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약 속 마약 성분 밝혀내…'메사돈 파동' 주역 이창기씨 별세

시중에 팔리는 일반의약품 속에 합성마약인 메사돈(Methadone)이 들어있다는 걸 밝혀내 일대 파문을 일으킨 이창기(李昌紀) 전 보건사회부 약정국장이 3일 오후 3시께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5일 전했다.

향년 90세.
1934년(호적상 1935년) 전남 나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부산고, 서울대 약대를 졸업하고 1959년 보건사회부 국립화학연구소에 들어갔다가 1961년부터 내무부 산하 기관이던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약좌기사로 근무했다. 고인을 일약 유명하게 만든 것은 1965년 '메사돈 파동'이었다.

메사돈은 백색 결정체로 쓴맛이 나며 물이나 알코올에 잘 녹고, 모르핀(morphine)과 비슷한 진통 작용을 한다.

친구가 운영하는 약국에서 날개 돋친 듯이 팔리는 주사약에 대해 들은 뒤 마약 성분이 들어있을 거라고 의심한 고인은 2년간 사재를 털어가며 연구한 끝에 메사돈 성분을 직접 합성하는 데 성공, 보사부에 통보했다. 1964년부터 전국적으로 마약 중독 환자가 퍼지는 게 사회 문제로 떠올랐고, 군사정권이 1965년 마약을 '3대 사회악'으로 규정할 정도였지만 정작 당국(보사부)은 뭐가 문제인지 몰라 체면을 구길 때였다.

이걸 내무부의 31세 말단 공무원이 혼자 힘으로 밝혀낸 것. 더구나 시중에서 불티난 듯 팔리는 일반의약품(진통제) 속에 이 성분이 들어있다는 것이 드러난 데다 제약 회사가 고무 산화방지제 등의 명목으로 정식 수입한 성분을 합성했다는 게 드러나 보사부 관리와 국회의원이 입건되는 등 일대 파문이 일었다.

고인은 해외 유학을 보내주겠다는 등의 온갖 회유와 협박을 뿌리치고 15개 사 20여개 제품을 고발했고, 이로 인한 마약 중독자가 23만명에 이른다는 수사 결과를 끌어낸 공로로 대통령 녹조소성훈장을 받았다.
이후 보사부 마약·약무과장, 약무식품국장, 약정국장을 거쳐 1988년 국립보건안전연구원장, 1989년 국립환경연구원장, 1993∼1994년 환경관리공단 이사장, 2000∼2004년 한국의약품수출입협회 부회장을 지냈다.

저서로 '마약 이야기'(2004), '약무행정 외길 40년'(2019) 등이 있다.

'자랑스러운 서울대 약대인상'(2019년)을 받았다. 유족은 부인 윤정혜씨와 사이에 1남1녀로 이상만(농림축산식품부 농식품혁신정책관)·이유경씨와 며느리 최정윤씨, 사위 유기형(경희대 정형외과 교수)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11호실, 발인 6일 오전 7시40분, 장지 소망동산. ☎ 02-2258-5919


※ 부고 게재 문의는 팩스 02-398-3111, 전화 02-398-3000, 카톡 okjebo, 이메일 (확인용 유족 연락처 필수)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