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법정의 진실과 판결의 비밀

강민구 법무법인 도울 대표변호사
법관으로서 36년간 법대 위에서 수많은 사건을 다루며, 한 가지 공통된 점을 발견했다. 대부분 당사자는 자신이 피해자라거나 자기만 옳다고 주장한다. 감정이 격해진 당사자는 “하늘이 알고 땅이 알며, 내가 알고 네가 안다!”라고 눈물로 호소하기도 한다. 하지만 법관은 그들의 주장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 길이 없다. 법관에게는 사건의 과거로 돌아갈 타임머신이 없기 때문이다.

법관이 할 수 있는 일은 당사자와 대리인이 제시한 사실관계와 증거를 바탕으로 과거의 사건을 최대한 근사치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당사자가 법리에 맞게 잘 구성된 주장과 충분한 증거를 제시하면 승소 판결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입증에 실패하면 패소하거나 유죄 판결을 받을 수밖에 없다. 대중은 재판장이 알아서 억울한 사람을 구제하고, 나쁜 사람에게 법의 철퇴를 가하는 사필귀정, 파사현정식 ‘포청천 재판’을 기대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과거에도 증거 재판주의가 기본이었다. 원님이 마음대로 판결했다는 오해가 있을 뿐이다. 이 지점에서 국민과 법원 사이에 불통의 강물이 흐른다고 볼 수 있다.법적 용어로 변론주의는 당사자의 주장과 입증에 따라 판결이 내려지는 원칙이다. 현대 사법 체계, 특히 민사법에서는 당사자가 주장하는 것 이상을 법관이 알고 있더라도 판결에 반영할 수 없다. 이는 축구장의 심판이 특정 팀에 특별한 기술을 알려줄 수 없는 것과 같다.

승소 판결을 받기 위한 비결은 따로 없다. 과거의 사실관계를 꼼꼼하게 정리하고, 그에 맞는 증거 자료를 잘 제출하는 것이 핵심이다. 인적 관계나 불법적 방법에 의존하고픈 유혹을 느낄 수 있지만, 이는 재판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오히려 법관은 외부 압력에 굴하지 않고 더욱 굳건하게 법과 정의에 따라 판결하려는 의지를 다지게 된다. 따라서 하늘과 땅이 알고 있는 과거의 사실관계를 법리에 맞게 잘 정리하고 입증하는 것이 승소의 첫걸음임을 강조하고 싶다. 36년간의 경험을 통해, 이는 법정에서 성공을 거두는 유일한 길임을 확신하게 됐다. 법정에서는 감정이 아니라 오로지 증거와 법리에 따라 진실이 밝혀진다.

평소 거래 관계에서 메모 기록을 한 장이라도 남기는 습관이 매우 중요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잘 아는 사이에서는 어지간하면 말로 끝내는 것이 한국 사회의 관행으로 정착돼 있다. 서구의 엄격한 종이 계약서 문화가 우리 사회에 없기에 서로 간의 분쟁이 증가하고 있다. 메모 한 장이라도 작성해 상호 사인이라도 했더라면 억지로 우기고 싶은 욕심이 생기지 않게 되나, 구두로 약속한 사정으로 서로 자기가 옳다고 삼세판을 고집하는 작금의 현실은 인공지능(AI) 시대에 속히 사라져야 할 악습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