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거품론에 휘청이는 증시…"그래도 살아남을 종목 있다"

정보기술(IT)업계를 필두로 인공지능(AI)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우려가 확산하면서 국내외 AI·반도체·전력주가 줄하락세를 타고 있다. 지난 2~3년간 '덮어놓고 투자' 일변도였던 AI 업계의 수익화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된 영향이다.

삼성전자 10% 이상 하락…SK하이닉스 9.8% 내려

5일 삼성전자는 10.30% 내린 7만1400원에 장을 마감했다. 지난 7개월여간 상승분을 그대로 반납한 수준이다. 삼성전자와 함께 국내 양대 대형 반도체기업으로 꼽히는 SK하이닉스는 9.87% 떨어진 15만6100원에 장을 마쳤다. 그간 AI 전력 공급 관련주로 꼽힌 기업들도 줄줄이 내리막을 탔다. 콘덴서 기업 삼화전기는 13.10%, 전선기업 대원전선은 13.80% 내렸다. LS일렉트릭은 7.36%, HD현대일렉트릭은 3.82% 하락했다.

미국 증시에서도 AI 핵심 기업으로 꼽히는 기업들의 주가 약세가 뚜렷하다. 이른바 매그니피센트7(엔비디아,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애플, 메타, 테슬라) 기업들은 올들어 고점 대비 주가가 평균 14.1% 빠졌다. 엔비디아는 고점 대비 20% 이상 하락한 상태다.

지난 2일엔 인텔 주가가 26.06% 빠졌다. 전날 장마감 후 시장 기대를 밑도는 실적을 발표한 영향이다.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실적발표 당시 "아직 AI를 비롯한 주요 트렌드에 대해 완전한 수익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며 "비용은 높고 마진은 너무 낮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엔지니어 한 명 연봉이 20억인데…산업계 수요는 '미적지근'

IT업계와 금융투자업계 안팎에서 'AI 캐즘'을 우려하는 근거는 크게 네 가지다. 일단 지금껏 뚜렷한 수익을 내는 AI 서비스가 사실상 없다. 뾰족한 신규 비즈니스 모델(BM)도 딱히 없다. 기술적 측면에선 AI의 학습 둔화 전망이 커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주요 기업들 주가가 크게 올라 시장의 실적 기대치는 높아져 있다.

미국 IT매체 디인포메이션에 따르면 '세계 1위 AI 서비스' 챗GPT 운영사인 오픈AI는 올들어 손실이 최대 50억달러(약 7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서비스 구독료가 인건비와 하드웨어 고정비 등을 전혀 상쇄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일각에선 이대로라면 오픈AI의 현금이 1년 내에 소진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투자를 계속해야만 경쟁우위를 확보할 수 있어서다. 한 IT업계 관계자는 “일정 직급 이상인 오픈AI의 엔지니어 한 명 연봉이 한화 20억원대”라며 “AI는 주요 직원들과 학습 데이터, 하드웨어가 기술 격차의 관건이다보니 각 기업들이 이에 대한 지출을 줄이면 그냥 나가떨어지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반면 실제 돈이 되는 산업계의 AI 수요는 기대보다 빠르게 증가하지 않고 있다. 일부 선진 기업을 제외하면 경기 침체 우려에 대규모 AI전환을 빠르게 결정하기 어려운 까닭에서다.

AI 도입 바탕이 될 디지털전환(DX)도 아직 먼 얘기인 기업도 여럿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중견기업 임원은 “‘제조분야 중견·중소기업의 공장 대부분은 AI 도입이 아니라 윈도우2000 도입이 먼저 되어야 한다’는 우스개소리가 나올 정도”라며 “현재로선 AI 전환 수요가 크게 확장할 것 같지 않아보인다”고 말했다.

혁신적인 AI 서비스가 급부상해 이같은 흐름을 바꿀 가능성도 높지 않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AI가 새롭게 학습할 만한 데이터가 동나고 있어서다. 글로벌 AI 기업의 한 엔지니어는 "AI 학습용으로 쓰일만한 텍스트 데이터는 이미 거의 남지 않은 상태"라며 "이대로라면 지난 수년간의 학습곡선을 유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기술 발전도 일부 둔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이런 와중 AI 관련 기업들의 주가는 AI 기대감을 타고 크게 치솟은 상태다. 박소연 신영증권 연구원은 “미국 증시 기술주들은 AI 열풍에 밸류에이션 부담이 커졌다”며 “지난달 말 기준 S&P500 종목들의 12개월 선행 이익 기준 주가수익비율(PER)은 21.4배까지 치솟은 상태”라고 했다. 현재 주가가 향후 12개월간 예상되는 이익의 21.4배에 달한다는 의미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지난달 “이르면 올해부터 AI 산업이 ‘환멸의 골짜기’에 빠질 수 있다”는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과도한 낙관 뒤 기대와 현실간의 격차가 부각되면서 실망이 커지는 단계다.

'대체불가능' 기업들로만 옥석 가려야

전문가들은 더더욱 냉정하게 옥석을 가려 AI 관련주에 투자할 때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그간 막연한 기대감에 동반 상승한 종목들은 덜어내고, 핵심 기업에 집중하라는 얘기다.

임지용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변동성이 커지는 국면엔 기술적 해자가 견고하고 단기간 대체불가능한 기업에 집중해야 한다”며 “AI 하드웨어 반도체 분야 핵심인 엔비디아, TSMC, 브로드컴 등은 조정시 저점 분할 매수 전략으로 접근할 만 하다”고 했다. 그는 “높아진 실적 기대치가 조정받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투자심리가 단기적인 부침을 겪겠지만 펀더멘털을 둘러싼 산업 방향성이 크게 바뀌진 않았다”고 분석했다.

국내 AI 관련 장비·인프라 관련 기업도 성장 여력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신석환 대신증권 연구원은 “빅테크 기업들의 AI 설비투자는 여전히 확대 추세”라며 “AI와 고대역폭메모리(HBM) 관련주는 일부 반등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주성엔지니어링, 코미코, 티에스이, 파크시스템스 등이 2분기 호실적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안주원 DS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은 이미 전력 부족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며 “안정적인 전력수급에 필수인 ESS 시장이 확대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반면 국내 기술 기반 AI 서비스·소프트웨어 기업은 한동안 주가가 부침을 겪을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실질적으로 빅테크의 기술 수준을 따라가기 힘들어 수익화 또한 먼 얘기라서다. 앞서 자체 AI모델 개발을 발표했던 한 대기업의 관계자는 “내부에선 사실상 포기 수순에 들어갔다”며 “자체 모델 개발보다는 빅테크와 협업하는 쪽이 훨씬 투입 비용 대비 효율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한 IT업계 관계자는 “빅테크의 AI 모델이 한국어 데이터를 금방 섭렵할 수 있기 때문에 그간 일부 국내 기업들이 주장해온 '한국식 AI'는 사실상 투자금 유치를 위한 슬로건에 불과하다는 게 IT업계의 중론”이라고 했다. 그는 “다만 ‘내수 집중 전략’을 구사하는 AI 소프트웨어 기업들은 일부 성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며 “보안 등을 중요히 여기는 정부·공공기관 등에 서비스를 납품하고, 차차 서비스를 고도화해 동남아 등 개도국 시장을 노리는 방식이 될 공산이 크다”고 내다봤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