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한국식 양궁 훈련' 받았더니…2년 만에 벌어진 일 [2024 파리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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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발리드서 실감하는 '양궁 한류'“프랑스 코치도 한국 사람인가? 어제 보니 중국도 그렇던데.”
佛·中 메달도 한국이 빚었다
파리 올림픽 참가국 지도자 상당수가 한국인
韓 감독이 이끄는 프랑스, 중국 대표팀 메달 획득
선진 양궁 노하우 전수에 양궁 실력도 상향 평준화
‘2024 파리올림픽’ 시청률 효자 종목은 단연 양궁이다. 한국이 대회에 걸린 5개의 금메달을 석권하며 ‘올림픽 최강’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올림픽 양궁의 재미는 한국의 ‘골든 타임’에만 있지 않다. 현장 중계 속 태극 궁사들의 활 솜씨에 시선을 뺏기면서도 한국과 맞붙은 상대국 코치들의 면면까지 유심히 살폈다는 시청자들도 적잖다. 외국 선수들과 함께 나온 코치들도 어딘가 친숙한 감이 든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경기장이 자리 잡은 파리의 명소 앵발리드는 ‘양궁 한류’가 휩쓸고 있다. 관중석뿐 아니라 선수들이 맞붙는 발사선에서도 가장 많이 들리는 언어 중 하나가 한국어다. 외국 대표팀 지도자 중 상당수가 한국 양궁인이란 점에서다. 이번 대회 양궁 종목에 출전한 53개국 중 한국인 지도자가 이끄는 국가는 한국을 포함해 말레이시아·베트남·부탄·이란·인도네시아·일본·중국·프랑스 등 9개 나라다. 직접 파리 올림픽 무대를 밟진 않았지만, 몽골·우즈베키스탄·인도·카자흐스탄도 한국인 지도자가 힘을 보탰다.한국 양궁 지도자들의 실력은 이미 정평 나 있다. 안방에서 열린 올림픽에 나서 두 개의 메달을 수확한 프랑스의 성과가 대표적. 프랑스는 이번 올림픽에서 남자 단체전 은메달, 여자 개인전 동메달을 따내며 한국에 이어 가장 높은 성적을 거뒀다. 특히 동메달은 프랑스의 리사 바벨랭이 전훈영을 꺾고 한국의 여자 개인전 금·은·동 싹쓸이를 막아내며 얻은 깜짝 메달인 터라 화제를 낳았다. 남자 단체전 역시 프랑스 양궁 역사상 첫 메달이다.
프랑스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낸 것 외에 양궁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프랑스 일간지 르 몽드에 따르면 프랑스 양궁협회(FFTA)는 자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에서 최소 하나 이상의 메달을 얻기 위해 2022년 오선택 감독을 선임했다. 한국 양궁을 세계 수준의 ‘기준점’으로 보고 2000년 시드니·2012년 런던 올림픽을 지휘하며 금메달을 안긴 베테랑 지도자란 점에서 훈련을 맡긴 것. 오 감독은 근력부터 멘털 트레이닝까지 한국식 훈련법을 프랑스 대표팀에 전수했다. 프랑스 선수들은 올림픽 경기를 마친 후 기자회견에서 “(오 감독이 팀을 이끈 후) 전보다 더 많이 쏘고, 훈련도 체계적으로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슛오프까지 이어진 접전 끝에서야 승자가 결정될 만큼 박빙의 승부를 벌인 여자 단체전 결승에서 한국과 맞붙은 중국 대표팀은 권용학 감독이 2022년부터 이끌었다. 중국은 권 감독 밑에서 지난 4월과 5월에 열린 1·2차 월드컵에서 한국을 제압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훈련법부터 기술, 장비 조작법 등 한국의 선진 양궁이 이식되며 실력이 상향 평준화된 결과다.역량 있는 지도자들이 세계 각국을 무대로 ‘양궁 과외’에 나서면서 한국 대표팀도 쉽사리 우승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대한양궁협회장을 맡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앞으로 얼마나 연승을 이어갈 수 있을지를 묻는 질문에 “도전해봐야 알 것 같다”며 “경쟁상대들의 실력이 올라갔기 때문에 더 많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한 이유다. 중국 대표팀 리지아만은 한국에 패한 후 ‘언제쯤 한국을 이길 수 있다고 보나’라는 한 외신기자의 질문에 “아마 미래엔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양궁 한류’로 각국에서 부는 한국인 지도자 모시기 경쟁이 모두 장밋빛으로 끝나는 건 아니다. 2022년부터 인도 대표팀을 지휘하며 세계적인 수준으로 실력을 끌어올렸단 평가를 받은 백웅기 감독은 정작 올림픽 무대를 밟지 못했다. 인도올림픽위원회(IOA)로부터 대회 출입증 성격의 ‘AD 카드’를 발급받지 못하고 경질 통보를 받으면서다. 올림픽 다크호스로 주목받던 인도는 백 감독이 부재한 가운데 여자 단체전에서 4점을 쏘는 등 기대 이하의 경기력을 보이며 ‘노메달’로 대회를 마감했다.
유승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