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모든 경계가 사라지는 지점에서

한경민 한경기획 대표
온라인 서점으로 출발한 아마존은 상거래, 음악 스트리밍, 미디어, 클라우드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다. 차량공유회사 우버는 우버이츠를 통해 음식배달 시장에 진출했다. 애플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인 애플TV+를 출시했다. 전기자동차기업 테슬라는 인공지능(AI) 기술로 차량의 주행데이터를 분석, 개별 운전자의 사고 위험을 계산해 보험료를 책정한다. 이런 변화는 산업 간 경계를 허물며 새로운 경쟁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런 변화가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한 치킨 프랜차이즈는 수제맥주 브랜드를 개발해 주류사업에 진출했다. 은행들은 알뜰폰 브랜드를 출시하고, 꽃배달 서비스도 선보였다. 신용카드 앱을 통해 보험과 투자 서비스를 동시에 제공한다. 스타벅스의 전용 앱과 카드를 통해 예치된 선불충전금은 3000억원 이상으로, 국내 금융회사들은 스타벅스를 가장 강력한 잠재적 경쟁자로 꼽기도 한다.이런 현상을 ‘빅블러(Big Blur)’라고 한다. 산업의 경계가 무너지는 빅블러 현상은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 과정에서 소비자 행태의 변화와 맞물려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예상치 못한 경쟁자들이 등장하며 초(超)경쟁시대가 열리고 있다. 한경기획은 프랜차이즈 외식기업으로서 15년 차를 맞이해 새로운 시스템을 개발했고 식품 제조 공장이 아닌, 기계 제조 공장을 설립했다.

묵은 데이터를 분석하고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니, 변화를 거듭한 회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간의 변신은 성장하기 위해서라기보다 현상 유지와 생존을 위한 전략들인 경우가 많았다. 산업의 경계가 무너지는 환경 속에서 생존하기 위한 기업들의 전략은 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프랜차이즈 회사에서 유통과 제조, 테크 기반 브랜딩 회사로의 변신이 빅블러 시대의 자연스러운 생존 전략이 됐다.

전통산업에 기술을 도입하기란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외식업은 더욱 그렇다는 현실적인 지적도 있다. 그러나 누군가 시도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우리는 그저 살던 대로 살게 될 것이다. 국내 자영업 종사자는 전 국민의 약 10%를 차지하고 있다. 그중에서 외식업의 존속기간은 대개 3~5년 정도다. 일본처럼 대를 이어 가업을 이어가는 외식기업은 많지 않다. 외식기업이 시장의 변화를 타고 기술과 끈기로 무장해 오래가는 노포로 살아남기를 바란다.

이제 식당은 단순히 음식을 제공하는 공간을 넘어, 우리의 삶과 추억을 담는 곳이 됐다.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했던 공간의 기억과 즐거움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시대에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빅블러 시대에 각 산업의 경계를 허물고 혁신을 시도하는 기업들이 미래를 이끌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