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기업 같은 양조장…디지털, 이제 장인의 술맛까지 빚어낸다

K인더스트리 4.0…DX의 힘
(3) 프리미엄 소주 제조 '화요 제2공장'

중앙관제실서 한눈에
술항아리 700개에 QR코드
태블릿PC로 제조이력 확인
문제 생기면 폰으로 알림

생산·품질 '두 토끼' 잡아
발효·증류·포장까지 고도화
협동로봇이 박스 실어나르고
공장 전체 점검 5분이면 끝

숙성기간 계절 데이터 축적
AI 도입해 '푸드테크' 변신
화요 2공장 CCR(중앙관제실) 룸 모습. 전면의 대형 스크린에 발효조, 숙성실 등 공장 곳곳에서 보내는 데이터와 수치가 표시되고 있다. 작업자는 현장에 직접 가지 않고 MES(제조실행시스템)로 공장 상황을 보고 제어한다. /강경주 기자
지난 6일 경기 여주시 가남읍에 있는 프리미엄 증류식 소주 화요의 제2공장. 주류 공장이라고 해서 내부가 투박할 것이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경기 판교에 있는 정보기술(IT) 회사 못지않은 최첨단 시스템이 즐비한 광경이 나왔다. 1층 CCR(중앙관제실) 룸으로 들어서자 초대형 스크린이 전면에 배치돼 시선을 압도했다. 화면에는 발효조, 숙성실 등 술 제조 시설 곳곳에서 실시간으로 보내는 데이터와 수치가 표시됐다. 정지원 화요 공장운영지원팀 이사는 “가동 현황이 숫자로 표시돼 개선점을 명확하게 짚을 수 있다”며 “현장에 직접 가지 않아도 MES(제조실행시스템)와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든 공장 상황을 보고 제어할 수 있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QR코드로 생산 전 과정 모니터링

<왼쪽>불량 유무를 검사하는 비전검사기. 병에 정량이 담겼는지, 정상적으로 생산됐는지 검사하고 해당 데이터를 인터페이스로 보내 품질 이력을 관리한다.(왼쪽) <오른쪽> 총 700개의 옹기를 품질관리 요원 한 명이 태블릿PC로 관리한다. 화요가 숙성되는 모든 술 항아리에는 QR코드가 부착돼 있어 재료의 특성, 발효 시기 등 술 이력을 알 수 있다.
증류식 소주인 화요 제조는 고두밥을 찌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하루에 사용하는 쌀은 10t. 증기로 고두밥을 찌고 한 차례 냉각한 다음 종국(누룩의 씨앗)을 뿌리면 쌀누룩이 된다. 이후 발효조에 물과 효모, 쌀누룩을 함께 넣어 7일간 발효한 다음 대기압보다 낮은 기압과 낮은 온도에서 증류하는 ‘감압증류’ 공정을 거친다. 공장에선 쌀을 찌는 과정부터 발효, 증류, 숙성, 포장까지 전체 공정이 하나의 로봇처럼 오차 없이 움직였다. 직원은 태블릿PC를 들고 다니며 발효 탱크마다 붙어 있는 QR코드를 찍어 탱크별 주조 정보를 확인했다. QR코드만 찍으면 언제 입고된 쌀이 몇 도에서 쪄진 뒤 몇 번 탱크로 이송됐는지, 어떻게 발효되고 있는지 한눈에 볼 수 있었다.연구실에서 필요한 시료를 요청하자 태블릿으로 작업 지시 사항을 확인한 작업자는 해당 저장 탱크의 QR코드를 찍은 뒤 시료를 채취해 연구실로 보냈다. 숙성 기간과 알코올 도수 등이 각기 다른 수많은 저장 탱크가 있다 보니 공정관리의 애로사항도 있었지만 이제는 잘못된 저장 탱크의 QR코드를 찍으면 다음 작업으로 아예 넘어가지 않도록 ‘풀 프루프(fool-proof) 시스템’을 세팅했기 때문에 휴먼에러를 원천적으로 제거했다. 장관호 화요 양조팀장은 “기존에는 문제가 생겨도 확인 자체가 어려웠지만 이제는 정해 놓은 표준 기준에 벗어나면 공장 내 모니터에 알람이 뜨고 담당자에게 바로 문자로 통보되기 때문에 즉각 조치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DX 적용 후 하루 생산량 140% 증가

2층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화요 증류 원액을 숙성시키는 700여 개의 항아리가 한데 모여 웅장함을 자랑했다. 화요의 대표 제품 ‘화요 25’와 ‘화요 41’은 원재료가 같다. 증류를 끝낸 화요 원주의 알코올 도수는 45도다. 이후 화요원액은 옹기에서 3개월간 숙성시킨다. 옹기는 100% 수제 제작됐기 때문에 크기가 조금씩 달랐지만 이곳의 모든 옹기에 QR코드가 부착돼 제조 이력(LOT)과 재고 확인이 가능했다. 개량 한복을 차려입은 장인과 일꾼 수십 명이 모여 술을 만드는 모습은 옛일이 됐다. 위생복과 위생모, 마스크로 무장한 품질관리 요원 한 명이 태블릿으로 옹기 QR코드를 태그하는 모습은 디지털전환(DX)이라는 승부수를 던진 화요의 DNA가 식품기업을 넘어 ‘푸드테크 기업’으로 확장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중소기업인 화요는 대기업 생산시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DX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생산성과 품질 향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생산 속도는 분당 80bpm에서 200bpm(1분에 200병 생산) 증가해 150% 개선했다. 작업 전 제조 리드타임은 100분에서 12분으로 줄어 88% 향상됐고, 식품 제조 공정상의 중요관리점(CCP) 이탈사항 인지시간도 30분에서 실시간 알림으로 바뀌었다. 공장 전체 점검 시간은 120분에서 5분으로 확 줄면서 95.8% 개선돼 인력 운용의 폭이 넓어졌다. 병입 과정을 거친 완성품의 박스 이송도 세 명이 하던 것에서 ABB 협동로봇으로 고도화했다. 하루 생산량은 3만 병에서 7만2000병으로 늘어 140% 증가했다.

술 제조에 AI 도입 예정

화요가 2020년부터 DX를 본격 도입한 이유는 수요가 늘면서 수작업에 의존하던 방식에 한계를 느껴서다. 장 팀장은 “발효, 증류, 숙성 등 오랜 생산 과정에서 작업자가 수기로 하나하나 기록하다 보니 데이터관리의 어려움이 있었다”며 “이를 해결하고자 체계적인 생산·제조 관리를 할 수 있는 MES 및 스마트 HACCP(식품안전관리인증)을 도입했다”고 말했다. 그 결과 화요 매출은 DX 직전인 2019년 110억원에서 지난해 359억원으로 세 배 이상 증가하며 DX 효과를 톡톡히 봤다. 황보연 화요 제품팀장은 “주류 유통 IT 시스템인 ‘엔젤넷’을 기존의 MES에 접목하는 과정이 남아 있다”며 “공장 내 DX 영역이 생산을 넘어 제품 재고, 출고 관리 영역으로 확장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화요는 또 다른 DX 최초 기록에 도전한다. 문세희 화요 대표는 “숙성 기간과 계절별로 품질에 어떤 영향이 있는지 등 데이터가 축적되면서 생산 효율화는 물론 품질 향상에도 도움이 됐다”며 “술 제조에도 인공지능(AI)을 도입하는 시대를 화요가 열겠다”고 말했다.

여주=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