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영수회담 하자는 이재명, 입법 폭주부터 멈춰라

의회 폭주로 내달리던 더불어민주당이 돌연 조속한 영수회담을 제의하고 나섰다. “정부 혼자 힘만으로는 위기 극복이 어려우니 여야가 초당적으로 머리를 맞대자”며 박찬대 원내대표가 전격 제안했다. 이재명 전 대표가 방송토론에서 “대결 정국 해결을 위해 윤석열 대통령과 진지하게 말씀 나누고 싶다”고 언급한 지 하루 만의 속전속결이다.

22대 국회 개원 후 70여 일을 갈등과 대치로 지샌 끝에 나온 대화 제의가 일견 반갑지만, 뜬금없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의석수를 앞세운 비타협적 태도로 국정 혼란을 불러온 당사자의 갑작스러운 태세 전환이어서다. 내용 형식 등을 두고 협상 파트너인 여당과 한마디 협의 없이 번갯불에 콩 볶듯 제안한 점도 꺼림칙하다. 당장 여당에선 “좀 많이 나간 제안”(추경호 원내대표)이라는 반응이 나왔고 대통령실도 “입장 없다”며 신중 모드다.지난 4월 첫 영수회담 때의 실망스러운 기억도 있다. 당시 이재명 대표는 회담을 시작하자마자 미리 적어온 A4용지 10장 분량의 요구사항을 15분 동안 읽어 내려갔다. TV 카메라 앞에 대통령을 붙잡아두고 면전에서 “독재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식의 독설을 퍼부었다. 아무 양보 카드 없이 야당 주장 수용을 촉구했고 영수회담이 끝나자마자 ‘불통 대통령’이라며 비난에 집중했다.

박 원내대표가 “빠른 입법적 조치를 위한 여·야·정 상시 정책협의기구 구축”을 제안한 점도 당황스럽다. 넉 달 전 영수회담에서 윤 대통령이 제안한 민생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와 별반 다르지 않다. 당시 이 대표는 ‘국회 내에서의 협의가 우선’이라는 말로 대통령 제안을 거부했다. 그래 놓고는 여당을 철저히 무시한 채 입법 폭주로 내달렸다. 이제 와 상시협의기구 설치를 주장하니 어리둥절하다.

사실 영수회담은 권위주의 정치 시대의 유산으로 지금 같은 수평적 분권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 방식이다. 대화정치 복원을 위해서라면 마다할 필요가 없지만 첫 번째 영수회담처럼 보여주기식은 곤란하다. 박 원내대표는 영수회담을 제안하면서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중단을 반복했지만 ‘거대 야당이 먼저 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부터 경청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