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빔'으로 차익 챙긴 뒤 "I♥Korean"…실명거래 비웃은 외국인 돈 벌었다

DEEP INSIGHT

외국인 '투기 놀이터'로 전락한 韓 코인시장

가상자산법 '1호 사건' 어베일
상장 40분전 외국인 투자자 모집
유통량 80% 확보 후 한국에 덤핑
4시간 만에 3500→773원 폭락

가상자산 투자 막힌 법인·외국인
차명계좌 거래해도 제재 안 받아
"합리적인 규제로 투기판 막아야"
지난달 23일 오후 10시. 어베일이란 암호화폐가 국내 암호화폐거래소 빗썸에 상장됐다. 상장 때 236원으로 거래가 시작된 어베일은 불과 15분 만에 3500원까지 치솟았다. 상승률만 따지면 1383%에 달한다. 다음 날 오후 3시께 어베일은 296원대로 폭락했다. 24시간도 안 돼 12분의 1로 쪼그라들었다.

어베일은 글로벌 시가총액 6조원에 달하는 폴리곤(시총 21위)을 개발한 인도계 엔지니어들이 선보인 암호화폐다. 블록체인상에서 모든 데이터가 참여자에게 제대로 전달되는지 보장하는 기술을 내세우면서 주목받았다. 하지만 빗썸에서의 상장 당일 가격 흐름은 다른 해외 거래소와 비교했을 때 비정상적이었다는 게 투자자들의 주장이다. 상장 때 ‘펌프(가격 급상승) 효과’를 감안하더라도 상승세가 지나쳤다는 것이다. 어베일은 빗썸에서 같은 시간 해외 거래소 게이트아이오와 후오비 등보다 10배 비싸게 거래됐다.

무슨 일이 있었나

‘어베일 시세조종 의혹 사건’을 두고 국내 가상자산 시장에서는 외국인의 차명 거래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정 가상자산의 시세를 마음대로 움직일 정도의 물량이 외국인을 통해 공급된 것으로 나타나면서다.
A씨는 지난달 23일 SNS에서 외국인으로부터 암호화폐 어베일을 모집해 국내 거래소 빗썸에서 매도한 뒤 큰 차익을 남기고 ‘한국인 사랑해요’라는 글을 남겼다. SNS 캡처
어베일 상장 약 40분 전. 한국인 투자자로 추정되는 A씨는 SNS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어베일을 모집했다. A씨는 X(옛 트위터)에 “만약 이 (지갑) 주소로 어베일을 보내면 내가 팔아서 더 많은 어베일을 다시 돌려주겠다”며 “이틀 정도 걸릴 것이고 만약 사기라고 생각한다면 보내지 않으면 된다”고 영문 글을 올렸다. 외부에 공개된 A씨의 암호화폐 지갑 내역에 따르면 그는 124만1850개(약 42억원)를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빗썸에서 첫날 유통된 어베일 물량(155만 개)의 80%를 차지하는 규모다. 상장 당일 시세를 고려할 때 업계에서는 A씨가 얻은 이익을 약 36억원으로 추정했다. A씨는 지난달 24일 오전 2시36분께 SNS에 ‘한국인 사랑해요’라는 글을 남겼다. 이 시간 어베일은 고점 대비 5분의 1 수준으로 폭락한 773원을 기록했다.

암호화폐는 은행을 통해 송금해야 하는 외환과 달리 주고받는 게 쉽다. 암호화폐를 보관하는 소프트웨어인 ‘지갑’의 주소만 있으면 전송이 가능하다. 반면 국내 암호화폐거래소에서는 외국인 거래가 차단돼 있다. A씨가 총 119개 지갑에서 어베일을 받은 것으로 비춰볼 때 최대 119명의 외국인이 A씨를 통해 국내 거래소에서 어베일을 차명으로 거래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차명 거래에 돈세탁까지

올해 초 상장한 암호화폐 만타네트워크도 차명 거래 및 자금 세탁 의혹이 제기됐다. 빗썸에서 상장 때 483원에 거래를 시작한 만타는 당일 30만원으로 620배 폭등했다. 상장 한 시간 전 한 지갑에서 200만 개에 달하는 만타네트워크가 빗썸에 입금된 정황이 포착됐는데, 업계에서는 만타네트워크 본사 한국인 직원의 지갑이란 의혹이 제기됐다. 중국계 엔지니어로 구성된 만타네트워크 본사가 자사 물량을 한국인 직원 계좌로 보내 차명으로 거래했다는 주장이다. 이후 해당 지갑에서 만타네트워크를 73억원 규모의 이더리움으로 바꿔 출금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에서는 외국인의 가상자산 거래를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국내 암호화폐거래소의 실명 계좌를 외국인에게는 열어주지 않는다. 하지만 이를 비웃듯 업계에서는 암암리에 외국인의 차명 거래를 지원하는 컨설팅이 이뤄지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SNS,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외국인이 한국인 투자자에게 거래 대행을 요청한 사례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우회 거래 얼마든지 가능”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가상자산법)에는 시세조종 등 불공정행위에 대한 명확한 처벌 근거가 마련돼 있다. 불공정행위로 얻은 이익 또는 이에 따라 회피한 손실액의 두 배에 상당하는 금액의 과징금이 부과된다. 만약 이익 또는 회피한 손실액이 없거나 산정이 곤란한 경우에는 40억원 이하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가상자산 차명 거래의 제재 수단은 분명치 않다. 가상자산법에서 ‘부정한 수단, 계획 또는 기교를 사용하는 행위’를 금지하긴 했지만, 금융실명거래법상 실명 거래 의무를 지는 금융기관에 암호화폐거래소는 포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거래소에 1차적인 책임이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하지만 짧은 시간에 이뤄지는 급등락 거래를 두고 정상과 비정상을 완벽하게 파악하는 것이 어렵다는 반박도 적지 않다.

일각에서는 가상자산 시장을 개인의 투기판으로만 여겨 방치하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일부 외국인의 시장 교란은 계속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등 주요 선진국과 달리 국내에서는 법인과 외국인의 가상자산 투자가 금지돼 있다. 이렇다 보니 국내 가상자산 시장이 시세조종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합리적인 규제를 통해 법인과 외국인 투자를 공식적으로 허용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문제”라고 말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