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크시대부터 현대까지 … 오페라로 물든 바이에른의 여름

2024 뮌헨 오페라 페스티벌 현장을 가다
1885년 시작 세계 최고·최대 오페라 축제
방대한 레퍼토리 커버, 매일 새로운 공연 펼쳐져
독일 바이에른 슈타츠오퍼가 주관하는 뮌헨 오페라 페스티벌은 1885년에 처음 시작한 만큼 오랜 역사를 가진 세계 최고, 최대 오페라 축제로 손꼽힌다.

여름 한 달여 동안 매일 다른 오페라 무대를 올리며 국립극장과 프린츠레겐텐 극장, 퀴빌리에 극장 세 군데에서 열린다. 어떻게 보면 시즌과 시즌 사이의 작은 시즌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크고 내용이 방대하며 수준이 비할 바 없이 높은 것이 그 특징이다. 음악과 미술, 연극 분야를 대표하는 세계 최고 예술가들과 바로크부터 현대에 이르는 방대한 레퍼토리를 커버하는 뮌헨 오페라 페스티벌은 바이에른 슈타츠오퍼를 대표하는 고전 연출과 지난 시즌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킨 프로덕션, 그리고 개막작으로 새로운 프로덕션을 배합하여 프로그램을 구성한다.<A Fountain That Looks to Heaven>이라는 타이틀 하에 열린 2024년 오프닝은 리게티의 ‘그랑 마카브레’와 ‘펠리아스와 멜리장드’의 초연이 열리며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고전 연출로는 바그너와 푸치니를 집중적으로 다루어 '탄호이저'와 '파르지팔', '서부의 아가씨'와 ‘토스카’를 무대에 올렸다. 이 가운데 카우프만이 등장하는 ‘토스카’는 막스-요제프 광장에서 야외실황중계를 해서 축제를 방불케했다. 이밖에도 에이즈 환자에 대한 기부 콘서트 및 작은 규모의 연주회와 가곡 리사이틀도 다양하게 펼쳐졌다.

[Nationaltheater, Tuesday, July 23, 2024, 5:00 pm] 바그너: 파르지팔
바그너 오페라 '파르지팔' / ⓒW.Hoesl, 사진출처. 뮌헨 오페라 페스티벌 홈페이지
2024년 뮌헨 오페라 페스티벌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끈 프로덕션은 피에르 오디 연출의 바그너 파르지팔이었다. 2018년에 프리미어를 가진 이 연출은 오디의 미적 심미안과 극적 감수성이 극점에서 만난 파르지팔 최고의 무대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매순간 시각적인 감동이 음악적 감동을 상회할 정도로 화려했다. 특히 무대미술을 담당한, 독일 신표현주의의 선구자로 일컬어지는 게오르크 바제리츠의 무대다웠다. 피나코텍 데르 모데른에서 접할 수 있는 그의 미술작품들의 스타일이 오페라의 중심 컨셉으로 고스란히 옮겨지며 신성한 감동을 안겨줬다.음악적으로는 지휘자 피세르 아담의 승리였다. 커튼콜 때 그에게 쏟아진 브라보와 박수가 이를 증명해주었다. 노장 카펠마이스터 특유의 고양된 감흥과 아담 특유의 강하면서도 색채가 빼어난 음향, 성악가들과의 긴밀한 호흡과 파르지팔 특유의 장대한 스케일이 돋보였는데, 특히 1,3막의 장면을 전환해주는 음악들은 바제리츠의 무대 디자인과 어우러지며 극한의 황홀경을 자아냈다. 암포르타스의 제랄드 핀리나 구르네만츠의 테렉 나즈미는 빼어난 음색과 안정된 가창을 바탕으로 보다 성격적이고 내면적인 특징을 가진 새로운 캐릭터를 만드는 데 성공을 거뒀다. 파르지팔의 클레이 힐리 또한 순진한 바보의 광휘를 보여주기에 모자람이 없는 음색과 에너지를 발산했다. 이러한 가운데 슈템메의 쿤드리야말로 단연 돋보였는데, 60의 나이에도 거침 없는 가창과 농익은 연기력으로 청중을 완전히 매료시켰다.

