춘모 작가의 'Lignes et Rythmes'전시였다. 공간을 나누고 일정한 표현 방식을 공유하는 작품들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전시 방식에 익숙한, 다분히 한국적인 시선의 관람자인 필자에겐 다소 방만하거나 산만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이 전시가 한번에 마음에 다가오지는 않았다. 한참을 동선을 따라 하나둘 작품을 바라보고 천천히 작품과 교감하는 방식으로 관람해보니 비로소 한동안의 남춘모 작가의 화법 변화가 머릿속에 들어온다. 하지만 되려 오랜 기간 남춘모 작가를 프랑스에 소개해온, 멀리 파리에서 방문한 한 갤러리의 오너는 이렇게 말했다. "남춘모 작가의 그간 변화를 천천히 완상하는 연대기적인 전시여서 참 좋았다, 최고의 전시였다"고. 확실히 유럽인들이 취향을 고려한 전시 기획과 설치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이 갤러리의 총 책임자이자 여러 분점을 거느린 세송&베네띠에 갤러리의 설립자이며, 프랑스 현대 미술에 평론가로서 지대한 영향을 미친 베르나르 세송이 마치 생의 마지막이나 되는 듯 열과 성을 다해서 이 전시를 위해 발 벗고 나섰다. 거의 2년에 가까운 전시 준비 기간 동안 적어도 네차례 일부러 이 먼 룩셈부르크 외곽의 갤러리에 다녀가며 공간을 활용한 작품의 설치를 고민해 온 남춘모 작가도 그저 손을 놓고 존경의 마음으로 베르나르 세송을 바라보았다고 한다. 여러 차례 구상한 오랜 고민의 장면 장면이 머릿속을 스치며 매 순간 참견(?)하고 싶은 마음을 지긋하게 눌렀을 작가의 심정이 이해가 가면서도, 프랑스 미술 평론의 거장이자 진지한 미술학자이며 남춘모 작가에게 무한한 존경의 눈빛을 굳이 감추지 않는 이 노장의 전시 기획자는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작품들을 나열했을까? 궁금해졌다.
남춘모 개인전 리뷰
거대한 전시를 위해 준비되는 작품들은 보통 예상보다 조금 더 많은 수가 전달되기 마련이라 멀리 대구에서, 서울에서, 그리고 유럽 각지 세송&베네띠에 갤러리에서 전달된 총 70여 점의 작품이 빠짐없이 깡그리 전시되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다. 우리들 검은 머리의 타고난 미감은 아무래도 여백의 미를 살리고 관람자 혹은 제3의 사물이나 배경이 개입하여 만들어 내는 우연성의 효과와 감정적 여분의 공간을 허락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하니 작가에게는 준비된 작품이 모두 전시되는 이 낯선 시도를 묵묵히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오랫동안 작가를 가까이서 대해본 필자는 전시 설치 당일의 스케치 사진에서 불안감 혹은 체념(?)에 가까운 작가의 표정도 읽을 수 있었다.하지만 그렇게 작가가 마음을 한 움큼 내려둔 전시의 결과는 우려와는 달랐다. 이미 남춘모 작가의 작품을 소장한 컬렉터들은 물론 처음 그의 작품을 경험한 유럽의 다양한 배경을 가진 관람자들과 컬렉터들은 기쁨과 환희의 반응을 보였고 연신 작가에게 자신들이 받은 감동을 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심지어 작품 앞에서 발을 떼지 못하며 눈물을 흘리는 한 컬렉터에게 이유를 묻는 과정에서 좋은 작품이 미치는 예술의 순기능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벌써 7년 전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의 빈자리를 메우며 깊은 위로를 전해주었던 남춘모 작가의 작품들이 떠올랐고 함께 눈시울을 붉혔었다. 서로 다른 땅에서 태어나 다른 피부색과 눈동자로 쌓아온 완전히 다른 경험으로 구성된 이해와 이성의 주체들이 한 작가에게 받은 유사한 감동으로 함께 눈물 흘릴 수 있다는 이 고귀하고 특별한 경험은 전시가 한참 지난 후 적어 내려가는 감상문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VIP 오프닝 전날 불어로 진행된 베르나르 세송의 인터뷰는 남춘모 작가를 향한 미술학자로서의 깊은 애정과 존경이 빼곡하게 담겨 있다. 그리고 이 전시의 설치 의도도 알 수 있다. 그중 일부를 발췌 의역한다.
