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서 고흐 그림 좀 떼자, '별이 빛나는 밤'만 보여줄텐가
입력
수정
[arte] 임지영의 예썰 재밌고 만만한 예술썰 풀기나도 고흐가 좋다. 마음의 표상처럼 솟아오른 사이프러스 나무며 황금빛으로 타오르는 별빛은 그야말로 황홀경이다. 그런데 바로 그 '별이 빛나는 밤'이 우리의 취향을 점령했다. 예술 감성 수업 마지막 날은 '내가 좋아하는 그림 가져오기'를 하는데, 아이들 스무명 중 무려 절반 정도가 고흐의 그림을 가져온다.
물론 위대한 화가의 명화임이 분명하지만, 이것은 취향이 아니라 경험 부족이다. 다양한 그림을 접해보지 못해서다. 그리고 왜 그런지 많은 학교들을 다녀보며 알았다. 거의 모든 학교에 고흐의 별밤이 걸려있었다.

그리고 외람되지만 자주 '고흐 금지!'를 외친다. 취향 발표 시간에 고흐나 명화 말고 우리 작가 중에 찾아오라고 강력 추천한다. 우리는 2024년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다. 현재를 살며 미래를 꿈꾸는 아이들에게 동시대 작품들은 가장 좋은 자극이 된다. 지금 우리의 이야기를 보여주니 좋은 질문이 될 수밖에. 그러면 그림 한 점을 통해 무수히 많은 각자의 이야기가 쏟아져 나온다. 물론 고전은, 명화는 변치 않는 가치를 지니고 그것은 추앙될만한 것이다. 하지만 예술은 추앙되기보다 우리 삶에 더 많이 활용되어야 한다.
예술의 저변이 넓어졌다 해도 여전히 향유층은 옹색하다. 큰 미술관이나 대형 전시에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 외는 드문드문하다. 미술관 좀 다닌다는 사람들도 이렇게 보는 게 맞나 향유에 자신 없어 한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향유 교육이 필요하다. 예술을 어렵고 난해한 것이 아닌 좋은 삶의 매개로 활용하려면 좀 더 다양한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 우리 예술, 우리 그림에 대한 관심과 환경 조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유명 전시회에서 사 온 두꺼운 도록들, 책꽂이에 모셔져 있는 화첩, 우선 먼지부터 털어내셔라. 그리고 가족이 둘러앉아서 한 장씩 넘기며 본다. 각자가 좋아하는 그림을 한 점씩 고른다. 가차 없이 오린다. 다이소에서 액자 하나씩 사다가 그림 잘 넣어서 책상에, 식탁에, 화장대에, 잘 보이는 곳에 둔다. 그리고 한 달 후 새 그림 고르는 날로 정해 다시 그림 바꾸기. 중요한 것은 그림으로 나누는 대화다. 내가 왜 이 그림을 골랐는지 서로 이야기하는 것. 거기에 지금 나의 마음이 투영되어 있으므로.
얼마 전에 한 초등학교 선생님께서 반 아이들 21명을 모두 데리고 갤러리에 오셨다. 수업 시간에 학교 밖으로 나오는 현장 학습이 얼마나 번거롭고 성가신지 안다. 선생님 한 분이 모든 상황과 변수를 책임지겠다는 약속이고. 그 쉽지 않은 일을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 하나로 해내셨다. 특히 발달 장애 학생에게 한 그림을 보여주고 싶어 하셨다.<겨울 토끼> 이 그림은 어린이 예술가 선시우의 작품이다. 발달 장애 예술가로 10살 때 그린 그림이다. 겨울이라 토끼가 먹을 게 없어 말랐다. 그런데도 당근을 함께 먹자고 다정하게 말한다. 선생님은 그림처럼 조금 힘들어도 당근을 나눠주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함께 희망의 당근을 찾아주고 싶은 마음. 좁은 공간에 아이들의 웃음이 가득 찼다.
오렌지 스티커를 하나씩 들고서 나의 한점을 찾느라 시끌벅적. 그리고 왜 이 그림이 좋은지 기록하기. 저마다의 생각, 마음, 이야기가 내가 고른 그림과 함께 송글송글 쏟아졌다.
임지영 예술 칼럼니스트·(주)즐거운예감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