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정부, HBM 中 수출 규제 검토"…삼성·SK '촉각'

격화되는 미·중 반도체 전쟁

中 AI 반도체 굴기 견제 목적
HBM 90% 장악한 삼성·SK
미·중 무역 갈등에 불똥 우려

韓 "현재 中 수출 많지 않다"
미국 정부가 대(對)중국 반도체 수출 규제 대상에 고대역폭메모리(HBM)를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HBM은 인공지능(AI) 서비스에 꼭 필요한 반도체로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세계 시장의 약 90%를 장악하고 있다. 미·중 갈등의 불똥이 한국 기업의 주력 제품에 튈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국내 기업들은 현재 중국에 수출하는 HBM 물량이 많지 않은 만큼 당장 피해 규모는 크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중국 HBM 시장이 향후 수십조원 규모로 커질 수 있다는 점, 미국의 규제가 중국 반도체 기업들의 ‘HBM 자립’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점 등에서 한국 기업에 대형 악재가 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韓 기업이 HBM 90% 장악

블룸버그통신은 31일(현지시간) “미국 정부가 이르면 8월 말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이 중국에 HBM을 공급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내용의 대중국 반도체 통제 조치를 공개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해외직접제품규칙(FDPR)’을 근거로 외국 기업이 만든 제품이라도 미국 기술이 들어가면 특정국 수출을 통제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의 설계 소프트웨어 및 장비를 활용해 HBM을 개발·생산하고 있다.

HBM은 D램 8개 또는 12개를 수직으로 쌓아 만든 반도체다. 대용량 데이터 처리에 특화돼 있다. 엔비디아 등이 만드는 그래픽처리장치(GPU)와 묶여 AI 데이터센터의 핵심 부품인 AI 가속기(데이터 학습과 AI 추론에 특화된 반도체 패키지)로 만들어진다. 엔비디아의 ‘H100’, AMD의 ‘MI300’ 등이 HBM이 들어간 AI 가속기다.HBM 시장은 한국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SK하이닉스가 51%의 점유율을 기록했고, 삼성전자(38%), 마이크론(11%)이 뒤를 이었다. 이 때문에 미국의 추가 규제 카드는 사실상 한국 기업을 겨냥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中 AI 가속기 자립 경계

미국이 ‘HBM 수출 규제’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건 중국의 AI 반도체 굴기를 견제하기 위해서다. 미국 정부는 이미 엔비디아와 AMD를 대상으로 고성능 AI 가속기를 중국에 수출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엔비디아가 ‘H20’ 등 성능을 떨어뜨린 AI 가속기를 만들어 수출하고 있지만, 중국 수요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이 꺼낸 카드는 ‘AI 가속기 자립’이다. 중국은 지난 5월 세 번째 ‘반도체 투자기금’을 조성해 3440억위안(약 65조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이 기금의 상당액이 AI 가속기 개발 및 생산에 활용될 것으로 알려졌다.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과 SK하이닉스가 중국 업체에 직접 판매하는 HBM 물량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다른 의견도 있다. 미국이 엔비디아와 AMD가 만드는 모든 AI 가속기에 대한 중국 수출 규제를 시행할 수 있어서다. 삼성전자는 현재 엔비디아의 중국용 H20에 HBM3를 공급하고 있다. 만약 미국 정부가 H20의 중국 수출까지 막는다면 삼성전자도 작지 않은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미국 규제가 중국 기업의 HBM 자립을 부추길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