샹파뉴 로드트립-오크통과 천년 포도밭이 빚어낸 황금 빈티지
입력
수정
[arte] 한국신사 유람일기
샹파뉴, 순백의 거품에 취하는 프랑스의 여름
샴페인의 발상지, 샹파뉴 메종을 가다 - 2부
'앙리 지로 (Henri Giraud)'
200년된 참나무 오크통
거대한 점토 항아리서 발효
일등석만 제공 '엔트리급'
'알로 (Arlaux)'
1000년의 역사를 지닌 포도밭에서
15대째 가업 이어져 온 샴페인 명가
전염병도 비켜간 '황금 빈티지' 보유
"Too much of anything is bad, but too much champagne is just right(과유불급은 모든 것에 통용된다. 하지만 샹파뉴만큼은 예외다).”
스콧 피츠제럴드가 남긴 이 말은 샹파뉴를 여행하며 곧 ‘진리’처럼 다가왔다. 먼저 돌아본 샹파뉴 메종이 큰 규모와 명성으로 유명하다면, 다음 두 행선지는 상대적으로 아담하고 소박하다.앙리 지로 Henri Giraud무릇 모든 여행은 이미 잘 알려진 것보다 숨은 보물을 찾는 게 더 매력적인 법. 엔트리급 앙리 지로(Henri Giraud)가 그랬다. 앙리 지로는 대한민국 국적기의 일등석 샹파뉴로 선정돼 더 유명해졌다. 앙리 지로를 향한 애정은 이들이 생산하는 엔트리급 샹파뉴의 매력 때문이다. 와인 애호가의 취향이란 제각각이어서 아무리 고가여도 ‘좋고 싫음’이 분명하게 나뉘기 마련. 그럼에도 와인을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넘어 한결같이 박수받는 것이 앙리 지로의 엔트리 샹파뉴 에스프리 나튀르(Esprit Nature)다.
에스프리 나튀르는 엉성한 나무 그림과 신비감을 불러일으키는 두 개의 점이 찍힌 ‘G 로고’가 우선 신선하다. 젊고 신비롭고 이국적인 앙리 지로의 이미지는 그 역사를 알면 한 번 더 놀란다. 1625년부터 샹파뉴를 업으로 삼아 12대째 가족 경영을 하는 유서 깊은 메종이어서다. 오랜 세월을 거치며 여러 위기를 극복해온 비결엔 실험 정신이 숨어 있다. 메종 한편엔 이런 말이 쓰여 있다. ‘무엇도 금하지 않고,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으며, 자연스럽게 좋은 와인을 만든다.’실험적 시도가 좋은 평판으로 이어지기란 쉽지 않다. 이들의 실험이 궁금했다. 첫 번째, 앙리 지로의 오크통이다. 와인 메이커들이 포도를 가꾸는 토양의 품질에 깊은 관심을 쏟고 포도밭 관리에 매진하는 것은 기본. 앙리 지로는 포도주가 발효하고 숙성하는 오크통에 남다른 정성을 기울인다. 와인 숙성의 핵심이라고 할 만한 프랑스산 참나무 중에서도 ‘아르곤’이라는 이름을 지닌 특별한 숲의 참나무 목재를 사용한 오크통을 고집한다.2016년을 기점으로 모든 라인업에 스테인리스 발효 및 숙성을 벗어나 오직 오크통을 쓰고 있다. 아르곤 숲의 토질은 다른 숲에 비해 좋지 않아 나무 생장 시간이 두 배 이상 걸린다. 200년 안팎 수령의 참나무로 통을 제작하는데, 성장 속도가 느린 만큼 곳곳에 쌓인 섬세한 향이 탁월한 매력을 발산한다. 제작 방식도 다르다. 아르곤 숲을 토질에 따라 여러 구역으로 나누고, 그 구역에서 만든 오크통에 숙성된 각각의 와인을 구분해 생산하는 것.