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인표 "복수하려고 소설 시작…위안부 고통 '공감'하려"

아리랑TV 제공
위안부 피해자를 다룬 소설로 옥스퍼드에 간 '작가' 차인표가 "소설로 '복수'하고 싶어 시작했지만, 위안부의 고통 '공감'하기 위해 완성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작가' 차인표는 앞서 이미 3권의 책을 출간했는데, 그가 처음 쓴 소설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은 최근 옥스퍼드 대학교의 필수 도서로 선정됐다.차인표는 14일 방송되는 아리랑TV 'The Globalists'와의 인터뷰에서 "수많은 소재 중 왜 하필 위안부를 첫 소설의 소재로 선택했느냐"는 질문을 받고 "훈 할머니의 입국 장면을 본 뒤 슬픔, 분노, 실망을 느끼고 소설로 복수하고 싶어 집필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차인표는 "신혼 시절이었던 1997년, 집에서 TV를 보다가 캄보디아에서 55년 만에 돌아온 위안부 훈 할머니의 입국 장면을 봤다"면서 "16세에 일본군에 끌려갔던 한 소녀가 광복 이후에도 수치심에 고향에 돌아오지 못한 다른 많은 소녀처럼 55년을 캄보디아 정글에서 숨어 살았고, 죽기 전에 집에 돌아가고 싶어 돌아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당시 입국장에서 아리랑을 부르던 훈 할머니를 보고 슬픔, 분노, 실망, 굴욕 등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에 마음이 아팠다"면서 "'만약 이 소녀들을 빼앗기지 않고 어떻게든 고향에 머물게 했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으로 소설을 쓰기로 했다"고 말했다.한국인 종군위안부로 알려진 캄보디아의 '훈 할머니'는 1997년 8월 4일 외손녀 등과 함께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나눔의 집과 국내 언론사 공동초청으로 50여년만에 꿈에서도 그리던 고국땅을 밟은 훈 할머니는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릅니다.너무나 기쁩니다.한국이 너무나 변했습니다"라며 고국 방문소감을 밝혔다.

훈 할머니는 이어 캄보디아에서 준비해온 검정색 손가방에서 "내 이름은 나미입니다. 혈육과 고향을 찾아주세요"라고 한글이 적힌 마분지를 꺼내 들고 "불쌍히 여겨 가족을 꼭 찾아주세요"를 연발하며 혈육상봉을 간절히 희망했다.훈 할머니는 또렷한 발음으로 우리민요 아리랑을 불러 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젖게 했다.

차인표는 소설을 써온 과정에 대해 "처음 줄거리는 강한 호랑이 사냥꾼이 일본군들을 모두 물리치고 복수하는 내용으로 매우 간단했다"면서 "50페이지 정도 작성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당시 쓰고 있던 중고 노트북이 고장이 나면서 폭발해 버렸고, 나는 그걸 ‘이렇게는 쓰지 말라’는 계시로 이해했다"고 회상했다.

차인표는 그 뒤 6년의 공백 기간을 거쳐 다시 소설을 쓰게 된 이유에 대해 "한동안은 연기에만 집중했는데, 2006년 당시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면서 ‘내 아이들에게 고통스러운 위안부 역사를 어떻게 설명할까’를 고민하게 됐고, 아이들이 읽을 수 있는 책을 쓰기로 결심하게 됐다"고 동기를 소개했다.이어 소설을 집필하는 기간 많은 도움이 되어 주었던 가족에 대해서도 고마움을 표했는데, "어머니가 '진실이 없는 상상력은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것'이라고 조언하셔서 소설의 배경이 되는 백두산을 직접 찾아가 보고,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나보기도 했다"면서 "초보 소설가들은 잘 아시겠지만, 소설을 쓰다 보면 ‘이런 건 아무도 읽지 않을 거야, 그만둬’라고 말리는 내면의 목소리와 맞서 싸워야 했다. 그럴 때마다 단 한 명의 충성스러운 독자가 ‘당신은 좋은 작가가 될 것’이라고 응원해줬다"고 아내 신애라가 보내준 지지에 감사를 표했다.

차인표는 광복 79주년을 맞은 현재의 위안부 문제에 대해 "100년 전 문제가 아직도 진행 중인 이유는 한 시대의 고통이 충분히 공감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본다"면서 "한국인이든 일본인이든 세계 어느 사람이든 함께 모여 위안부의 고통을 충분히 공감한다면 강제된 사과가 아닌 진정한 사과가 나오고, 다음 세대를 위한 진정한 화해가 나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광복절 특집으로 10분 길게 특별 편성(40분 방송)된 'The Globalists'는 14일 오후 4시 50분 만나볼 수 있다. 차인표는 이 방송에서 소설 중 핵심 장면을 직접 내레이션 한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