"작품이 공간에서 어떻게 존재하는지, 그 공간에 어떻게 어울리는지 살펴봅니다. 그리고 각 작품이 돋보일 수 있도록, '날 봐, 내가 가장 아름다운 작품이야'라고 말할 수 있도록 합니다. 각 작품이 그렇게 말할 수 있도록 노력하지만, 그렇게 할 때 작품에 작가가 주장하는 중요성을 부여함으로써 특정 방식으로 구성되도록 해야 합니다. 저의 일은 관객이 작가의 작품을 발견할 수 있도록, 작가의 세계가 모든 작품에서 보여질 수 있도록 일관된 앙상블을 구성하는 것입니다."역시나 오랜 관록의 미술 평론가, 미술사학자의 깊은 생각이 이루어둔 앙상블, 그 울림은 의심 없이 마음을 열고 받아들일 가치가 있음을 느낀다. 난해했지만 결국 더 깊은 울림과 이해를 얻었던 전시였다. 뜻밖에도 그는 이 작업이 수월했다고 말하면서 더한 감동을 선사했다."공간도 고려해야 하고, 그 공간의 존재감도 매우 중요하죠. 그래서 전시를 선보일 때 많은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하지만 남춘모와 함께라면 쉬워요. 프랭크 스텔라와 함께라면 쉬워요. 클로드 비알라도 마찬가지고요. 피카소도 쉬울 거예요. 하지만 다른 예술가들의 작업은 프랭크 스텔라, 클로드 비알라, 남춘모가 아니기 때문에 더 어려울 거예요."
베르나르 세송이 손에 꼽는 작가들을 언급하면서 그렇게 내가 가장 애정하는 작가를 함께 언급했음을 번역된 인터뷰를 듣고 나서야 이해하게 되었다. 설치를 직접 진행한 그는 제목도 물론 직접 정했는데, 그는 선대의 위대한 평론가와 철학자들을 인용하면서 ‘리듬’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이유도 설명한다.
“제 스승 앙리 말디니 (Henri Maldiney)는 위대한 프랑스 철학자였는데, 작가가 표현한 질서를 춤이라고 표현했지요. 춤, 경외를 주는 안무! 남춘모의 안무에서는 경외감과 환희를 동시에 느낄 수 있습니다.” 이어서 이렇게 찬사를 보낸다. “저는 작품 속으로 들어가지 않지만, 그는 저에게 작품 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만 같은 황홀경을 선사하죠.”비용과 시간을 들여 일부러 찾아간 전시는 그렇게 소중한 기억이 되었다. 무지개로 장식한 오프닝은 작가 남춘모의 각기 다른 표현을 하나의 앙상블로 모아 보여주었고 그 앙상블에 맞춰 춤을 추며 근사하게 마무리되었다. 멀고도 먼 룩셈부르크를 떠나 한참이 지난 후 떠올리는 전시의 여운을 되돌아보는 지금 마음 한 켠에 뭉근한 행복감이 은은한 리듬을 따라 잔잔히 움직인다. 더 많은 이들이 남춘모의 선을 통해 행복해지기를 그리고 이 전시의 기획자가 품은 감동을 나열한 방법론에 귀 기울여 주기를 바라는 마음 눌러 담아 전시 후기를 갈음한다.첨부된 베르나르 세송의 전시에 대한 인터뷰를 통해서 필자가 경험한 감동을 꼭 느껴보시기를 바란다.
[남춘모 개인전 <Lignes et Rythmes> | 베르나르 세송 인터뷰]
한국신사 이헌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