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히는 생산지형…'중국의 공장'된 美·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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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美·유럽 설비투자 확대중국이 미국, 유럽 등에 설비 투자를 늘리면서 해당 국가의 경계심이 높아지고 있다. 중국이 인플레이션감축법(IRA) 같은 세제 혜택을 얻거나 고율 관세 폭탄을 우회하기 위해 서방 곳곳을 ‘중국의 공장’으로 만들고 있어서다. 1990년대 ‘세계의 공장’을 자처하며 서방 기업의 제조업 설비를 유치한 중국이 이제는 정반대 전략을 취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보조금 혜택·관세폭탄 회피 전략
中 태양광업체 美 전역에 포진
CATL·고션 등도 공장 건설 중
체리車·BYD는 유럽거점 확보
美, IRA 혜택 못받도록 법안 발의
유럽도 中 공장 진출 예의주시
美 의원들 “中 공장에 혜택 줘선 안 돼”
AP통신은 5일(현지시간) “중국 기업들이 미국에 진출하거나 사업을 확장하는 가운데 정치적 이유로 암초에 부딪히고 있다”고 보도했다. 존 물레나 미시간주 하원의원(공화당)은 중국 배터리 기업 고션하이테크의 미시간 프로젝트에 대해 중국 공산당과의 연관성 등 우려를 제기했다. 민주당 소속 셰러드 브라운 오하이오주 상원의원은 지난달 31일 “중국 및 기타 해외 적대국과 관련된 기업은 국내 청정에너지 제조를 강화하기 위한 IRA 세금 공제를 받을 수 없도록 한다”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오하이오주는 최근 전기자동차, 배터리, 태양광 패널, 풍력 터빈 등 청정에너지 품목을 제조하는 시설을 급속도로 유치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이 2022년 제정된 IRA상 첨단 제조 생산 세액공제(45X) 혜택을 누리기 위해 미국 본토에 속속 진출하면서 제조업 강점이 있는 오하이오주도 대표적인 정착지가 됐다.
이 같은 보조금을 받으려는 글로벌 행렬에는 중국 기업도 포함돼 있다. 브라운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중국 기업을 수혜 대상 기업에서 솎아내겠다는 취지다. 그는 보도자료에서 “미국의 세금이 자국의 (자생적인) 태양광 제조업을 저해하고 부당하게 경쟁하는 중국 기업에 흘러가도록 허용할 수 없다”고 했다.중국발 공장 공습은 미국 전역에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중국 최대 전기차 배터리 기업 CATL이 작년에 포드와 합작회사를 통해 미시간주에 공장 설립을 모색한 게 대표적이다. CATL과 포드의 미시간 프로젝트는 미국 정치권의 반발 등으로 중단됐지만 고션하이테크는 미시간에서 계속 공장을 짓고 있다. CATL은 제너럴모터스(GM)와도 북미 지역에 공장을 짓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中 기업, 보조금 받고 관세 피해
독일 메르세데스벤츠와 손잡은 중국 엔비전도 내년부터 켄터키주에서 배터리를 양산한다. 트리나솔라(텍사스주), 보비엣솔라(노스캐롤라이나주), 징코솔라(플로리다주), JA솔라(애리조나주), 러너지(앨라배마주), 후넌솔라(사우스캐롤라이나주) 등 중국 태양광 기업은 미국 전역에 포진해 있다. 중국 룽지그린에너지가 미국 인벤너지와 세운 합작사 일루미네이트USA는 오하이오주에 태양광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로이터통신은 “자체 전수 조사 결과 중국 기업은 내년 안에 미국에서 연간 20기가와트(GW)의 태양광 패널 생산 용량을 확보할 예정이며, 이는 미국 전체의 절반에 달하는 규모”라고 보도했다. 태양광 산업 연구 회사 SPV마켓리서치의 폴라 민츠 창업자는 “중국 기업은 자국에서 받은 지원금에 더해 미국에서도 보조금을 타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는 신규 업체가 중국 제조사의 실적을 따라잡기 힘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기업연구소(AEI) 등에 따르면 2022년 6건이었던 중국 기업의 대미 설비 투자 건수는 지난해 9건, 올해는 상반기에만 6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이에 미국은 정치권을 중심으로 경계 태세에 돌입했다. 브라운 의원 법안에 조지아주 존 오소프 민주당 상원의원과 루이지애나주 빌 캐시디, 플로리다주 릭 스콧 등 공화당 상원의원도 합심했다. 이번 법안 이전에도 작년 12월엔 공화당의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플로리다주)과 캐럴 밀러 하원의원(웨스트버지니아주)이 공동으로 대표 발의한 ‘미국 첨단 제조업 보호법(PAAM법)’이 있다. 현지에선 PAAM법이 오는 9월 하원에서 논의될 것으로 보고 있다.
유럽에도 중국 공장이 몰려들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중국 기업들이 저가 전기차를 유럽으로 ‘밀어내기 수출’하는 것을 막기 위해 관세를 최대 48%까지 올릴 방침이다. 이에 따라 중국 기업들은 고율 관세 폭탄을 우회하기 위해 유럽 본토에 공장을 짓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 체리자동차는 스페인에, BYD는 헝가리에 자체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