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연구비 내년에도 받을 수 있나요"…하루살이된 공대 교수들

정부 R&D예산 반쪽짜리 복구
현장 목소리 반영한 대안 내놔야

강영연 사회부 기자
“연구개발(R&D) 예산이 회복된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역시나’였네요.”

서울 주요 대학 이공계 학과 A교수는 최근 내년도 연구비가 80% 삭감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올해에 이어 2년째다. A교수만의 문제가 아니다. 주요 대학 이공계 학과 교수들에게 확인해 보니 사업에 따라 예산 삭감이 통보되고 있다고 했다. A교수는 “삭감된 예산으로 프로젝트 진행이 불가능해 연구과제를 접기로 했다”고 말했다.정부는 올해 R&D 예산을 5조2000억원(16.6%) 삭감하며 과학자를 R&D 예산을 나눠 먹는 ‘약탈적 이권 카르텔’로 규정해 과학기술계의 강한 반발을 초래했다. 결국 내년에 원상 복귀 이상으로 R&D 예산을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연구비가 깎인 기존 연구들은 혜택을 보지 못하는 반쪽짜리 예산 복구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비가 회복되지 않은 이유는 정부가 예산을 지원하는 분야를 바꿨기 때문이다. 과학기술계에 따르면 정부는 바이오, 반도체 등의 분야와 국제협력 관련 지원을 늘렸다. 반면 블록체인, 도심항공모빌리티(UAM) 등 분야와 국내 자체 연구 예산은 줄였다.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쓰겠다는 목표에 이견은 없을 듯하다. 하지만 과정이 너무 거칠었다. 지난해 중요 과제라며 5년 예산을 약속했는데, 올해 갑자기 중요성이 떨어졌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B교수는 “올해 과제에 선정됐다고 내년에도 그대로 지원받을 것이라고 믿을 수 없게 됐다”고 꼬집었다.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연구비를 따기 위한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요즘 과학계에서는 “1억원짜리 과제에 정부출연연구소까지 뛰어들고 있다”는 말이 공공연하다. 내년 예산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걱정에 작은 규모라도 일단 예산을 확보해두자며 큰 단체들도 소액 과제에 지원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서울 주요 대학 공대의 C교수는 “올 들어 7월까지 6건의 과제에 지원했는데 모두 탈락했다”며 “경쟁이 워낙 치열해 연구 자체보다 계획서가 더 중요해졌다는 말이 나온다”고 전했다.

급변하는 환경 속에 새로운 기술과 핵심 분야에 투자를 집중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비효율적인 R&D 예산을 줄여 효율화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하지만 과학 기술은 투입 즉시 성과가 나오는 도깨비방망이가 아니다. 지금은 답이 없어 보여도 미래 경쟁력이 될 수 있다. 정부 정책이 1년 만에 바뀐다면 어떤 과학자가 장기 목표를 세우고 연구를 진행할 수 있을까. 아직 예산 확정까지 시간은 남았다. 올해와 같은 혼란을 막기 위해서라도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