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침실’ 속 마돈나는 누구? [고두현의 아침 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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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침실로
-가장 아름답고 오랜 것은 오직 꿈속에만 있어라
이상화
마돈나, 지금은 밤도 모든 목거지에 다니노라 피곤하여 돌아가려는도다.
아, 너도 먼동이 트기 전으로 수밀도의 네 가슴에 이슬이 맺도록 달려오너라. 마돈나, 오려무나. 네 집에서 눈으로 유전하던 진주는 다 두고 몸만 오너라.
빨리 가자. 우리는 밝음이 오면 어딘지 모르게 숨는 두 별이어라.
마돈나, 구석지고도 어둔 마음의 거리에서 나는 두려워 떨며 기다리노라.
아, 어느덧 첫닭이 울고– 뭇 개가 짖도다. 나의 아씨여, 너도 듣느냐.
마돈나, 지난밤이 새도록 내 손수 닦아 둔 침실로 가자. 침실로!
낡은 달은 빠지려는데 내 귀가 듣는 발자국– 오 너의 것이냐? 마돈나, 짧은 심지를 더우잡고 눈물도 없이 하소연하는 내 맘의 촛불을 봐라.
양털 같은 바람결에도 질식이 되어 얕푸른 연기로 꺼지려는도다.
마돈나, 오너라. 가자. 앞산 그리메가 도깨비처럼 발도 없이 가까이 오도다.
아, 행여나 누가 볼는지– 가슴이 뛰누나. 나의 아씨여, 너를 부른다.
(아래 줄임)-------------------------------- 이 시에 나오는 ‘마돈나’는 누구일까요? 이상화(1901~1943)의 ‘나의 침실로’는 1923년 9월 동인지 <백조> 3호에 실렸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1년 전이지요. 그때부터 ‘마돈나’가 누구인지를 놓고 온갖 말이 나돌았습니다.
가장 흥미를 끈 것은 함흥 출신 여성 유보화라는 설입니다. 팔봉(八峯) 김기진의 회고에 따르면 이 시는 ‘폐가 나쁜 이북 여성을 사랑했던’ 상화의 아픈 사연에서 나왔습니다. 이상화는 조혼 풍습에 따라 일찍 중매결혼을 했으나 애정 없는 생활에 회의를 느꼈습니다. 그러다가 일본 유학 중에 만난 유보화라는 신여성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1923년 관동대지진 직후 급히 귀국한 그는 유보화와 서울 가회동 취운정(翠雲亭)에 새살림을 차렸지요.
문제는 그녀의 건강이었습니다. 팔봉의 부인이 “상화 씨의 애인은 참 미인인데 폐가 나쁘대요. 내가 봐도 오래 살지 못하겠던데요”라고 한 걸 보면 병세가 이미 깊었던 모양입니다. 1924년엔 더욱 나빠지더니 결국 ‘짧은 심지’처럼 안타까운 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시에 나오는 ‘마돈나, 짧은 심지를 더우잡고 눈물도 없이 하소연하는 내 맘의 촛불을 봐라./ 양털 같은 바람결에도 질식이 되어, 얕푸른 연기로 꺼지려는도다’와 같이 그녀는 꺼져갔습니다. ‘별들의 웃음도 흐려지려 하고 어둔 밤 물결도 잦아지려는’ 순간처럼 말이죠.
다른 얘기도 있습니다. 그가 열여덟 살 때 이 시를 썼다는 것입니다. 열여덟 살이면 1919년이지요. 상화가 일본으로 유학 간 게 1922년이니까 일본에서 유보화를 만나기 전입니다.
