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급 선수가 된다는 것은 짐승과 천사의 빼어난 혼혈이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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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박은아의 탐나는 책며칠 전 모두의 타임라인에 검은 야구모자를 돌려쓰고 나타나 세계인의 심장에 총구를 겨눈 그의 경기를 나도 보았다. 짧은 영상 속 그는, 네 살 때 킬러 에이전시에 보내져 총 쏘기로 숨쉬기를, 과녁에서 표정을 배운 본 투 비 저격수 그 자체였다. 타당─. 오른쪽 어깨를 턱밑까지 끌어다 붙인 그가 미동도 동요도 없이 방아쇠를 당겼을 때 경기장에 울려 퍼진 총성은 짧은 순간 사위를 적막에 빠트릴 만큼 고독하고 냉혹했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노승영 옮김, 알마, 2019
김예지와 시몬 바일스의 '멋'에는 깊이가 있다
초인적인 수련을 통해 익힌 기예일테니까
운동선수의 깊은 '이야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
잠시 뒤 박수 소리가 터져 나오고 캐스터가 흥분에 휩싸여 “이제 대한민국 김예지가 새로운 세계 신기록 보유자입니다”라고 외치는 순간에도 그는 그저 다음 격발만이 자신의 관심사라는 듯이, 뒤로 물러나 정면을 주시하더니 고개를 젖히고 깊은 숨을 내쉴 뿐이다. 이 장면을 보고 김예지란 사람을 궁금해하지 않기는 어렵다. “인간이란 그릇에 지구상에 존재하는 온갖 멋이란 멋은 다 때려 박은 느낌”, 그를 알려고 스크롤을 내리다 발견한 댓글이었다.
![2024 파리올림픽 사격 공기권총 10m 여자 은메달을 딴 김예지 선수가 코끼리 인형을 달고 연습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https://img.hankyung.com/photo/202408/01.37614564.1.jpg)
과연 어떤 선수들은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몸소 보여주는 경기를 펼치는 듯하다. 그들은 강하되 부드럽고, 철저하되 유연하며, 조화롭되 단순하다. 강하면서 딱딱하고, 철저하지만 융통성 없고, 조화로운데 복잡하기―그렇게만 되기도 어려운데……. 그런 기량은 치타의 스퍼트나 날다람쥐의 착지처럼 순전한 본능이든지, 초인적인 수련을 통해 호흡처럼 익혀버린 기예일 것이다. 어느 쪽이든 그들이 보여주는 온전한 몰입은 ‘자연스럽다 natural’는 것의 감동을 일깨워준다.
![『끈이론』 한국어판 표지 / 사진출처. 알마출판사 공식 인스타그램](https://img.hankyung.com/photo/202408/01.37614588.1.jpg)
많은 사람이 위대한 선수의 이야기를 기다린다. 인터뷰보다는 자서전 같은 것을, 소감과 포부보다 ‘이야기’를. 하지만 이야기는 너무 길고 너무 진정성 있고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쿨하지 않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내가 궁금한 건 바일스가 어떻게 바일스가 되었는가 하는 유의 쿨할 수 없는 이야기다. 밀어닥친 현실에 대항해 유감없이 쏟아낸 반응들, 그 집합체로서 위대한 운동선수의 플레이. <끈이론>은 그런 이야기에 바쳐진 책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