[Prinzregententheater, Wednesday, 24th July, 8:00 pm] 뮌헨 AIDS 자선 콘서트

뮌헨 오페라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열린 에이즈 컨퍼런스를 위한 자선콘서트. 때마침 독일에서 약품개발에 따른 에이즈 완치 소식도 들려온 만큼 이렇게 오페라 축제의 일환으로 모금 및 홍보를 한다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얼마 전 내한한 뮌헨 실내 오케스트라와 바이에른 슈타츠오퍼의 오랜 친구인 지휘자 이보르 볼튼을 중심으로, 소프라노 한나-엘리자베스 뮐러와 테너 파볼 브레슬릭, 바이올리니스트 아라벨라 슈타인바흐의 찬조출연 등등 호화 라인업으로 채워진 공연. 브레슬릭의 레하르와 아라벨라의 치간느가 매우 개성적이었고 볼튼의 모차르트는 명불허전. 앙코르로 브레슬릭과 뮐러가 부른 레하르 ‘입술은 침묵하고’가 단연 돋보였는데 이 기념 연주회의 대미를 장식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멋진 음악과 아름다운 장면들이 펼쳐졌다. [Nationaltheater, Saturday July 27, 2024, 7:00 pm] 푸치니: 토스카 - '모두를 위한 오페라‘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 / ⓒW. Hoesl, 사진출처. 뮌헨 오페라 페스티벌 홈페이지
2024년 5월, 헝가리의 다재다능한 연출가 문드루초 코르넬이 제작한 버전의 토스카는 찬반논란이 거셌던 화제작이었다. 이는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 감독의 영화 ‘살로, 소돔의 120일’의 미장센을 오페라에 도입시켰기 때문이다. 새로운 플롯을 만드는 과정에 영화의 화면을 그대로 오페라 무대로 옮겨왔는데 선정적인 장면까지 그대로 가져왔다는 점이 논란을 일으켰다. 새로운 연출 아래 남자 주역 카라바도시는 영화 감독으로 변신해 영화를 찍다가 파시스트의 억압을 받게 된다. 오페라와 영화의 독창적 만남으로 눈길을 끌었다.

모두를 위한 오페라는, 오페라 극장 앞에서 공연을 생중계해주는 공공적인 성격이 강한 행사다. 오페라하우스 공연은 일찍이 매진이었는데, 생중계가 이뤄지는 홀 앞에서도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어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이번 공연에서는 최근 오페라계에서 각광받고 있는 지휘자 주라이 발추하의 지휘 아래, 토스카역의 엘레오노라 부라토가 전성기의 마리아 칼라스 못지 않은 강력한 가창을 선보였다. 악역 스카르비아역의 로도빅 테지에 또한 위엄 있으면서도 정염에 가득 찬 캐릭터를 보여주어 완벽한 드라마를 이뤄냈다. [Nationaltheater, Sunday July 28 2024, 5:00 pm] 바그너: 탄호이저
바그너 오페라 '탄호이저' / ⓒW.Hoesl, 사진출처. 뮌헨 오페라 페스티벌 홈페이지
2017년에 초연되어 화제를 불러일으킨 바 있는 로메오 카스텔루치의 탄호이저 프로덕션이 7년만에 재상연되었다. 이탈리아 연출가들 특유의 집체군무, 문장 강조, 천과 공간의 조화, 장식으로서의 뒷배경, 캐릭터만 도드라지는 조명과 파스텔톤 색감의 아름다움 등등이 카스텔루치의 진일보한 아이디어를 통해 훨씬 극과 일체화된 감각적인 장면들로 구현되었다. 서곡과 바카날 장면에서 이 프로덕션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상반신 누드 여성 21인의 활쏘기 장면은 활과 여체의 곡선이 함께 만들어내는 선(線)의 물결이 핵심으로서, 이 활은 탄호이저의 류트로 업그레이드되며 음악의 파장으로 군무를 통해 표현되고 화살은 마지막 장면에서 구원의 매개체로서 하늘의 엘리자베타가 지상의 탄호이저를 구원하는 매개체로서 종국적으로는 서로 하얀 재가 된 채 합쳐지는 사랑의 구원이라는 기적이 일어난다.

엘리사베스 티이게의 공명 깊고 진지하며 풍부한 가창의 엘리자베트율리아 마토치키나의 육감적이며 공격적인 비너스는 완벽했고, 탄호이저 역의 플로리안 포그트는 여전히 그 목소리와 그 표현력은 명불허전. 제바스티안 바이글레의 균형잡힌 리드와 안정감 있는 오케스트라 진행은 가수들을 돋보이게 한 일등공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프로덕션의 진정한 주인공은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합창단이라고 생각한다. 소리의 음역대를 결대로 모아서 폭신한 밀푀유 같이 만든 남성 합창단의 그 울림이 순례자들의 깊은 성심을 호소력 짙게 전달해주었기 때문이다.

[Nationaltheater, Monday July 29 2024, 7:00 pm] 푸치니: 서부의 아가씨
푸치니 오페라 '서부의 아가씨' / ⓒW.Hoesl, 사진출처. 뮌헨 오페라 페스티벌 홈페이지
서부의 아가씨가 갖고 있는 매력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었던 쥬라이 발추아의 강력하면서도 표현력이 충민한 오케스트라 사운드가 인상적이었던 무대. 이 날의 히로인은 잭 렌스역을 맡은 미카엘 폴레. 커튼콜때까지도 다리를 저는 나쁜 컨디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미니를 향한 맹목적인 집념과 불같은 사랑을 너무나 위대한 스타일로 보여주었다. 미니역의 말린 비스트룀은 고음이 살짝 흔들렸음에도 여러모로 매력적이었고 딕 존슨역의 이용훈 또한 정확한 고음과 지치지 않는 울림으로 강인하면서도 사랑에 진심인 동정어린 캐릭터를 성공적으로 만들어냈다.

박제성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