이 분석에는 또 다른 여인이 등장합니다. 상화는 열여덟 살 때 서순애라는 여인과 중매로 결혼했는데, 그 무렵 상화에게 또 다른 여인이 있었답니다. 경남 출신으로 여고를 졸업한 손필련이었지요. 그러니까 이 시를 손필련과 한창 연애 중일 때 썼다는 얘깁니다. 그해에 상화가 결혼한 몸이었기에 그들의 사랑은 세상의 인정을 받을 수 없었고, 그래서 꿈에서나 가능한 것으로 노래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다른 해석도 많습니다. 마돈나가 성모 마리아의 상징이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대구의 이상화 고택에서 가까운 남산동에 성모당이 있지요. ‘나의 침실로’가 바로 이곳 성모당을 배경으로 탄생했다는 것입니다.
이 관점에 따르면 시에 나오는 ‘침실’은 정신적 안식과 활력을 주는 꿈과 부활의 동굴입니다. 성모당에서 시의 모티브를 얻었고, ‘마돈나’도 성모당의 마리아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란 얘기지요.
아무튼 이런 분석의 배경에는 시의 부제로 쓰인 구절이 함께 작용하고 있습니다. ‘가장 아름답고 오랜 것은 오직 꿈속에만 있어라’가 그것이지요. 침실이야말로 그 아름답고 오랜 것을 꿈속에서 가능하게 하는 공간이자 부활의 공간입니다. 이렇게 보면 침실은 희망을 잉태하는 또 다른 곳이기도 합니다.
2017년 타계한 마광수 교수는 이 시를 “애인과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서러워하며 단말마적 정사(情事) 및 정사(情死)의 장소를 찾아 헤매는 시인의 관능적 열정을 노래한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대구 계산동, 달성공원 서남쪽 언덕에 ‘상화 시비’가 있습니다. 1948년 우리나라에서 맨 처음 세워진 문학비라고 합니다. 검은 오석으로 된 비석 앞면에 상화의 열한 살 난 셋째아들이 쓴 ‘나의 침실로’의 한 대목이 새겨져 있습니다. 아이가 이렇게 많은 사연이 깃든 시의 행간을 알았을리는 없겠지만, 단아하고 순정한 글씨체는 전문 서예가의 세련된 필체보다 더 큰 감동을 줍니다.
■ 고두현 시인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 등 출간. 김달진문학상, 유심작품상 등 수상.
-가장 아름답고 오랜 것은 오직 꿈속에만 있어라
이상화
마돈나, 지금은 밤도 모든 목거지에 다니노라 피곤하여 돌아가려는도다.
아, 너도 먼동이 트기 전으로 수밀도의 네 가슴에 이슬이 맺도록 달려오너라. 마돈나, 오려무나. 네 집에서 눈으로 유전하던 진주는 다 두고 몸만 오너라.
빨리 가자. 우리는 밝음이 오면 어딘지 모르게 숨는 두 별이어라.
마돈나, 구석지고도 어둔 마음의 거리에서 나는 두려워 떨며 기다리노라.
아, 어느덧 첫닭이 울고– 뭇 개가 짖도다. 나의 아씨여, 너도 듣느냐.
마돈나, 지난밤이 새도록 내 손수 닦아 둔 침실로 가자. 침실로!
낡은 달은 빠지려는데 내 귀가 듣는 발자국– 오 너의 것이냐? 마돈나, 짧은 심지를 더우잡고 눈물도 없이 하소연하는 내 맘의 촛불을 봐라.
양털 같은 바람결에도 질식이 되어 얕푸른 연기로 꺼지려는도다.
마돈나, 오너라. 가자. 앞산 그리메가 도깨비처럼 발도 없이 가까이 오도다.
아, 행여나 누가 볼는지– 가슴이 뛰누나. 나의 아씨여, 너를 부른다.
(아래 줄임)-------------------------------- 이 시에 나오는 ‘마돈나’는 누구일까요? 이상화(1901~1943)의 ‘나의 침실로’는 1923년 9월 동인지 <백조> 3호에 실렸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1년 전이지요. 그때부터 ‘마돈나’가 누구인지를 놓고 온갖 말이 나돌았습니다.