두 번째 실험적 시도는 스테인리스 사용을 포기하면서 ‘암포라(amphora)’로 불리는 계란형 항아리를 특별 제작해 사용한다는 점이다. 모래와 점토로 빚은 이 발효 탱크는 고대 테라코타 암포라보다 투과율이 훨씬 낮아 발효 효율이 높고 앙리 지로가 원하는 발효에 더욱 최적화된 용기라고 한다. 기존 포도주업계에서 사용해온 스테인리스 스틸, 그리고 적극적으로 활용 중인 오크통 발효 숙성과는 또 다른 맛과 향을 내는 데 기여하는 이런 시도를 통해 그 어떤 메종에도 없던 독특한 실험을 이어가며 새로운 맛으로 샹파뉴의 미래를 열고 있었다.알로 Arlaux샹파뉴 일정의 마침표는 알로(Arlaux)에서 찍었다. 소규모 메종이지만 국내 시장에서도 알음알음 사랑받고 있는 곳. 1000년이 넘는 기록을 가진 역사적인 포도밭에서 15대를 이어왔고, 필록세라 전염병이 창궐했을 때 이에 감염되지 않은 특별한 포도나무를 보유한 것만으로도 이미 인상적인 곳이다.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포도주 수입국이 된 우리에겐 이제 누구나 다 아는 굵직한 이름보다 숨겨진 작은 메종을 찾는 즐거움이 더 클 수 있겠다.이번 기회에 샹파뉴의 매력에 젖어든 독자들에게 전하는 샹파뉴 상식! 샹파뉴 병에는 종종 블랑 드 블랑(Blanc de Blanc), 블랑 드 누아(Blanc de Noir)라는 표기가 있다. 주로 고급 샹파뉴에 들어가는데 의미를 알아두면 샹파뉴를 고를 때도, 얻어 마실 때도 좀 더 기분 좋게 마실 수 있다. 블랑은 프랑스어로 흰색을, 누아는 검은색을 뜻한다. 블랑 드 블랑은 청포도로 빚은 백포도주를, 블랑 드 누아는 적포도로 담근 백포도주를 의미한다.
샹파뉴는 포도주 범주상 백포도주에 속하니 블랑 드 누아의 경우 적포도를 착즙할 때 검붉은 껍질의 착색을 방지하기 위해 과육을 살살 짜는 방식을 사용한다. 동일한 양의 과즙을 얻기 위해 청포도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 포도를 쓴다는 점을 이해한다면 블랑 드 누아라는 딱지가 붙은 샹파뉴의 가치를 가늠해 볼 수 있겠다. 물론 최근 샹파뉴 생산의 트렌드인 ‘단일 포도밭의 단일 품종’으로 같은 연도에 만든 제품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는 방식을 고려하면 블랑 드 블랑 역시 주로 고품질 샤르도네 품종만 사용해 생산된다. 아무튼 샹파뉴 병에 이런 표기들이 보인다면 일단 고급품으로 생각해도 좋다.나폴레옹은 일찍이 ‘승자에겐 너무나 마땅하며, 패자에겐 꼭 필요한 것’으로 샹파뉴가 인류의 필수품임을 강조했다. 한편 여성에게 해방을 선물한 사람이자 동시에 세기의 여성 난봉꾼으로 기억될지 모르는 코코 샤넬도 샹파뉴를 두고 잊지 못할 한마디를 남겼다. 앞서 소개한 경제학자 케인스와 수많은 전설적인 인물들이 이렇게 샹파뉴를 논했다면 우리가 샹파뉴와 사랑에 빠지지 않을 이유가 무엇일까. 샤넬의 말을 기억하며 샹파뉴를 피해야 할 이유를 찾아보기 바란다. 정말 그럴 수 있다면 말이다. “나는 두 경우에만 샹파뉴를 마신다. 사랑하고 있을 때와 아닐 때.”
샹파뉴=이헌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