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하고, 역동적인 피아노 축제. 임윤찬의 쇼팽 에튀드
입력
수정
[arte] 이진섭의 한 판 클래식
'Chopin: 12 Études Op 10 & Op 25'

임윤찬이 데카와 손잡고 낸 첫 정규 스튜디오 앨범 [Chopin: 12 Études Op 10 & Op 25]. ‘2022년 반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 최연소 우승자’, ‘골드메달, 청중상, 현대 음악상 등 3관왕 석권’. 지금의 임윤찬을 이런 어구로 수식하기엔 너무 오래된 표현 같다. 불과 2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말이다. 임윤찬이 연주하는 장소, 순간이 모두 화제다. 클래식 공연장의 분위기도 예전과 사뭇 다르게 활기가 넘친다. 임윤찬이 클래식 음악계 전반적으로 생명력을 불어넣는 느낌이다.
바쁜 일정 속에도 임윤찬은 지난 23년 10월 클래식의 명가 데카(Decca’와 음반/레코딩 전속 계약을 맺고, 4월 데뷔 앨범 <쇼팽: 에튀드(Chopin: 12 Études Op 10 & Op 25)>를 공개했다. LP의 경우, 매체 특성상 제작하는 데 시간이 걸려, 6월 중순 즈음부터 팬들과 만났다. LP 제작은 데카의 수많은 음반을 담당하고 있는 독일의 팔라스 (SCHALLPLATTENFABRIK Pallas 社)가 맡았다.

앨범을 턴테이블에 올리자마자, Op.10-1의 휘몰아치는 피아노 연주에 마음이 요동친다. 10도를 넘나드는 아르페지오 음들은 ‘심장을 강타하며’, 화려하면서 역동적인 피아노 축제의 서막을 올린다. Op.10-2, Op.10-4, Op.10-5 등에서 임윤찬은 곡을 완전히 이해한 자만이 부릴 수 있는 기교와 재치, 익살과 여유를 들려준다. 특히, Op.25-6과 함께 가장 어렵다고 알려진 Op.10-2에서 그는 강약과 템포를 자유자재로 조절하며, 촘촘히 쌓인 음표의 산맥을 거침없이 넘나든다. 곡 Op.10-6은 다성음악의 성격을 잘 살려, 몇 개의 성부에 독립성을 부여하면서, 곡 전체의 조화를 일궈냈고, Op.10-3, Op. 10-9 같이 무드가 중요한 연주곡에서는 소리 공간에 건반을 아름답게 색칠했다.
Op.10-8 에서 임윤찬은 격한 대비와 감미로운 분위기를 동시에 연출한다. 마치 손가락을 확장시켜주는 듯한 민첩하고 유연한 연주는 ‘혁명’이라는 별칭이 붙은 곡 Op. 10-12에서 정점을 찍는다. 특히, 오른손으로 옥타브 화음을 연주하는 선율에 왼손의 아르페지오가 받쳐 주는 부분이 인상적인데, 마치 피아노 여러 대로 연주하는 것 같은 비장함과 웅장함을 표출한다. 쇼팽은 생전에 단 한 번도 자신의 에튀드에 ‘Waterfall’, ‘Chromatique’, ‘Tristesse’ 같은 별칭을 붙인 적은 없지만 만약 살아있다면, 임윤찬이 연주하는 Op. 10-12에 ‘Revolutionary’라고 칭찬할 것 같다.
Op 25-9는 곡을 녹음하면서 왼손 음을 아예 바꿔서 친 마디가 있다. 이그나츠 프리드만이 비슷한 시도를 했을 때 그 음들이 너무 매력적이어서 앨범 녹음 시 임윤찬도 다르게 시도했다고 한다. 이런 재기발랄함과 과감함으로 임윤찬은 쇼팽 에튀드의 새 지평을 열었다.
에튀드는 단지 피아노 연습곡이 아닌, 피아노를 대하는 자세, 연주 접근하는 법, 그리고 기교와 예술 경계 어딘가에서 연주자가 해결해야 할 과제 등을 담긴 예술적 피아노 교본이다. 아직 20살밖에 되지 않은 청년이 자취를 쫓아, 독창적인 연주를 들려준 것은 클래식 음악 팬들에게 큰 행복이라 생각한다. 단언컨대, 임윤찬 쇼팽 에튀드는 다른 연주자들에게 귀감이 될 것이다.
임윤찬과 연결된 프로덕션, 음반사, 매니지먼트는 더 신중하고 섬세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윤찬의 LP는 정말 아쉽다. 앨범 리뷰를 위해 오래전 LP 주문을 했는데, 갑자기 판매처에서 이번 음반은 불량이 많아 반품이나 주문취소를 하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청음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들을 보니 임윤찬의 쇼팽 에튀드 LP에 대한 문제점이 많이 지적되고 있었다. 요약하자면, 상품기획과 배송과정의 실패가 낳은 참사다. (30분 정도 되는 길이의 음원을 LP 한 장에 빼곡히 담아 내려다보니, 음을 담는 판의 골이 빽빽해지고, 프레싱 과정에서 오류가 생겨 소리가 불규칙적으로 들리는 것과 포장과 운송 과정에서 대량으로 LP 면이 찍혀 홈이 생긴 것이 큰 문제다.)
LP의 경우 소리의 볼륨과 질을 살리기 위해 LP의 무게와 홈의 여유를 두고 찍어낸다. 쇼팽 에튀드의 길이를 감안했을 때, 히사이시 조 앨범처럼 2장의 LP로 중량감 있게 180g으로 찍어냈으면 좋을 뻔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제작비와 수고가 많이 드나, 지금 같은 시대에 굳이 LP를 찾아 듣는 사람들 대부분이 음질과 감상에 좀 더 노력을 많이 기울이는 편이라 임윤찬의 쇼팽 에튀드 LP 버전은 생산 결정 이전에 좀 더 신중함이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데카-팔라스 같은 대형 레이블과 LP 제작사 굉장히 불명예스러운 일이고, 청자들에게는 고통이다.
이진섭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