가장 흥미를 끈 것은 함흥 출신 여성 유보화라는 설입니다. 팔봉(八峯) 김기진의 회고에 따르면 이 시는 ‘폐가 나쁜 이북 여성을 사랑했던’ 상화의 아픈 사연에서 나왔습니다. 이상화는 조혼 풍습에 따라 일찍 중매결혼을 했으나 애정 없는 생활에 회의를 느꼈습니다. 그러다가 일본 유학 중에 만난 유보화라는 신여성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1923년 관동대지진 직후 급히 귀국한 그는 유보화와 서울 가회동 취운정(翠雲亭)에 새살림을 차렸지요.
문제는 그녀의 건강이었습니다. 팔봉의 부인이 “상화 씨의 애인은 참 미인인데 폐가 나쁘대요. 내가 봐도 오래 살지 못하겠던데요”라고 한 걸 보면 병세가 이미 깊었던 모양입니다. 1924년엔 더욱 나빠지더니 결국 ‘짧은 심지’처럼 안타까운 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시에 나오는 ‘마돈나, 짧은 심지를 더우잡고 눈물도 없이 하소연하는 내 맘의 촛불을 봐라./ 양털 같은 바람결에도 질식이 되어, 얕푸른 연기로 꺼지려는도다’와 같이 그녀는 꺼져갔습니다. ‘별들의 웃음도 흐려지려 하고 어둔 밤 물결도 잦아지려는’ 순간처럼 말이죠.
다른 얘기도 있습니다. 그가 열여덟 살 때 이 시를 썼다는 것입니다. 열여덟 살이면 1919년이지요. 상화가 일본으로 유학 간 게 1922년이니까 일본에서 유보화를 만나기 전입니다.
이 분석에는 또 다른 여인이 등장합니다. 상화는 열여덟 살 때 서순애라는 여인과 중매로 결혼했는데, 그 무렵 상화에게 또 다른 여인이 있었답니다. 경남 출신으로 여고를 졸업한 손필련이었지요. 그러니까 이 시를 손필련과 한창 연애 중일 때 썼다는 얘깁니다. 그해에 상화가 결혼한 몸이었기에 그들의 사랑은 세상의 인정을 받을 수 없었고, 그래서 꿈에서나 가능한 것으로 노래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다른 해석도 많습니다. 마돈나가 성모 마리아의 상징이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대구의 이상화 고택에서 가까운 남산동에 성모당이 있지요. ‘나의 침실로’가 바로 이곳 성모당을 배경으로 탄생했다는 것입니다.
이 관점에 따르면 시에 나오는 ‘침실’은 정신적 안식과 활력을 주는 꿈과 부활의 동굴입니다. 성모당에서 시의 모티브를 얻었고, ‘마돈나’도 성모당의 마리아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란 얘기지요.
아무튼 이런 분석의 배경에는 시의 부제로 쓰인 구절이 함께 작용하고 있습니다. ‘가장 아름답고 오랜 것은 오직 꿈속에만 있어라’가 그것이지요. 침실이야말로 그 아름답고 오랜 것을 꿈속에서 가능하게 하는 공간이자 부활의 공간입니다. 이렇게 보면 침실은 희망을 잉태하는 또 다른 곳이기도 합니다.
2017년 타계한 마광수 교수는 이 시를 “애인과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서러워하며 단말마적 정사(情事) 및 정사(情死)의 장소를 찾아 헤매는 시인의 관능적 열정을 노래한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대구 계산동, 달성공원 서남쪽 언덕에 ‘상화 시비’가 있습니다. 1948년 우리나라에서 맨 처음 세워진 문학비라고 합니다. 검은 오석으로 된 비석 앞면에 상화의 열한 살 난 셋째아들이 쓴 ‘나의 침실로’의 한 대목이 새겨져 있습니다. 아이가 이렇게 많은 사연이 깃든 시의 행간을 알았을리는 없겠지만, 단아하고 순정한 글씨체는 전문 서예가의 세련된 필체보다 더 큰 감동을 줍니다.
■ 고두현 시인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 등 출간. 김달진문학상, 유심작품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