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미·중 기술전쟁의 승자와 그 의미

美의 견제, 오히려 中 경쟁력 키워
규제보단 기술력이 승부 열쇠

김영한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인류 역사를 통틀어 대부분의 전쟁에서 승자와 패자를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모두가 전쟁의 상처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 또 전쟁에서의 승리가 한 국가의 장기적인 안정을 보장해 주지도 않았다. 기술전쟁은 어떠한가? 2017년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시작한 미·중 간 기술전쟁은 지금도 계속 진행 중이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 이후에는 더욱 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현재 진행 중인 미·중 기술전쟁의 중간성적표를 보면, 기술전쟁에서 쉽게 이길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던 트럼프의 예언이 그의 다른 ‘터무니없는’ 예언들과 함께 무참히 무너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 단적인 예가 미·중 기술전쟁의 최대 타깃이자 피해자로 알려진 중국의 화웨이가 최근 전에 없는 고속성장과 막대한 이익을 실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화웨이에 대해서 미국의 첨단반도체 공급을 중단했을 뿐만 아니라 서방 주요국 시장으로의 접근 자체를 차단했던 미국의 초강력 조치와 제재에도 불구하고 화웨이의 지난 1분기 순이익 증가율은 560%에 달했다.이에 더해 화웨이를 포함해 중국 기업들에 미국의 첨단반도체 공급 및 기술이전을 금지했던 미국의 초강경 조치들은, 결국 다수의 중국 기업이 최첨단 수준의 반도체는 아니지만, 적어도 화웨이의 통신설비와 스마트폰에 사용될 수 있는 중급 수준 반도체의 자체 디자인 및 생산기술을 갖추는 계기가 됐다.

이 외에도 중국의 대량생산 설비에 기반한 세계 시장 지배를 억제하고자 했던 전기차와 2차전지산업은 물론 그동안 미·중 간 전략적 경쟁 분야로 중국의 기술경쟁력 확보를 억지하기 위해 미국이 백방으로 애써온 인공지능(AI)과 양자컴퓨터 기술 등 첨단기술 부문에서도 중국의 기술경쟁력은 미국의 통제 범위를 이미 벗어난 것으로 평가된다.

이 같은 최근 추이만 본다면, 미·중 기술전쟁에서의 승자는 중국인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미·중 기술전쟁의 결과가 예상과 달리 나타난 배경은 뜻밖에 간단하다. 미국의 화웨이 축출 및 고사 전략이 화웨이와 미국 기업들에 서로 다른 기술혁신 동기 및 인센티브로 다가갔다는 점이다. 미국의 전방위 제재를 받은 화웨이는 단기적인 경영 여건 악화에도 불구하고 생존을 위해 기존의 미국산 반도체와 고급 기술을 대체할 자체 기술력과 부품을 단시간에 확보하기 위해 처절한 투자와 노력을 기울였다. 반면 미국 기업들의 경우 미국 정부의 수출 규제를 우회할 수 있는 제품 개발에 주력하는 가운데 중국과의 기술 경쟁 이슈는 주요 현안이 아니었다. 이에 더해 시장 성과와 무관한 중국 정부의 막대한 투자와 연구개발(R&D) 지원도 주요 변수였다.앞으로의 미·중 기술전쟁 전개가 세계 경제에 미칠 영향은 어떠할까? 시장원리에 근거한 기술경쟁은 기술의 호환성을 통해 세계 경제를 더욱 효율적으로 발전시키겠지만, 현재와 같은 미·중 간 블록화된 기술경쟁은 향후 기술표준 부문에서의 세계 경제의 블록화를 초래하면서 세계 경제의 비효율성을 더 키울 가능성도 크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 모두가 인정하듯이, 두 나라 경제가 서로 완전히 디커플링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정도로 두 나라 경제의 상호 의존도는 매우 높다. 올 11월 트럼프가 재선되더라도 선동주의 정치인들의 정치적 유효기간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불확실성의 세계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전략은 블록화된 경쟁에서도 여전히 시장지배력을 가지는 기술력의 확보다. 기술력은 모든 블록을 뛰어넘는 힘을 지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