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번엔 K-2 전차…경제안보 시대 첨단기술 유출은 간첩죄로 다뤄야

대한민국 육군 주력 전차이자 폴란드에도 수출한 K-2 전차에 들어가는 화생방 양압장치 기술을 빼돌린 혐의로 연구원 3명이 재판에 넘겨졌다고 한다. 이 장치는 적의 생화학 무기 공격에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외부 공기를 전차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고 내부 공기를 정화하는 데 쓰인다. 원래 한 업체가 개발해 군에 납품해왔는데 이 업체 출신 연구원 3명이 경쟁사로 이직하면서 설계 도면과 개발 보고서, 국방 관련 자료 등을 빼돌렸고 해외 기술 유출 정황도 포착됐다.

특허청에 따르면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7년간 산업기술 해외 유출만 140건이 적발됐고 피해액은 33조원에 이른다. 특히 반도체, 2차전지, 방산 등 우리가 경쟁력을 가진 핵심 산업 분야에서 기술 유출이 끊이지 않고 있다.그런데도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이다. 지금까지 국내 대법원이 기술 유출 범죄에 내린 최대 형량은 5년이 고작이었다. 대부분 기술 유출 사건은 집행유예나 1~2년 실형에 그쳤다. 그나마 대법원 양형 기준 개정으로 지난 7월부터 산업기술 해외 유출에 대해선 최대 형량이 9년에서 12년으로 높아지고 초범이라도 실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관련 조항을 강화했지만 여전히 한계가 있다.

경제안보 시대에 첨단 기술은 국가의 명운을 좌우하는 핵심 자산이다. 따라서 이런 기술을 빼돌리는 것은 단순히 산업 스파이를 넘어 간첩행위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현행법상 간첩죄 적용 대상이 너무 협소하다. 간첩죄는 사형, 무기징역, 7년 이상 징역 등 중형이 가능하지만 형법 98조1항은 간첩 행위 대상을 적국, 즉 북한으로 한정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국가 기밀이나 국가전략기술 유출도 북한과 직접 관련이 없으면 간첩죄로 처벌할 수 없다. 이 조항은 6·25전쟁 직후인 1953년 만들어진 뒤 바뀌지 않아 비현실적이다. 지금은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전쟁에서 보듯 ‘전쟁의 시대’가 다시 돌아왔다. 미국과 대만은 국가전략기술 유출까지 간첩죄 수준으로 처벌한다. 우리도 첨단 기술 유출에 대해선 간첩죄 수준으로 엄하게 다룰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