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인류를 먹여 살린 과학式 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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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A22
기후 변화의 해법은 수소
수소는 생산·유통이 관건
재부상하는 하버 보슈법
수소 경제 시대 역할 커져
마르지 않는 독일의 힘 보며
R&D 방향 새로 설정해야
이해성 테크&사이언스부 차장
![](https://img.hankyung.com/photo/202408/07.34201788.1.jpg)
이런 점에서 인류 역사상 최고의 화학식으로 하버-보슈법이 꼽힌다. 질소를 분해해 인공 비료인 암모니아를 대량 합성하는 길을 열면서 식량 생산력을 폭발적으로 높였기 때문이다. 독일 화학자 프리츠 하버는 질소와 수소를 섞고 촉매로 철을 넣은 다음 400~500도에서 200기압 이상을 가하면 암모니아가 나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하버-보슈법이 없었다면 인구 절반이 계속 굶어 죽어 산업 발전이 불가능했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독일 수소 기업 선파이어의 SOEC 설비 모습.
선파이어 홈페이지](https://img.hankyung.com/photo/202408/AA.37645907.1.jpg)
수소 경제의 출발점은 물을 전기분해해 수소를 생산하는 전해조 기술이다. 전해조 가운데 가장 효율이 높은 것은 고체산화물전해조(SOEC)다. 생산 다음엔 유통이 관건이다. 수소는 운반이 까다롭다. 현재는 부피가 큰 고압 기체 그대로 운반하는 게 보통이다. 부피를 줄이려면 극저온 액화하거나 담체(운반체)를 써야 한다. 담체 가운데선 암모니아가 가장 훌륭한 수단이다. 하버-보슈법이 수소 경제 시대의 화폐인 수소를 운반하는 ‘지갑’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지갑에선 비료를 꺼낼 수도 있다. 오스트발트법이란 화학식을 이용하면 된다. 암모니아를 산화시켜 질산을 얻는 방법으로 1902년 등장했다.
하버-보슈법과 SOEC, 피셔-트롭슈법은 궁합이 그야말로 끝내준다. 하버-보슈법은 공정 과정에서 기후 변화의 주범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단점이 있는데, SOEC는 이를 일산화탄소와 산소로 분해한다. 피셔-트롭슈법은 일산화탄소를 디젤이나 우주 발사체(로켓) 연료인 케로신으로 전환한다. 유럽 2대 철강기업인 티센크루프는 유럽 최대 산업기술 연구소 프라운호퍼와 함께 하버-보슈법, 피셔-트롭슈법과 연계한 SOEC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제철소에서 나오는 막대한 탄소를 없앨 수소환원제철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봤다. 수소환원제철은 포스코가 사활을 건 미래 기술이다.하버-보슈법과 피셔-트롭슈법, 오스트발트법은 모두 독일 과학자의 머리에서 나왔다. 100여 년 전 독일의 기초과학이 21세기 수소 경제 시대를 맞아 화려하게 귀환한 셈이다. 삼성전자 등 반도체 기업이 목매는 극자외선(EUV) 공정 장비도 200년 과학기술이 축적된 독일 기업 자이스가 세계에서 유일하게 생산한다. 네덜란드 ASML은 이 장비를 커스터마이징해 판매하는 역할을 한다. 핵심 기술은 모두 자이스가 보유하고 있다. 독일이 세계 3위 경제대국을 유지하는 비결은 이런 과학기술의 힘에서 나온다.
한국 과학자들은 후대에 독일처럼 회자될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가. 새 장관이 이끌 윤석열 정부의 2기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런 물음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 지난 6월 과기정통부는 산하 연구소 간 연구개발(R&D) 칸막이를 없애겠다며 ‘글로벌 톱(TOP) 전략연구단’ 다섯 곳을 선정했다. 이 중 한 곳은 SOEC와 같은 수전해 기술을 개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과기정통부는 지난 7일 이 사업을 백지화했다. 연구단장이 기업으로 자리를 옮겨 후임자를 찾기가 어렵다는 다소 황당한 이유를 들었다. 수전해 기술이 미래 산업에 가져올 파급력을 볼 때 부적절한 대응이다. 이번 정부가 그토록 강조하는 R&D 선진화는 이런 근시안으론 달성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