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교토의 노포에서 밥값을 내려고 동전을 세다 생각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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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김정민의 세상을 뒤집는 예술읽기얼마 전 교토로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한여름의 교토는 정말 더웠습니다. 그래서 알게 되었는데요. 속칭 ‘대프리카’로 불리는 대구처럼, 교토도 지형이 분지라 다른 지역에 비해 유독 더 습하고 덥다고 합니다. 날씨 탓도 있고, 시간문제도 있어서 일본 대표 여행 도시 교토를 살펴볼 기회는 없었지만 흥미로운 경험을 했는데요.
사람마저 오래된 도시 교토에서 느낀
따뜻한 공동체의 삶
'완전한 자동화'에 다다르는 시대 속에서
존재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봐야할 때
고령화에 접어든 일본에서는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이나 패스트푸드 식당에서도 시니어 노동자들을 쉽게 만납니다. 또 시니어 점주와 시니어 알바생(?)이 일하는 레스토랑도 어디에나 있죠. 아직도 현금만 받고 손으로 영수증을 써주는 시니어들의 공동체 식당들, 제가 아침을 먹으러 간 커피전문점도 그랬습니다. 갓구운 토스트나 핫케이크와 커피를 먹을 수 있는 곳이었는데, 우리 팀을 제외한 손님들 또한 동네 시니어들인 듯 보였습니다. 누가 주인이고 알바생이고, 또 손님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서로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분위기였죠. 그 친근한 분위기를 깬 건 이방인인 우리였고, 조용히 식사를 마친 다음엔 그분들의 궁금증을 해결해주기 위해 간단한 소개, 그러니까 우리는 교토에 왜 왔고 무슨 일을 하는 사람들인지를 말하고 가게를 나왔습니다.흥미로운 사건(?)은 그다음이었죠. 하루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가기 전에 간단한 식사를 하기 위해 근처 식당을 들렀습니다. 테이블 없이 딱 6개 다찌석만 구비된 작은 식당이었는데요. 우리보다 먼저 와 있던 손님은 식당 셰프이자 주인장과 뭔가 재밌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간간이 맥주잔도 부딪히며 식사 중이었어요. 우리가 자리에 앉아 주문을 마쳤을 무렵 또 한명의 일행이 반갑게 인사를 하며 식당으로 들어왔죠.
그런데 그 손님과 우리의 눈이 딱 마주치며 동시에 “어!”하고 서로를 알아보았습니다. 바로 아침에 우리에게 토스트와 핫케이크를 구워주셨던 카페 주인이었거든요. 얼떨결에 인사를 나누고 나자, 카페 주인은 셰프와 먼저 식사 중이던 손님에게 자신이 아는 대로 우리 소개를 해주었고 우리는 마치 먼 친척 집에서 식사하는 사람들처럼 조금은 어색하고 조금은 화기애애한 식사를 하고 나왔습니다.4부작 일본 드라마 <빵과 스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날>은 동네 사랑방과 같은 식당을 운영하시던 주인공의 어머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삶의 구심점을 잃어버린 동네 사람들의 간청에 따라 평생 하던 일을 그만두고 엄마의 식당을 자신의 식당으로 개업하는 따뜻한 이야기입니다. 드라마 시작 부분에, 장례를 마치고 가게로 돌아온 주인공에게 동네 손님들이 다가가 이렇게 말하죠.
“그럼 우리는 앞으로 어디서 밥을 먹어야 하지?”
막 장례를 치른 유족에게 조금은 비정하게 느껴질 무례한 말일 수도 있지만, 또 달리 생각하면 고인에 대한 안타까움과 갑자기 사라진 “동네 사랑방”에 대한 아쉬움, 커다랗게 남겨진 고인의 빈자리와 존재감을 한 번에 이해할 수 있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주인공은 그 사람들에게 화를 내기는커녕, 그저 동네 식당의 주인인 줄 알았던 어머니가 그동안 이웃들의 구심점 역할을 한 소중한 존재였음을 깨닫습니다. 빵처럼 폭신하고 스프처럼 따뜻한 이 드라마를 내내 기억하고 있던 탓인지, 이번 출장 때 방문했던 두 곳의 동네 사랑방 식당 경험은 좀 특별했습니다. 예전엔 ‘단골집’, ‘단골손님’이란 말도 흔했고, 가족이 아니어도 어디선가 나를 알아봐주고 반기는 곳에 대한 따뜻한 정서가 있었습니다. 그런 추억이 이번 출장을 통해 소환된 모양이에요. 그동안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던, 아니면 잊고 싶었던 “코로나”가 다시 유행하고 있다는 흉흉한 소식이 들립니다. 마스크를 완전히 벗게 된 때가 불과 1년밖에 안 지났는데 말입니다. 이러다가 다시 코시국으로 돌아가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는데요. 그래서 생각을 해봅니다. 과연 두려운 코시국의 상황은 불편한 일상 검역과 마스크 착용인가 아니면 비대면 거리두기일까요? 어쩌면 거리두기로 인한 고립감이 아닐까 싶습니다.
거실에서 다 함께 텔레비전을 시청했던 시대는 끝이 나고, 지금은 각자 자기의 위치에서 휴대폰으로 유튜브를 시청하는 초개인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각자의 집에서 배달의 민족임을 끼니때마다 되새기며 살고 있지만, 모두가 국경 없이 글로벌하게 연결되어 있는 아이러니한 현실 속에 있지요. 지갑이 왜 필요할까 싶을 정도로 현금거래를 해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는데, 교토 출장 5일 동안 내내 동전을 세고 현금거래를 하다 보니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온 것 같았습니다. 더구나 동네 사랑방 카페나 식당에서는 실내 흡연도 가능해 다들 호기롭게 담배를 피우며 신문을 읽거나 이야기를 나누며 커피를 마셨으니까요.산업혁명은 농사를 위해 무리 지어 살던 인류를 해체시켰습니다. 4촌은 기본이고 8촌에 심하면 12촌까지 모여 살던 가족은 4~5인 핵가족이 되었고, 디지털시대가 도래하자 그나마도 뿔뿔이 흩어져 빠르게 ‘나 혼자 사는’ 세상이 되었지요.
카페나 식당에 가도 기계로 주문하는 시스템이라 주문이나 결재를 위해 대면할 필요가 없어지는 추세라 혼자만의 세상은 점점 더 공고해지고, 그게 인류의 선택이고 대세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대세를 거스를 순 없겠지만, 또 어차피 도달할 미래의 삶이지만, 과정을 차근차근 짚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요?10년 전 등장한 4차산업혁명 시대의 청사진에, ‘완전한 자동화’에 도달하리라는 그림 어디에도 사람이 보이지 않아 당혹스러웠던 것만큼 우리가 도달하려는 미래에 사람들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고 있을지(살아야 할지)’ 확실한 그림이 필요해 보입니다. 영화 <월 E>에서 하루종일 화면만 쳐다보고 앉아있던 사람들이거나, 현실은 쓰레기더미에 살면서 매일매일 메타버스의 세계로 도피하는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의 주인공들처럼은 제발 아니길 바랍니다.김정민 나은미래플랫폼 주식회사 ESG경영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