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2조 넘는 상장사 '지배구조 족쇄법' 나온다

野 '상장사지배구조특례법'

'이사 충실의무' 주주까지 확대
상법 개정 대신 특례법으로
집중투표제 의무화 등 담겨
김남근 외 野 30여명 공동발의

경제계 "저마다 손해봤다며
이사 상대로 소송 남발할 수도"
더불어민주당이 ‘코리아 디스카운트’(국내 증시 저평가)를 해소하겠다며 자산 2조원 이상 상장 대기업의 지배구조만 별도로 규율하는 특례법을 내놓는다. “대주주가 아니라 독립된 이사회 중심으로 기업 지배구조를 바꾸는 게 진짜 밸류업”이라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재계는 “경영진을 상대로 소송이 남발될 수 있고 신속한 경영 판단을 위축시켜 오히려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칠 수 있다”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 정조준

8일 정치권에 따르면 김남근 민주당 의원 등은 다음주 초 ‘상장회사지배구조특례법’(특례법)을 대표 발의한다. 야당 의원 30여 명이 발의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원은 법안 추진을 위해 오는 12일 국회에서 ‘개미투자자보호법 제정 토론회’를 열 계획이다. 토론회는 김 의원과 국회 정무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강준현 의원, 오기형 의원 등이 공동 주최한다.

특례법은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를 대상으로 하는 게 특징이다. 이들 기업에 한해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주주 및 회사’로 확대한다. 이사 충실의무는 모든 회사에 해당하는 상법 조항이지만, 특례법을 통해 일정 규모 이상 상장사에만 적용하자는 발상이다.

2명 이상의 이사를 선임할 때 소수 주주가 자신이 보유한 의결권을 한 명에게 몰아 투표할 수 있도록 하는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는 내용도 있다. 현행 상법으로도 집중투표제는 보장되지만 개별 회사가 정관을 통해 도입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해 분리 선출하는 감사위원 수를 현행 1명에서 단계적으로 3~4명으로 늘리는 내용도 담겼다. 이 밖에 이사회에 지배주주의 영향을 받지 않는 ‘독립이사’를 3분의 1 이상으로 채우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소액주주의 주총 참여도를 높이기 위해 전자주총과 현장주총을 병행하도록 하는 내용도 있다.

○“기업 규모로 차별” 논란 소지

특례법을 발의하는 김 의원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과 참여연대 출신이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내세워 재벌개혁론을 강하게 주장해 왔다. 특례법안은 당 정책위원회, 정무위 위원들과도 교감이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말 진성준 정책위 의장이 기자간담회에서 “재벌 회장이 대기업집단 주인처럼 행세한다”며 ‘민주당판 밸류업’ 프로그램인 ‘코리아 부스트업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김 의원이 당시 간담회에 유일하게 배석했다.김 의원 법안이 당론으로 채택된 건 아직 아니다. 다만 민주당은 지난 총선 당시 이사 충실의무를 확대하는 상법 개정을 공약으로 내놓은 바 있다. 김 의원의 특례법을 중심으로 당내에서 발의되는 다양한 관련 법안을 통합해 하나의 당론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경제계는 특례법이 도입될 경우 자유로운 경영 활동이 심각하게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경제단체 관계자는 “이사 충실의무가 일반 주주에게까지 확대되면 저마다 손해를 봤다며 이사를 상대로 소송이 남발될 수 있다”며 “충실의무 위반이 인정되면 형법상 배임죄로 처벌받을 수도 있다”고 했다.

재계 관계자는 “집중투표제가 의무화돼 경영권 공격을 노린 주주 측 이사가 선임될 경우 신속한 의사결정이 가로막히고 이사회가 이사들 간 논쟁의 장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분리 선출 대상 이사를 3~4명까지 확대하는 것 역시 대주주의 재산권을 과도하게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감사위원 선임 때는 최대주주 의결권이 3%로 제한되기 때문이다.특례법 적용 대상을 ‘자산 2조원 이상’같이 특정 규모로 구분한 것 자체가 문제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대형 로펌 관계자는 “특례법으로 자산 규모를 구분해 임의적으로 적용 대상을 정하는 건 부당한 차별의 소지가 있다”고 했다.

한재영/정상원 기자 j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